조선은 왕의 나라였고, 현대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혈통과 신분의 권력은 선거와 헌법으로 대체됐지만,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까지 달라진 것은 아니다. 조선에는 수렴청정이 있었고, 오늘날에는 제도 밖에서 흐름을 조율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 존재한다.
수렴청정은 왕이 어리거나 통치가 어려울 때 왕비나 대비가 전면에 나서지 않고 정사를 대신 듣고 판단하던 정치 방식이다. 그 대표적 인물이 세조의 부인이자 예종의 어머니, 성종의 할머니였던 정희왕후다. 그는 왕이 아니었지만, 왕조의 방향을 결정한 인물이었다.
현대 정치에서도 선출되지 않은 영향력은 권력의 경계를 미리 그린다. 왕은 사라졌지만, 왕을 설계하는 기술은 남아 있다. 필자는 지난 토요일 남양주 광릉에 있는 정희왕후의 능을 찾았다. 이 칼럼은 조선과 현대를 나란히 놓고, 왜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는지를 살펴보려는 시도다.
조선의 권력은 ‘얼굴 없는 손’에서 움직였다
조선 정치에서 왕은 절대적 존재처럼 기록되지만, 실제 권력은 왕을 둘러싼 여러 세력의 균형 속에서 작동했다. 대비와 외척, 대신과 공신 세력은 서로를 견제하며 왕권의 방향을 조정했다. 이 구조의 가장 깊숙한 지점에 정희왕후가 있었다.
정희왕후는 단종을 제거하고 남편 수양대군을 왕으로 만든 후 세조 체제를 관리한 핵심 조정자였다. 단종의 폐위와 죽음은 개인의 비극이었지만, 당시 조선 사회에서는 왕조 안정을 위한 선택으로 정당화됐다. 그녀는 직접 칼을 들지 않았지만, 칼이 어디로 향할지를 알고 있었다.
이 같은 권력의 작동 방식은 예외가 아니었다. 조선은 정통성의 균열을 무력만으로 봉합하지 않았다. 대신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조율자를 통해 체제의 연속성을 관리했다. 그 결과 조선의 권력은 왕의 발언보다 설계자의 판단에서 더 깊게 움직였다.
현대 민주주의도 설계자를 필요로 한다
흔히 현대의 민주주의는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국민의 선택은 언제나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누가 후보가 될 수 있는지, 어떤 정책이 논의될 수 있는지는 선거 이전에 이미 정리된다. 투표는 선택의 순간이지만, 선택지 자체는 사전에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현대판 ‘정희왕후형 권력’이 등장한다. 이들은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거나 공식 직책을 갖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러나 공천 구조, 정치권 내부 네트워크, 여론 형성 과정과 집권 이후의 판단에 이르기까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들의 개입은 드러나지 않지만, 정치의 흐름을 바꾸기에는 충분하다.
물론 이들이 결정을 직접 내리지는 않는다. 대신 무엇이 가능한 선택이고, 무엇이 배제될 선택인지를 미리 정한다. 왕이 바뀌어도 설계자가 남아 있었던 조선처럼, 민주주의에서도 제도가 바뀐다고 해서 설계자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얼굴은 교체되지만 구조는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다.
조선의 단종, 현대의 정치적 퇴장
조선에서 단종은 정치적 희생의 상징이다. 그는 무능하거나 중대한 실책을 저질러서 제거된 인물이 아니었다. 체제 안정에 불리하다는 이유만으로 배제됐다. 조선 사회는 한 개인의 생명과 도덕성보다 왕조의 지속과 권력의 안정을 우선시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더 이상 최고 권력을 죽이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적 제거는 다른 방식으로 반복된다. 사법 리스크, 언론 보도, 핵심 배제, 내부 고립 등을 통해 권력은 서서히 무대에서 밀려난다. 생명은 보호되지만, 정치적 생존은 조용히 끊어진다.
방식만 달라졌을 뿐 구조는 유사하다. 차기 권력구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된 지도자는 결국 배제된다. 정희왕후형 권력은 직접 나서지 않고, 그 과정이 불가피하고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이도록 환경을 조성한다. 책임은 제도와 당사자가 떠안고, 설계자는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세조·예종, 강한 권력과 공백의 정치
세조는 조선에서 가장 강력한 통치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군사력과 행정력을 장악하며 왕권을 비약적으로 강화했다. 그러나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즉위했다는 태생적 한계는 그의 권력을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 불안을 관리하기 위해 필요했던 존재가 정희왕후였다. 그녀는 세조의 통치를 정당화하고, 권력이 다음 세대로 무리 없이 이어지도록 조율했다. 강한 권력일수록 이를 완충하고 관리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필요했고, 정희왕후는 그 역할을 정확히 수행했다.
