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식 통계를 인용한 각종 방송과 신문 등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서울에서 보이스피싱 범죄 발생 빈도가 높고, 그 피해액도 전체 피해액의 30%가 몰려 있다고 한다. 각종 피싱 범죄에 가장 취약한 지역은 강남 3구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의 발표에 의하면, 보이스피싱 피해액이 지난해 9월 249억원에서 같은 해 12월에는 610억원으로 3개월간 무려 2.5배나 증가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강남 3구로 불리는 강남, 서초, 송파에서 전체 피해액의 약 30% 정도가 발생했다.
또 강남 3구에 거주하는 피해자 중에서도 60대 이상 노인, 특히 60대 이상 여성들의 피해가 전년 대비 무려 3배나 급증했다고 한다. 2억원 이상 피해자 80%가 여성이었으며, 60대 여성이 절반 이상이었다.
그렇다면,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왜 강남에 거주하는 노인들이 가장 많을까?
세속적인 설명이지만 강남 노인들의 ‘현금 동원 능력’이 그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부유층에 속한 강남 인구 중에서도 노인 여성들이 피싱 범죄의 주요 피해자가 되는 것은 바로 그들의 현금 동원 능력 때문이라는 이유가 이론적으로도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범죄이론 중에서 현대적이고, 흔하게 인용되고 있는 하나가 상황적 이론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마커스 펠슨(Marcus Felson)과 로렌스 E. 코헨(Lawrence E. Cohen)의 ‘일상 활동 이론(Routine Activity Theory)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론은 인간 생태학(Human ecology)과 합리적 선택(Rational Choice)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범죄는 동기가 부여된 범법자(Motivated offender), 매력적인 표적(Attractive target), 그리고 표적에 대한 보호의 부재라는 조건이 충족돼야만 일어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세 가지 조건이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충족돼야 하는 범죄 발생의 필요 충분조건이다.
여기서 강남 3구의 노인들이 피싱 범죄의 주요 피해자가 되는 것은 제대로 보호되지 않는 매력적인 표적이기 때문이다. 다량의 현금이나 현금 동원 능력 등 피싱범에게 매력적인 표적임에도 앱 사용 등 디지털 금융거래에 익숙하지 않아 취약함에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에 이상적인 피해자(Ideal victim)가 된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합리적 선택도 왜 피싱범들이 강남 노인을 주로 표적으로 삼는지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쾌락을 극대화하면서 고통은 최소화하는 선택을 하기 마련인데, 이처럼 손해 보지 않는 것, 즉 쾌락과 고통을 계산한다는 것이 다른 말로 곧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일상 활동 이론에서의 합리적 선택은 바로 표적의 선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범죄의 동기를 가진 범법자는 범행하기까지 몇 단계 선택과 결정을 한다. 범행할 것인가, 한다면 어떤 범행을,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범행 여부의 결정을 동기라고 한다면, 동기를 가진 범법자는 언제, 어디서, 누구를 대상으로, 어떻게 범행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데, 이들 요소가 대부분 피싱범들이 강남 노인들을 주요 표적으로 선택하는 이유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결국 범행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크지만, 범행이 쉬워서 성공할 확률은 높지만 붙잡힐 위험성은 낮은 표적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강남 노인들이 만약 위에서 추정한 것처럼 다량의 현금이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현금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도 높지만, 디지털 금융거래 등에 취약해 제대로 보호되지 않는다면 범행은 쉽고, 범죄자 입장에서 볼 때 성공 확률이 높고, 검거될 위험은 낮아진다고 보기에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비단 보이스피싱 범죄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범죄는 범행 동기, 표적, 그리고 범행 기회의 문제로 모아진다. 범행 동기는 현실적으로, 실질적으로 해결 방안이 마땅하지 않으며, 범죄 발생 후 피해 회복도 어렵다. 그렇다면 예방이 우선이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표적과 기회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표적이 잠재적 범법자들에게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도록 잘 보호하고 스스로도 보호 능력을 키워서 범행의 기회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