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붉은 자국만 남았다⋯동덕여대 ‘남녀공학 전환’ 상흔

2025.12.05 19:48:33 호수 1561호

붉은 자국만 남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서진 기자 = 두툼한 외투를 여민 여대생들이 기말고사를 앞두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율동기념음악관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은 잠시 평온한 캠퍼스임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건물 뒤편의 그림자 아래에는 여전히 붉고 푸른 래커 자국이 선명하다.



동덕여대는 지난해부터 공학 전환을 두고 내홍을 겪었다. 내부 갈등은 폭발했다. 지난 3일 진행된 총장의 기습 발표가 뇌관이었다. 학생들의 반대가 컸음에도 학교는 2029년 공학 전환을 향해 방향을 굳혔다. 거리에 남은 건 공학 반대의 잔흔뿐이다. 이제는 ‘동덕여대, 공학 전환 확정’이라는 한 줄이 운명을 대신하고 있다.

캠퍼스는 지금…

한파 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3일 <일요시사> 취재진은 오후 3시에 예정됐던 ‘동덕여대 발전을 위한 공학 전환 타당성 분석 결과 발표’에 참석하기 위해 동덕여대로 향했다. 그러다 1시50분경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동덕여대 2029년 남녀공학 전환’ 화면에 떠오른 제목은 계획된 발표를 앞질러 이미 내린 결론인 듯했다.

김명애 동덕여대 총장은 입장문을 내고 2029년부터 대학을 남녀공학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공학전환공론화위원회(이하 공론화위)가 공학 전환 추진을 권고한 지 불과 하루 만이었다.

교문 앞을 서성이는 취재진과 마주한 A씨는 자신을 동덕여대 동문이라고 소개하면서 “교내 경비가 동문인 본인의 교내 출입을 저지했다”며 “나보고 경찰을 부른다고 했다”고 외치는 등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대학은 공론화위로부터 제출받은 최종 권고안을 존중하고 수용한다면서 “지난 갈등을 슬기롭게 마무리해 대학의 담대한 여정에 함께해주시길 당부한다”고 전했다.

지난해 공학 전환 논란이 불거지며 동덕여대 내에 극단적인 시위 소동이 벌어지자 대학은 공론화위를 7월 출범시켰다. 김 총장은 당시 입장문을 통해 “공론화위는 학생, 교수, 직원, 동문 등 모든 구성원들의 참여로 이뤄질 것이며, 공학 전환에 대한 모든 것들을 객관적으로 투명하게 논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지난 4월부터 외부 컨설팅 용역업체를 통해 중장기 발전 계획 연구와 공론화 과정 관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24일, 대학 본부가 갑작스레 ‘동덕여대 발전을 위한 공학 전환 타당성 분석 결과 발표’를 지난 3일에 하겠다고 공지했다. 지난 6월부터 외부 컨설팅 기관인 한국생산성본부에 의뢰해 진행한 공학 전환 연구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었다.

대학은 또 지난달 26일부터 사설 경비업체를 통해 본관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동덕여대는 그동안 외부인 출입을 제한해 왔는데, 오전·오후로 번갈아가며 경비를 서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교내에는 긴장감이 조성됐다.

대학은 교내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4일 ‘건물 래커 제거 행사’를 공지했으나, 위협성 글이 확인돼 잠정 연기했다. 이 행사는 학생과 교수, 직원들이 참여가 가능했으며,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에게 커피 쿠폰을 증정하고, 교내 마일리지를 준다는 혜택이 있었다.

동덕여대 재학생연합은 이 행사가 “학생 사회의 정당한 의사 표현을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총투표 앞두고 기습 발표
학생 반대 무릅쓰고 전환

교내 곳곳에는 학생들의 심정이 담긴 대자보가 잇따라 붙기 시작했다. 졸속으로 추진되는 공학 전환과 교내 경비 투입으로 불안감이 조성됐다는 의견 등 다양한 내용이었다. 정문 기둥에 부착된 가장 큰 대자보는 “래커 시위 복구 비용으로 대학이 학생에게 요구했던 54억원의 산정 근거와 논리적 구조를 밝히고 있지 않다. 학생을 향한 압박으로 느껴지는 행사를 취소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학생들은 이번 결정에 학교 구성원 전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학생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동덕여대 20학번 B씨는 “학생들은 십중팔구 (공학 전환을) 이해할 거다. 다만 여대를 선택해서 온 학생들과 의견수렴을 하는 과정이 미흡했고, 총장 직선제 등 투명한 재정 운영과 소통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총학생회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동덕여대 총학생회 산하 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위)는 이날 총장 입장문 발표에 대해 “교육부와 국회 교육위원회 등 국가기관의 조정을 요청해 학생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대학을 위해 학우들과 끝까지 행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운위는 학교 측에 지난 3일부터 5일 오후 6시까지 이뤄지는 ‘공학 전환에 대한 8000 동덕인 총투표’ 결과를 수용하라고 요구했다. 일부 학생들은 교문 앞에서 동덕여대의 정관 변경을 허가하지 말고 공학 전환 추진 과정에 개입해달라는 1인 피켓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졸업한 동문들로 구성된 동덕여대 민주동문회는 지난 3일, 공학 전환 타당성 분석 결과 발표회가 열리는 동덕여대 백주년기념관 앞에 섰다. 이들은 동문과 학생의 의사 존중 없이 여대 존치를 무너뜨리고, 이해당사자를 포괄적으로 구성하지 않는 등 대학 본부의 처사를 비판했다.

