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과거 아르바이트생의 임금을 ‘10원짜리 동전 수천개’로 지급해 논란을 일으켰던 PC방 업주 김씨가 10년 만에 또다시 등장했다. ‘갑질 업주’로 불렸던 김씨가 이번에는 지인 명의를 이용한 대출 사기 혐의로 수사선상에 올랐다.
“이따금 만나 술 한잔도 하던 친구였어요.” 피해자 A씨는 울분을 토했다. <일요시사>가 만난 A씨는 김씨와 고등학교 동창이다. 서로 가정사까지 털어놓을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다.
A씨에 따르면 2021년 가을, A씨는 김씨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의 연락이었다. 김씨는 “PC방 세금 문제로 명의를 바꿔야 한다”며 “3년만 이름을 빌려주면 1800만원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A씨는 과거 김씨가 운영하던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고, 그가 여러 매장을 운영하는 ‘잘나가는 사업가’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인천 재력가?
결국 A씨는 고민 끝에 명의를 빌려주기로 했다.
김씨는 곧장 A씨를 부천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로 불렀다. 계약서에는 ‘시설대여(리스) 계약’이라는 문구가 찍혀 있었다. 캐피털을 통한 장비 리스 계약이었다. 리스 계약은 캐피털사가 창업자 대신 장비 대금을 먼저 지급하는 금융상품이다. 통상 PC방·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초기 자금이 부족한 창업자가 많이 이용한다.
캐피털사는 이용자 신용도와 사업자 정보를 심사해 대출 실행 여부를 결정하며, 장비업체는 납품 후 수령 확인서를 캐피털사에 제출하면 대금을 지급받는다. 김씨의 첫 번째 계약 당시 금액은 2억4205만원, 실제 실행 금액은 2억3000만원이었다.
그로부터 6개월 뒤인 2022년 3월, 김씨는 A씨에게 다시 한번 연락해 왔다. “세금 폭탄을 맞게 생겼다. 이번만 더 도와달라”는 간절한 부탁이었다. A씨는 마지못해 한 번 더 서명했다. 두 번째 계약 금액은 2억9110만원, 실행 금액은 1억6000만원이었다.
하지만 A씨 통장으로 돈이 들어온 적은 한번도 없었다. “김씨가 ‘캐피털에서 내 계좌로 바로 받는다’고 했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기나긴 기다림에도 김씨는 끝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A씨는 계약서상 사업장 주소로 찾아갔다. 기재된 시흥 삼미시장 인근과 인천 남동구의 주소에 PC방은 흔적조차 없었다. A씨는 “현장을 직접 찾아가 봤는데, PC방이 들어설 자리도 아닌 작은 건물이었다”고 말했다.
리스 계약은 보통 기기 납품을 전제로 한다. 캐피털사가 장비 공급업자에게 돈을 지급하면 이용자(명의자)가 원금과 이자를 갚는 구조다. 하지만 A씨의 경우 실제 장비를 납품받은 사실이 없었다. 이후 A씨에게는 연체 안내 문자와 독촉 전화가 쏟아졌다.
지인 명의 빌려 대출금 갈취
과거 인천 일대 사업장 운영
그는 “대출이 시작되자마자 문자메시지가 왔고, 김씨에게 보여주면 ‘오늘 처리한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전했다.
결국 A씨 명의로 된 대출금은 모두 연체 처리됐다. C캐피털사는 ‘계약 해지 예고문’을 보냈다. A씨는 “도장은 김씨가 가지고 다녔다”며 “물건 수령증 같은 서류도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약속한 1800만원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또 다른 피해자 B씨도 같은 수법에 당했다고 주장했다. B씨 주장에 따르면 해외에서 일하던 B씨는 A씨를 통해 김씨를 알게 됐다. “명의만 빌려주면 180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에 동의했다. 2022년 7월8일, B씨 명의로 C캐피털과 두 건의 리스 계약이 체결됐다.
금액은 각각 1억8000만원과 1억2000만원이었다. 대출금은 B씨 계좌로 한번 들어왔다가 즉시 김씨 계좌로 이체됐다. B씨가 실제로 받은 돈은 600만원뿐이었다. 이후 연체 문자와 독촉이 이어졌다.
