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만 해도 ‘간편식’이라는 단어는 바쁜 직장인이나 1인 가구를 위한 대체 식사 정도로 인식됐으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코로나 팬데믹을 기점으로 식생활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간편식(Home Meal Replacement, 이하 HMR)은 더 이상 ‘임시방편의 끼니’가 아닌 하나의 식문화이자 산업 구조로 자리 잡았다.
특히 외식 프랜차이즈 업계가 이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매장에서 음식을 제공하던 브랜드들이 이제는 가정으로 들어가는 브랜드로 진화하며, 식품 산업 전반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먹는 편의성’이 새로운 경쟁력이 된 시대다.
눈부신 성장
국내 간편식 시장은 지난 10년 사이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시장 조사기관에 따르면 2015년 약 1조원 수준이던 국내 간편식 시장 규모는 2024년 기준 약 6조원을 넘어섰다. 더 이상 간편식은 단순한 냉동식품이 아니라, ‘레스토랑급 퀄리티’를 지향하는 하나의 프리미엄 제품군으로 발전했다.
프랜차이즈 업계의 움직임도 빠르다. 교촌치킨, BBQ, 본아이에프, 한솥, 뚜레쥬르 등 다수의 브랜드가 이미 간편식 전용 제품군을 운영 중이다.
이들은 매장 메뉴를 그대로 재현한 냉동·즉석 제품을 선보이며, 브랜드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유통 시장에 진입했다.
예컨대 교촌은 ‘간편조리 치킨’ 시리즈를 출시해 집에서도 동일한 맛을 구현할 수 있게 했고, 본아이에프는 ‘본도시락 간편식’을 통해 도시락 브랜드의 정체성을 가정식으로 확장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제품을 추가한 수준을 넘어 프랜차이즈 비즈니스 모델의 근본적인 전환을 의미한다. 예전에는 점포 수 확대가 매출 성장의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브랜드 자산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 유통’이 수익 구조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매장을 늘리지 않아도 소비자 냉장고 속에 브랜드를 심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간편식의 확산은 외식업의 플랫폼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전통적인 프랜차이즈 모델이 ‘조리와 판매’를 중심으로 했다면, 이제는 기획, 유통, 데이터 분석, 그리고 브랜드 경험의 관리가 중심 역할로 이동하고 있다.
SPC그룹의 ‘파리바게뜨 PB집밥’, CJ푸드빌의 ‘뚜레쥬르 HMR 샐러드’, 롯데GRS의 ‘엔제리너스 밀키트’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매장을 통해 축적된 레시피와 노하우를 활용하여, 별도의 생산 라인과 물류망을 구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프랜차이즈 본사는 제조업과 유통업의 경계를 넘나드는 하이브리드 플랫폼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최근에는 배달 전문 브랜드와의 협업도 활발하다.
프레시지, 쿠캣마켓 등 밀키트 기업이 프랜차이즈 메뉴를 간편식 형태로 공동 개발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맘스터치 X 프레시지 버거세트’, ‘홍루이젠 X 쿠캣 샌드위치’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외식 브랜드의 메뉴 경쟁력과 간편식 브랜드의 제조·유통 기술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공생 모델로 평가된다.
외식업 플랫폼화 가속화
비미각적 요소까지 중요
오늘날 소비자는 단순히 ‘빨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간편하면서도 건강하고, 합리적이면서도 맛있는 ‘제대로 된 한 끼’를 찾는다. 이 같은 요구는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더욱 뚜렷하다. 이들은 영양 정보, 원재료의 출처, 환경친화적 포장재, 브랜드의 사회적 가치 등 비(非)미각적 요소까지 중요하게 여긴다.
이에 따라 프랜차이즈 브랜드들도 ‘간편식=저품질’이라는 인식을 깨기 위해 품질 향상에 힘을 쏟고 있다.
본도시락은 저염·저당 식단형 HMR을 출시했고, 맘스터치는 에어프라이어 전용 간편식을 내놨다. 또 편의점과 협업한 냉장 간편식, 정기 구독형 간편식 서비스 등 새로운 형태의 유통 모델도 확대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유통 채널 확장이 아니라 소비자의 식생활 전반을 관리하는 브랜드 경험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간편식 프랜차이즈의 경쟁력은 데이터와 기술, 그리고 글로벌화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첫째, AI 기반의 개인화 서비스가 본격화될 것이다. 건강 상태, 식습관, 기호 데이터를 바탕으로 맞춤형 식단을 추천하거나, 정기 구독으로 자동 배송하는 모델이 빠르게 확산될 전망이다. 일부 스타트업은 이미 카메라로 영양소를 분석하는 기능을 간편식과 결합해 실험 중이다.
둘째, 유통의 경계 붕괴가 가속화된다. 과거 외식 브랜드의 주 무대는 오프라인 매장이었지만, 이제 앱과 온라인몰, 편의점, 구독 플랫폼이 모두 브랜드의 일부로 통합되고 있다. 매장은 단순한 식사 공간을 넘어, 제품 체험과 콘텐츠 홍보의 ‘쇼룸’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
셋째, 글로벌 시장 진출이다. K-푸드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간편식은 수출 효자 품목으로 부상했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본아이에프의 ‘본죽’, 오뚜기의 ‘3분 요리’ 등이 이미 북미·일본·동남아 시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프랜차이즈 브랜드들도 자사 메뉴를 현지화한 HMR 형태로 진출하면서, ‘브랜드의 세계화’를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간편식의 확산은 외식 산업에 위기이자 기회다. 매장의 존재 이유가 약화된 듯 보이지만, 동시에 브랜드 자산이 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소비자의 일상 속으로 확장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제 외식업의 경쟁은 맛의 우열보다 소비자와 얼마나 자주, 지속적으로 연결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간편식은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소비자와 브랜드가 관계를 유지하는 새로운 접점이다.
제2의 르네상스
결국 간편식 프랜차이즈는 외식 산업의 제2의 르네상스를 여는 주역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맛의 혁신이 기술과 유통을 만나고, 편의가 품질과 결합하는 순간, ‘먹는 산업’은 더 이상 주방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제 그 미래는 냉장고 속, 앱 속, 그리고 소비자의 일상 속에 존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