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고로 민주 국가라면 국민의 권리와 자유의 보호를 그 책무로 할 것이다. 이 권리와 자유에는 응당 범죄로부터의 안전을 보장받을 권리와 범죄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도 포함될 것이다.
그럼에도 과연 우리는 범죄로부터 안전하고 자유로운지 의문이다. 매년 250만건 이상의 각종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는 공식 범죄 통계도 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암수 범죄(Dark Figure)까지 고려한다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범죄가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우리는 범죄로부터 안전하지도 자유롭지도 못하며, 범죄만큼의 피해자도 발생한다.
문제는 대다수의 이 범죄 피해자들은 물론이고 모든 국민이 국가에 안전을 담보해 줄 것을 기대하며 세금을 납부하고, 필요한 모든 권한도 위임했음에도 적지 않은 무고한 시민들이 결코 범죄로부터의 안전과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절대다수의 범죄 피해자가 아무런 잘못도 없이 필요한 비용을 부담하고, 필요한 권한을 위임받은 국가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해 범죄 피해자가 된, 다시 말해서 단지 범죄가 발생한 시간과 장소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불행한 희생자가 됐다면 피해자화에 대한 책임도 국가에 있음이 분명할 것이다.
그럼에도 무고한, 그리고 불행한 피해자들을, 존재조차 찾기 힘든 ‘잊힌 존재(Forgotten being)’라고까지 할 정도라면, 그것은 국가의 기만이자 직무유기이다.
당연히 이런 현실은 개혁돼야 하고, 우선 이를 위해서는 지금의 사법제도의 패러다임을 가해자-중심, 가해자-지향에서 피해자를 지향하고 피해자를 중심으로 하는 사법제도와 절차로 전환해야 한다.
이 같은 사법 패러다임의 전환은 곧 범죄 피해자가 처음부터 피해를 경험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을 시작으로, 피해자가 된 후에는 그 피해로부터 피해 이전의 상태로 완전하게 회복하는 것을 사법 정의의 실현이자, 궁극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
피해자의 피해가 회복되지 않는 사법 정의는 완전한 정의가 아니다. 더 완전한 피해자 중심의 피해자 지향의 사법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몇 가지 청원한다.
먼저 가해자 권리 장전(Bill of Rights)에 버금가는 피해자 권리 장전(Bill of Victim’s Rights)을 제정하자. 여기에 피해자의 권리와 역할, 그리고 피해의 회복을 위한 국가의 책무와 이를 위한 지원과 보호를 구체화하자.
더 구체적으로, 피해 회복은 범죄가 발생한 장소와 시간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어려워진다. 지역사회와 경찰이 범죄에 가장 가까이 있다면 이들이 피해자 지원과 보호의 최일선이 돼야 하는데, 국가가 개인의 삶에 개입해서 좋은 것은 거의 없다.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직접적인 개입 또한 예외일 수 없다. 공공자원의 한계와 국가 개입으로 인한 낙인을 생각한다면 피해자 지원과 보호 정책은 경찰이 맡고, 그 집행은 지역사회의 몫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 중에서도 자치경찰이 피해자 지원과 보호의 중심이 되면 좋겠다.
범죄 예방이 자치경찰의 주요 임무의 하나고, 범죄 피해의 예방이라는 피해자화 예방(Victimization Prevention)이 범죄 예방보다 더 요구되는 정책적 고려라는 면에서도 그렇다.
경찰을 중심으로 국가는 필요한 법제와 정책을 마련하고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고, 미국의 전국 피해자 지원 조직(National organization of Victim Assistance)과 전국 피해자 지원 센터(National Center for Victims of Crime), 뉴질랜드의 피해자 지원단(Victim Supporters)처럼 우리도 피해자 지원과 보호의 실행은 한국 피해자 지원 협회(Korean Organization of Victim Assistance)와 같은 민간 주도로 하자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단체나 조직이나 기관에서 어떤 지원과 보호를 하건 상당한 자원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범죄 피해자 지원과 보호를 위한 자원은 국가가 법률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아동 청소년의 교육을 위해 중앙정부가 시도 교육청으로 내국세의 20.79%에 해당되는 재정적 지원을 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처럼 범죄 피해자 재정교부금과 같은 방안을 법제화하자.
학령 인구는 매년 급감하고 있음에도 이 교부금은 세수의 증대와 함께 늘어나는 기이한 현실을 보면서 이를 합리화해 무고한 범죄 피해자에 대한 국가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을 재정교부금제도로 마련하자는 것이다. 범죄 피해자의 지원과 보호는 국가의 책무이면서도 시민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