현대 정치에서도 이 공식은 반복된다. 대통령 권력이 강해질수록, 그 권력을 안정시키는 보이지 않는 권력의 중요성은 오히려 커진다. 강한 얼굴은 체제의 중심이 되지만, 동시에 또 다른 조정자를 불러낸다.
세조 사후 즉위한 예종은 재위 14개월 만에 요절했다. 이 짧은 통치는 강한 권력이 설계만으로는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 공백의 시간은 정희왕후로 하여금 수렴청정을 통해 권력의 단절을 관리하고, 성종 체제로 넘어가기 위한 완충 장치를 준비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성종과 정상화의 정치
성종은 조선에서 이상적인 군주로 평가받는다. 그는 제도를 정비하고 유교 정치의 틀을 완성했다. 그러나 그의 개혁은 무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정교하게 구성된 구조 위에서 진행됐고, 그 틀을 근본적으로 벗어나지는 않았다.
정희왕후는 손자인 성종을 통해 세조정권의 폭력성과 비정통성을 점진적으로 희석시켰다. 왕조는 성종의 통치를 거치며 다시 정상 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성종의 정치는 단절이 아니라, 연속 위에서 이뤄진 관리된 전환이었다.
오늘날 민주주의에서도 급진적 변화보다 안정적 개혁이 선택될 때, 설계자의 영향력은 가장 강해진다. 성종의 시대는 정희왕후의 정치가 제도 속으로 스며들며, 보이지 않는 권력과 조용히 분리된 시기였다.
국민과 유권자는 왜 설계자의 권력을 묵인하나
정희왕후형 권력이 유지되는 이유는 권력자 개인의 욕망 때문만은 아니다. 조선 사회의 다수 역시 혼란보다 안정을 원했다. 급격한 변화는 불안과 공포를 동반했고, 그 대가를 먼저 치르는 것은 언제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현대 사회에서도 국민은 불확실성보다 예측 가능성을 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정치가 혼란스러울수록 보이지 않는 조정자에 대한 기대는 커진다. 안정은 늘 가장 설득력 있는 명분이 되어 민주주의의 이상보다 앞서기도 한다.
이 권력은 위에서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것이 아니다. 아래에서 묵인되고, 때로는 기대 속에서 유지된다. 정희왕후형 권력은 시민의 피로와 불안 위에서 조용히 자라나며 스스로를 필요악으로 정당화한다.
왜 제도는 이 권력을 통제하지 못하는가
민주주의 제도는 절차와 결과를 감시한다. 선거의 공정성이나 법 위반 여부는 따지지만, 의제가 형성되는 과정에는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 권력이 공식 무대에 오르기 전의 준비 단계는 제도의 시야 밖에 놓여 있다.
정희왕후형 권력은 바로 이 사각지대에서 작동한다. 이들은 결정 이전의 환경을 설계하며, 책임이 발생하지 않는 위치에 머문다. 영향력은 크지만 책임의 주체로 지목되지는 않는다.
조선이 정희왕후의 판단을 공식 기록에서 최소화했듯, 현대 민주주의 역시 이 권력을 기록하지 않는다. 기록되지 않는 권력은 감시되지 않고, 감시되지 않는 권력은 통제되지 않는다. 이것이 민주주의가 반복해서 마주치는 구조적 한계다.
정희왕후는 인물 아닌 구조
정희왕후는 역사 속 인물이지만, 정희왕후형 권력은 구조로 살아남았다. 이는 특정 개인의 야심 문제가 아니라, 체제가 흔들릴 때마다 반복적으로 호출되는 정치적 메커니즘이다.
민주주의는 왕을 제거했고 수렴청정이라는 제도도 폐기했다. 그러나 권력을 설계하는 기술까지 제거하지는 못했다. 제도가 정교해질수록 권력은 더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이동했고, 통치는 투명해진 듯 보이지만 실제 권력의 흐름은 오히려 복잡해졌다.
그래서 질문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다. 우리는 정말 스스로 통치하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가 짜놓은 판 위에서 제한된 선택을 반복하고 있을 뿐인가. 민주주의는 왕을 없앴지만, 왕을 설계하는 자리는 끝내 비워두지 못했다.
정희왕후는 지금도 구조로 살아 있다. 아직 이재명 대통령 곁에는 그와 같은 권력이 뚜렷이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그러나 어떤 정권이든 실패의 징후가 나타나는 순간, 설계자는 다시 호출된다. 그들은 앞으로 나서지 않는다. 대신 책임이 발생하지 않는 위치에서 정권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조정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