김종분(국어국문학과 77학번) 동덕여대 민주동문회 회장은 “공학 전환 논란의 본질은 비민주적 학사 운영과 열악한 교육 환경 문제로, 이를 해결하지 않은 채 방향만 바꾸는 것은 학생들의 정당한 요구를 외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위를 지켜보던 동덕여대 24학번 C씨는 “학교의 경쟁력을 이유로 공학 전환을 한다는 건 순서가 맞지 않다. 그동안 제기됐던 사학 비리부터 우선 해결이 필요하다”고 목소리 높였다.

래커칠 시위와 고소 후…
본관 통제 및 동문 패싱

김 총장은 공학 발표문에 학내 구성원 사이에서 공학 전환에 찬성하는 의견이 더 많았다고 설명했으나, 사실 구성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학생의 다수 의견은 ‘여대 유지’였다. 지난 2일 공론화위원회가 발표한 논의 결과에 따르면,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학생 2059명(71.3%, 최종조사 기준)은 여대 유지 의견을 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전체 구성원 수가 3176명(학생 2889명, 교원 163명, 직원 124명)임을 따져보면, 응답자 3명 중 최소 2명이 여대 존치 의견을 낸 셈이 된다. 다만 대학은 재학생들의 반대와 우려가 변함없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만 했다.


중운위는 입장문을 통해 “115년간 이어져 온 여성고등교육기관인 동덕여대가 2029년 이후에도 지속되기를 원한다”며 “대학은 더 이상 미래 발전이나 구성원 간 화합이라는 추상적 표현 뒤에 숨지 말아야 하며, 재학생들이 왜 공학 전환을 반대하는지 그 이유를 깊이 숙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1월5일, 대학의 발전을 논의하는 대학비전혁신추진단 2차 회의에서 감소하는 학령인구에 대비해 남녀공학 전환이 그 해답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강의 도중 나온 수의 언급을 통해 간접적으로 동덕여대 남녀공학 전환이 확실해졌다는 소문은 빠르게 확산돼 며칠 뒤인 11월11일부터 2000여명의 반대 시위, 서명, 대자보와 총학생회의 반발을 낳았다.

대학 측은 “여러 아이디어 중 하나일 뿐 결정된 건 없다”고 해명했으나, 총학생회 측은 공학 전환이라는 발상 자체에 문제가 있다며 전환 시도의 철회를 요구했다. 학생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당시 동덕여대 캠퍼스 교문 앞에 공학 전환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근조화환을 설치하고, 래커로 ‘공학 반대’ 등 문구를 칠하는 등 교내 시설을 훼손하고 수차례 농성까지 벌였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김 총장의 임기 내 역할 수행은 미흡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학교 측은 교내 점거 농성에 참여한 학생들을 재물손괴 및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이후 학교가 고소를 취하하고 처벌불원서를 제출했으나, 해당 혐의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지 않아 학생 22명이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공론화위원회가 지난 9월에 네 차례, 양일에 걸쳐 하루 두 차례씩 진행한 타운홀미팅에 김 총장은 단 한 차례도 참석하지 않았다. 여성 대학의 존립과 관련된 중요한 자리에 의사결정권자가 참석하지 않은 사실에 논란이 일었다.

한 동덕여대 교수는 지난 2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실질적으로 김명애 총장보다 재단의 결정권이 더 크기 때문에 교수나 교직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거나 학생들을 보호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미 결정된 공학 전환에 대해 ‘끼워 맞추기’라는 비판이 이어지면서 조속한 대화와 소통이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횡령 혐의

서울 종암경찰서는 지난 4일, 김명애 총장을 업무상 횡령 및 사립학교법 위반 혐의로 지난달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김 총장은 교육과 무관한 법률 자문·소송 비용을 교비 회계에서 지출한 혐의를 받는다.

학교 측은 “대학 운영상 필요한 법률 비용”이라고 해명했지만, 여성의당은 “총장이 횡령 혐의로 송치됐는데도 학교는 아무 조치 없이 공학 전환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jen9@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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