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가 지난 7월29일 제33회부터 영상으로 공개되면서 국민적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국정 운영의 핵심 회의를 국민 앞에 드러내는 것은 과거 어느 정부도 시도하지 못했던 투명성 강화의 실험이다.
그만큼 이 대통령의 ‘소통 중심 국정 운영’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이재명정부의 국무회의에 대해 “역시 이재명답다”는 찬사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진행 방식과 메시지 전달에서 아쉬움이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국무회의는 국가의 중대사를 다루는 자리다. 그런데 간혹 이 대통령의 발언이 지나치게 빠르고 직설적이다 보니 메시지의 무게가 가벼워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발음이 거칠거나 억양이 날카롭게 들릴 때, 듣는 사람은 불필요한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국무위원 역시 때로는 독립적 파트너가 아닌 지시를 받는 부하 직원처럼 비친다. 이 대통령이 날선 어조로 국무위원을 질타하면 분위기는 단박에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의 의도는 책임 행정을 강조하는 데 있지만, 그 장면을 바라보는 국민은 다르게 해석할 소지가 있다.
우리 국민은 박근혜정부 시절 대통령 지시사항만 수첩에 깨알같이 받아썼던 국무위원들의 모습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특히 최근 이 대통령이 한 국무위원에게 “지금도 지휘할 수 있잖아요. 권한이 있으면 최대한 쓰라”고 언급한 장면은 논란이 컸다. 국무위원의 권한은 본래 국민을 위한 도구지, 그 자체로 과시하거나 행사하는 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발언은 이 대통령이 법과 원칙을 중시한다는 의도로 한 말이지만, 일부 국민에겐 ‘권력을 행사하라’는 뉘앙스로 전달됐다. 국무회의에서 말 한마디가 어떻게 비칠 지 세심하게 점검하지 못한 것이다.
또 “국민을 위한 개혁”이라는 이 대통령의 말 뒤엔 종종 특정 진영을 향한 비난이 섞여 있다. 국무회의 발언이 정책 설득이 아니라 정치적 선동으로 들린다면 국민은 국무회의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국무회의가 국정을 논하는 회의가 아니라 정치 집회처럼 느껴져선 안 된다.
한 야당 인사는 “국무회의라더니 이재명의 독백 콘서트 같다”며 “정책은 사라졌으며 훈계와 정치 구호만 난무하고, 장관은 엑스트라, 국민은 관객에 불과한 국무회의를 왜 하느냐”고 이정부의 국무회의를 비판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이 대통령은 야당 인사의 억지 공격으로만 치부해선 안 된다.
지난 9일 열렸던 41회 국무회의에서도 이 대통령은 최저 신용자 보증부 대출금리가 15.9%라는 구윤철 경제부총리의 보고를 받자마자, 즉시 “금융사가 초우량 고객에게 초저금리로 돈을 많이 빌려주는데 0.1%p만이라도 부담을 조금 더 지워 금융기관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15.9%보다 좀 더 싸게 빌려주면 안 되느냐”고 말했다가 야당과 많은 국민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빌린 돈을 성실히 갚아 신용도를 높이면 오히려 이자를 올리고, 빌린 돈을 갚지 않아 신용도가 떨어지면 오히려 이자를 내려주는 정책은 신용 사회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모순’이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전 국민이 TV를 통해 보고 있는 국무회의장에서 정제되지 않은 개인적인 생각을 아무 스스럼 없이 발언하면 안 된다.
사이다 발언은 국회의원 때나 통하지 대통령의 품격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 대통령에겐 탁월한 강점이 있다. 현장에서 직접 주민과 부딪히며 체득한 소통 능력과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탁월함은 역대급이다. 실제로 지방정부 시절부터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행정가’로 유명했다. 이런 자신감 때문에 기존 정부에서 하지 못했던 차별화된 국무회의 공개를 시도했다고 본다.
그런데 이 역시 자만감으로 보이는 순간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지난 100일 동안 이정부가 서민과 청년을 위한 생활 밀착형 정책을 적극적으로 내놓고, 국제무대에서도 당당히 목소리를 내며 국익을 지키고자 하는 모습은 국민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주고 있다. 며칠 전 치킨게임만 하고 있는 여야 대표를 불러 소통의 장을 만들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단독으로 영수회담을 한 것도 박수받을 만한 일이다.
다만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이제는 더 큰 무게와 품격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국무회의장에서 이 대통령의 언행 하나하나는 단순한 개인적 발언이 아니라 곧바로 국민을 향한 메시지다. 그래서 즉흥적이지 않고 정제된 내용과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따라서 조금 더 여유 있는 어조와 국무위원들의 발언을 경청하는 토론의 장면이 곁들여진다면 국무회의는 단순한 정책 조율 자리를 넘어 국민이 신뢰하는 국정의 상징적 무대가 될 것이다. 이는 곧 이 대통령의 개혁 의지와 진정성을 더욱 뒷받침하는 힘이 된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낮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와 국정은 긴 호흡으로 평가받는다. 이 대통령 스스로도 “열심히 하면 언젠가 더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국민은 단기적인 지표보다 시간이 흐른 뒤 남게 될 국정의 성과와 품격을 기억할 것이다.
지금 이 대통령에게 필요한 건 ‘아첨꾼의 박수’가 아니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진정성, 그리고 대통령이라는 직위에 걸맞는 국가 최고 지도자의 품격이다.
이 대통령은 이미 지방행정을 통해 실무 능력과 정책 추진력을 입증한 바 있다. 이제는 그 경험을 토대로 우리나라 전체를 이끄는 최고 지도자로서 한 단계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국무회의가 열린 토론의 장으로 거듭난다면 우리 국민은 이정부를 더 신뢰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이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자산이자,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소중한 토대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대통령은 더 이상 성남시장이나 경기도지사가 아니다. 지방자치단체장 시절의 시야에 갇혀 있어선 안 된다. 지자체장 때 성공적인 경험도 국정 운영에 분명 자산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것을 국가 차원의 품격 있는 국정 리더십으로 승화시키는 일이다.
국민은 이 대통령에게 단순한 지시가 아니라, 설득과 공감, 그리고 무게 있는 비전을 원한다. 이 대통령이 이 기대에 부응할 때,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성숙한 민주주의와 국정 운영의 새 길을 열어갈 것이다. 국민이 이 대통령에게서 희망을 찾는 이유다.
국무회의는 국민을 향한 창(窓)이다. 대통령의 태도와 말씨가 협치와 품격을 보여주지 못하면 그 창은 신뢰가 아닌 불신만 드러낼 것이다. 이정부가 국무회의 품격을 높이고 싶다면, 이 대통령 스스로 태도와 언어부터 바꿔야 하고 정제된 내용만 말해야 한다. 그리고 야당을 공격하는 정치 선동도 삼가야 한다.
그럴 리 없겠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 매일 아침 기자들의 질문에 직접 답하는 도어스태핑을 시도했다가 논란이 일자 중단했듯이, 이 대통령이 국정 운영에 차질이 생긴다는 이유로 국무회의 공개를 중단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 국민은 이미 국무회의 공개에 익숙하고 이를 국정 감시 수단으로 삼고 있다. 국무회의를 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