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는 4만여개의 사단법인이 등록돼있다. 중앙정부 허가 법인만 7000여개, 지방자치단체 허가 법인은 3만개가 넘는다. 이들은 문화·예술, 학술·복지, 체육·환경 등 각 분야에서 공익을 내세우며 출발한 단체들이다.
그러나 이름은 ‘비영리’고, 간판은 ‘공익’을 내세우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과연 공익을 위한 사단법인인지 의문이 든다.
현대는 투명성이 중요한 시대인데, 아직도 일부 사단법인은 상 장사를 하면서 공익보다 사익을 챙기고 있다. 이들 때문에 “돈만 내면 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정서가 사회적 관습이 된 지 오래다. 이들이 주는 상은 심사위원회라는 허울을 쓰지만, 실상은 비용 납부 여부가 당락을 결정한다.
정부의 감독도 문제다. 허가를 내주고 관리는 대충한다. 수만개 사단법안을 일일이 점검할 역량이 없다는 핑계다. 회계 보고는 형식적이고, 부실 운영에 대한 허가 취소는 극히 드물다. 그 결과 사단법인은 공익의 탈을 쓰고 사익을 추구하는 무풍지대가 됐다.
사단법인은 세제 혜택과 사회적 신뢰라는 공공 자산을 바탕으로 운영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방치되면 피해는 국민이 떠안게 된다. 공익의 이름으로 세워진 제도가 공익을 해치는 아이러니,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 사단법인 제도의 민낯이다.
이제는 설립 요건을 강화하고 회계 투명성을 확보하며, 사후 관리와 평가를 제도화해야 한다. 공익적 실적이 없는 사단법인과 상 장사만 하는 사단법인은 과감히 퇴출시켜야 한다.
사단법인의 수익은 주로 정부 지원금, 기부금, 후원금 등 외부 재원에 의존하는 구조다. 그러나 공익을 해치는 사단법인일수록 상 장사를 통해 얻는 수익에 더 의존한다. 수상자로부터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원의 비용을 받기도 한다.
필자는 공익을 가장해 상 장사만 하는 사단법인은 정부가 나서서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상을 돈으로 사고 파는 행위는 공익을 내세운 사단법인의 정체성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신뢰 자산을 파괴한다.
이재명정부는 공익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주권 간판을 걸고 출발한 정부다. 그래서 정책을 보면 기본사회, 기본권 확대, 공공성 강화라는 공익 정신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정부는 4만여개의 사단법인 중 상당수는 활동을 멈춘 휴면 상태고, 일부는 돈을 받고 상과 인증을 남발하고 있는 데도, 국민주권의 기반이 되는 공익의 이름으로 방치된 사단법인에 대해 문제의식도 없는 것 같다.
국민주권을 강조하면서 공익을 갉아먹는 사단법인을 그대로 두고 있다는 건 이정부의 모순이다. 공익을 해치면서 공익을 가장하는 사단법인의 모순과 다를 바 없다.
이정부가 공익을 기반으로 한 국민주권을 말하려면, 먼저 공익의 탈을 쓴 사단법인부터 정리해야 한다. 형식적 설립 허가나 사후 관리에 그치지 말고, 전수조사를 해서라도 부실 사단법인을 색출해 당장 퇴출시켜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국민을 기만하지 않는 첫걸음이다.
미국은 보고서를 3년 제출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면세 자격을 , 영국은 회계 부정에 연루된 인사의 임원 자격을 박탈한다. 일본은 공익법인과 일반법인을 구분해 공익성을 엄격히 인증한다. 선진국은 이미 제도와 문화를 통해 공익법인의 신뢰를 관리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여전히 상 장사가 공공연히 벌어지는 나라로 남아 있다.
국민주권은 구호로 완성되지 않는다. 제도의 투명성, 조직의 신뢰, 공익을 향한 진정성이 쌓여야 비로소 가능하다. 공익의 가면을 쓰고 국민의 신뢰를 거래하는 사단법인을 방치한 채 국민주권을 말하는 건 공허한 선언일 뿐이다.
부실 사단법인을 정리하는 건 공익을 바로 세우는 개혁이자, 국민에게 국민주권을 찾아주는 것이고, 우리 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이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사단법인 제도의 대청소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자동화된 제재다. 미국은 공익법인이 재정 보고를 3년 연속 제출하지 않으면 면세 자격을 자동 취소한다. 우리도 공시를 반복적으로 미이행한 법인은 자동 제재 절차가 발동되도록 해야 한다.
둘째, 투명 공시다. 정관, 이사진, 재정 내역, 수익 구조를 누구나 쉽게 볼 수 있어야 한다. 상 인증이 유료라면 대외 홍보물과 보도자료에 반드시 “유료 수상(광고성)”이라는 문구를 명시하게 해야 한다.
셋째, 인적 제재다. 영국은 공익단체에서 부정에 연루된 이사에게 최대 15년간 임원 자격을 박탈한다. 우리도 회계 부정이나 공익 훼손을 저지른 인사에게는 사단법인 임원으로 다시 설 수 없게 해야 한다.
이정부가 더 이상 상 장사로 국민을 속이는 사단법인을 방치하면 안 된다. 공익을 해치는 사단법인은 당장 퇴출시켜야 한다. 그래야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사답법인에도 누가 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이 대선 기간 때부터 강조해왔고, 지금은 이정부의 제2의 간판이 된 ‘진짜성장’이 빛을 발하려면, 가짜 사단법인과 가짜 수상자가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필자는 며칠 전 꽤 알려진 사답법인 S 이사장으로부터 임원으로 참여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한참 고민하다가, 상 장사만 안 하면 참여하겠다고 했다. 대신 지원금이나 기부금, 그리고 회원들이 낸 회비를 통해 사업을 추진하고, 오히려 수상자에게 상금을 주는 시스템으로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아직 답은 듣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