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방위 통과 ‘가짜뉴스 근절법’ 우려 쏟아지는 이유

2025.12.11 14:41:42 호수 0호

허위 유포 시 최대 5배 손배소
국힘 “국민 재갈 물리기” 비판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허위 조작 정보 유포 시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을 물리게 하는 이른바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범여권 주도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문턱을 넘었다.



더불어민주당은 ‘가짜뉴스 근절’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정작 야권을 비롯한 언론계 시민단체에선 권력자에 대한 비판 기능을 마비시키는 ‘언론 재갈 물리기’라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지난 10일 법안심사소위와 전체회의를 연달아 열고 개정안을 의결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법안 처리에 반발하며 집단 퇴장한 가운데,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범여권 의원들만 남은 상태에서 속전속결로 처리됐다. 당초 법안심사소위에서 ‘캐스팅보트’를 쥐었던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반대 입장을 철회하고 찬성으로 선회하면서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이다.

해당 개정안의 핵심은 고의 또는 중과실로 허위 조작 정보를 정보통신망을 통해 유포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 책임을 지우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다.

민주당은 이를 ‘허위조작정보(가짜뉴스) 근절법’이라고 부르며 악의적 허위 정보 확산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논란이 컸던 일부 독소조항은 심사 과정에서 빠졌다. 최초 유포자를 끝까지 추적해 책임을 묻는 이른바 ‘최초 발화자 책임’ 조항과 언론사에 입증 책임을 전환하는 내용,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최대 1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 등은 삭제됐다.

대신 허위·불법 정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강화하는 골격은 그대로 유지하되, 무엇이 가짜뉴스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징벌적 배상만 강화할 경우, 언론과 국민은 ‘자기 검열’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같은 날 처리된 개정안 패키지에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고, 허위 사실 명예훼손죄를 친고죄로 전환하는 내용도 담겼다. 여권에선 이를 “표현의 자유 보호장치”라고 강조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과 결합할 경우, 실효성 논란은 여전하다는 게 언론계와 시민단체의 중론이다.

시민단체들은 이번 개정안이 겨냥하는 ‘허위 조작 정보’의 정의부터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언론개혁시민연대·오픈넷·참여연대 등 10개 단체는 전날 공동성명에서 “불법 정보, 허위 정보, 허위 조작 정보 등 핵심 개념의 의미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이를 일괄 ‘불법 정보’로 규정해 행정 규제와 손해배상 책임을 대폭 강화하려는 것”이라며 “유통이 금지되는 정보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언론의 기능을 심각하게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이 법안이 정치인, 고위공직자, 대기업 임원 등 이른바 ‘권력자’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보도를 막기 위해 소송을 남발하는 ‘전략적 봉쇄소송(SLAPP)’을 막을 안전장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SLAP은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공익을 위한 활동을 하는 사람이나 단체를 억압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말한다.

당초 언론계와 학계에선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될 경우 자금력과 조직력을 갖춘 권력층이 비판 언론이나 유튜버, 개인을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제기해 입을 막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하지만 이날 통과된 개정안에는 권력자의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법원이 과도한 소송을 조기에 각하할 수 있는 특칙 정도만 마련됐을 뿐, 사실상 고위층의 ‘기획 소송’에 따른 언론의 위축 효과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캐스팅보트를 쥐었던 이 의원은 법안 통과 직후 “마구잡이로 남발된 소송이 기각·각하되면 그 사실을 공표해 국민이 알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넣었다”며 남용 방지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권력자의 손해배상청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선다면 별도 개정안을 추가 발의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도 전했다. 하지만 일단 통과된 법안만 놓고 보면, 권력자의 소송 창구는 그대로 열려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절차를 둘러싼 비판도 거세다. 시민단체들은 “민주당과 혁신당이 비공개 협상으로 처리 방향을 정해 놓고, 공청회와 충분한 숙의 없이 상임위 절차를 일사천리로 마무리했다”며 “사실상 야합에 의한 졸속 처리”라고 꼬집었다.

표현의 자유와 언론 자유에 직결되는 사안을 두고 사회적 합의 절차를 건너뛴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국민의힘은 개정안을 ‘언론 입틀막법’ ‘표현의 자유 억압법’으로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과방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긴급성명을 통해 “권력자 등 힘 있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 보도가 나오면 징벌적 손해배상을 앞세워 후속 보도를 차단하고, 자기 검열을 강화해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키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재명정권과 민주당이 강행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언론의 기능과 역할, 나아가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압살하겠다는 독재 입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충형 국민의힘 대변인은 11일 논평을 통해 “허위 조작 정보인지, 악의적 보도인지 여부는 매우 주관적인 잣대인데, 모호한 기준으로 최대 5배 징벌적 배상을 가하겠다는 것은 과잉 입법”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부·여당 비판 언론을 위축시키고 권력 감시 기능을 약화시키는 법안”이라고도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악의적 허위 조작 정보가 선거와 개인의 명예, 사회 갈등을 심각하게 훼손해 온 만큼, 이를 방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개정안은 추후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국민의힘은 본회의에 안건이 올라올 경우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으로 인한 의사진행 방해) 등을 가용한 모든 절차를 동원해 막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김장겸 국민의힘 언론자유특위 위원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지금이라도 민주당 지도부는 이번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철회하고, 허위 조작 정보 근절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의힘과 진지한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중차대한 법안을 또다시 숫적 우위로 밀어붙인다면, ‘전 국민 재갈 물리기’에 대한 거센 국민적 저항과 심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jungwon933@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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