B씨가 항의하자 김씨는 “내가 알아서 한다”며 오히려 “그거 무시하고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B씨도 A씨와 마찬가지로 약속된 돈을 받을 수 없었다.
현재 A씨와 B씨는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고소를 진행한 상태다. 이후 알게 된 사실은 계약 당시 김씨가 제출했던 사업자 등록증이 위조됐다는 점이다. B씨는 “캐피털 직원과 공모한 것이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A씨 또한 계약 당시 김씨가 “캐피탈 직원과 잘 아는 사이”라며 “계약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현재 추정되는 피해자는 10명 이상이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진술서에 언급된 피해자만 7명, 고소를 원하지 않아 조용히 넘어간 피해자들도 있었다. 모두 김씨의 요구로 명의를 빌려주고 같은 방식으로 대출 계약을 진행했다고 증언했다.
추가로 확보한 김씨가 당시 관리하던 사업장 리스트에도 같은 이름이 보였다. 일부 피해자는 ‘동업 계약서’까지 작성했다.
“3년이 지났을 때 PC방을 인수할 수 있는 영업권을 주겠다”는 말에 속았다는 것이다. 실제 PC방 명의를 넘겨받았다가 임차료 연체로 건물주에게 소송을 당해 법원의 회생 절차를 밟은 이도 있었다.
또 일부 피해자는 계좌 압류 통보까지 받았다. 피해자들은 “김씨가 인감도장을 직접 가지고 다니면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고 입을 모았다. 리스 계약을 제외한 모든 서류는 김씨가 처리했다는 것이다.
밀린 월급 전액 10원짜리로
10년 전 갑질 사건 ‘파묘’
지난해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은 일부 피해자들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김씨의 책임을 인정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법원은 김씨가 지인 명의를 이용해 C캐피털을 통해 허위 리스계약을 체결하고 대출금을 편취한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 두 명에게 각각 3억9000만원과 3억33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피고 김씨가 피해자 명의를 이용해 대출을 실행하고 이를 유용했다”고 적시했다.
A씨는 “대출금을 받은 적이 없는데 내 이름으로 빚이 남았다”며 “지금도 독촉 문자가 계속 온다”고 토로했다. 문제가 된 리스 대출 채권은 이후 C캐피털에서 다른 캐피털사로 양도됐다. 새 채권사는 일부 피해자 계좌를 압류하고 지급명령을 진행 중이다.
피해자들은 “김씨가 수년간 같은 수법으로 주변 사람을 속였다”고 주장했다. 그가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재력 과시’ 때문이었다. 김씨는 과거 인천 일대에 30개 이상의 사업장을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PC방, 노래방, 베이커리, 골프장 등 업종도 다양했다. A씨는 ”외제차를 타고 다녀 자산가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자산이 60억원이 있는데 50세 이전에 100억원을 만들어 일을 안 하겠다고 말하곤 했다”고 덧붙였다.
김씨의 재력은 지인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A씨는 “당시 여러 개의 매장을 운영했고 겉보기에는 재력가로 보였다. 그래서 의심 없이 명의를 빌려줬다”고 말했다.
A씨는 “김씨는 이미 과거에도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고 밝혔다. 2014년 부천 원종동에서 PC방을 운영하던 당시, 아르바이트생 임금을 모두 10원짜리 동전으로 지급해 여론의 뭇매를 맞은 사건이다. 당시 ‘임금체불 신고를 당하자 보복성으로 지급했다’는 비판이 쏟아진 바 있다.
현재 피해자 상당수는 신용불량 상태에 놓였다. 연체 통보와 압류로 생활이 무너졌고, 일부는 개인회생 절차를 밟고 있다. A씨는 “너무 힘들고 괴롭다”면서 “고소 후 한동안 연락이 닿았지만 이제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늑장 수사
김씨가 다른 사람들에게 접근하고 있다는 목격담도 들려왔다. B씨는 “이 와중에 같은 수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접촉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아직도 김씨는 활보하고 다니는데 수사는 더디게 흘러가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일요시사>는 김씨에게 대출 사기 혐의에 대해 물었지만 “재판 중인 건 있지만 밝힐 수가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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