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야당의 신임 지휘부가 결정되면서 이재명정부의 검찰 개혁이 발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은 검찰 개혁의 수혜를 제대로 받기 위한 수사 체계 개편 계획을 내놓았다. 검찰로 한정됐던 수사의 한계를 입법을 통해 해결한다는 방침이다. 문재인정부 검수완박 당시에도 경찰에게로 쏟아진 이점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경찰이 이번에는 제대로 콩고물을 주워 먹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이하 국수본)가 출범한 지 5년이 지났다. 국수본이 이번에 새로이 발표한 수사 역량 강화 로드맵은 새 정부의 검찰 개혁에 맞춰져 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국수본의 계획은 검찰을 배제하는 것이 주된 계획이기 때문이다.
로드맵 발표
국수본은 ‘수사역량 강화 종합 로드맵’을 지난 5일 발표하며 공격적으로 수사 체계 개편에 나섰다. 출범 5년 차를 맞은 국수본이 경찰 수사의 신뢰성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취지다.
구체적으로 경찰은 우선 검찰만 고발 받을 수 있는 공정거래 사건을 경찰도 고발을 수령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을 바꿀 계획이다. 기존에는 검찰에만 가능했던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 고발을 경찰에도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해 독점·담합·불공정거래 등 기업 사건에 대한 수사 권한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제129조는 기업결합·담합 등 부당한 공동행위, 불공정거래 행위, 부당이득 제공 등 불법행위가 발생했을 때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이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그 위반의 정도가 객관적으로 명백하고 중대해 경쟁 질서를 현저히 해친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검찰총장에게 고발해야 한다’는 규정이 따른다.
경찰은 정부가 검찰의 특수 수사 권한을 축소하는 흐름에 올라타 공정거래 사건을 직접 수사하며 경제 분야로도 수사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외에도 경찰은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을 추진해 검찰과 경찰에 차등 제공되던 금융 정보를 동등하게 제공받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기업의 공정거래 사건과 관련한 자료를 여러 수사기관이 받아 들여다본다면 보다 공정한 수사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경찰만 고발 대상에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다른 기관도 고발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검찰에 국한된 구조를 바꾸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수사 역량 강화 종합 로드맵 발표
공정거래법·임시조치 법원 청구 등
공정위의 고발 대상 기관을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은 이미 국회에 발의돼 있다. 6월20일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고발 대상을 경찰청장과 공수처장 등으로 확대한다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전 의원은 “다양한 수사 역량과 견제 기능이 작동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며 “고발 대상 기관을 확대해 수사의 다원화와 공정한 법 집행을 도모하고 경쟁 질서 침해에 대한 국가의 대응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발의 취지를 밝혔다.
또한 사법경찰관이 전자발찌 부착 등 임시·잠정조치를 법원에 직접 청구하도록 개선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스토킹처벌법과 가정폭력처벌법을 보면 경찰이 검찰에 이 같은 조치를 신청하면 검찰은 법원에 이를 다시 청구하는 구조다.

쉽게 말해 경찰의 추진안은 스토킹 범죄의 경우 ‘경찰→검찰→법원’ 과정을 진행하는 현행 시스템에서 검찰을 빼겠다는 것이다. 경찰은 “로드맵을 계기로 수사의 전 과정을 재정비해 국민에게 신뢰받는 수사기관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국수본은 권한의 과도한 집중을 우려한 듯 공정성과 전문성 향상도 로드맵에 담았다. ▲자체 수집 첩보를 ‘입건 전 조사(내사)’할 때 관서장의 승인을 받도록 수정 ▲사건관계인 원격화상조사 도입 ▲변호인 의견 검토 절차 강화 ▲서울변호사회 주관 사법경찰관 평가 전국 단위 확대 ▲경찰수사심의위원회 외부위원(시민) 증가 등이다.
아울러 수사 경험이 풍부한 시도경찰청 전담 수사체제를 확충해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등 중요 사건을 맡기고, 서울과 경기남부청에 설치된 광역수사단은 다른 지역으로 확대한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수사지원시스템(KICS-AI)을 도입해 수사 쟁점 판례를 제공하는 것도 포함했다. AI는 영장신청서 등 수사서류 초안을 자동 생성하는 역할이다. 이와 함께 가상자산·다크웹 추적·분석 시스템을 개발·고도화해 신종 범죄에 대응한다.
경찰이 이 같은 로드맵을 발표한 배경에는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 등 신임 여당 지도부가 오는 10월 추석 연휴 전 검찰개혁 작업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정의 검찰개혁 속도전에 경찰도 보조를 맞추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해석이다.
“민생과 치안 관련 사건 오히려 우려”
“국수본 출범 이후 수사력 불안 없어”
다만, 경찰의 이 같은 로드맵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수사부서가 경찰 조직 전반에 우후죽순 생기고, 그로 인해 경찰력이 해당 수사로 쏠리다 보면 역으로 민생 치안 대응과 일반 고소·고발 사건 대응 역량이 악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이번 로드맵을 계기로 수사의 전 과정을 재정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경찰이 공정위로부터 기업과 관련한 사건을 넘겨받는다 해도 실효성 있는 수사는 어려울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공정거래법을 전문으로 하는 백광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공정거래법은 기업의 경영과 관련한 판단도 들어가 있는 등 전문적인 영역이라 현재 검찰도 공정거래법 사건에 대해서는 공정위의 판단을 크게 뒤집지는 못하는 상황”이라며 “다른 사건들도 다수 담당하고 있는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진행할 수 있을 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한편 일각에서는 경찰의 계획대로 로드맵이 진행되더라도 경찰의 빈약한 수사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한 형사 사건 전문 변호사는 “검수완박 이후 경찰은 많아진 사건을 감당하지 못했는데 이번 검찰 개혁으로 장기 사건이 더 쌓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수본 관계자는 “2021년 국수본 출범 이래 악화됐던 사건처리 기간, 장기사건 보유 건수 같은 수치가 모두 개선됐다”고 반박했다.
약한 수사력?
실제로 국수본에 따르면 2022년 67.7일로 폭증했던 경찰 사건처리 기간은 지난 6월 기준 55.2일로 줄었다. 이는 국수본 출범 전인 2020년 55.6일보다 더 짧아진 수치다. 6개월 이상 장기사건 보유 건수도 같은 기간 4만3633건에서 2만9678건으로 약 32%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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