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한국 산악계의 전설적인 인물이자 세계 최초 ‘어드벤처 그랜드슬래머’ 허영호 대장이 담도암과의 투병 끝에 지난 29일 타계했다. 향년 71세.
30일 유족에 따르면 허 대장은 지난해 12월 담도암 진단을 받은 후 8개월간 병마와 싸워오다 전날 오후 8시9분경 세상을 떠났다.
담관암이라고도 불리는 담도암은 간에서 만들어진 담즙의 이동 경로인 담관의 상피에서 발생하는 악성 종양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60세 이상의 연령층에서 많이 발병하며, 여성보다 남성에서 1.3배 더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54년 충북 제천 출신인 고인은 제천고등학교와 청주대학교를 졸업한 후 산악인의 길을 걸었다. 허 대장은 1987년 한국 산악사에 획기적인 이정표를 세웠다. 한국인 최초로 혹독한 겨울철에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정상에 올랐던 것이다.
이후에도 그의 도전은 계속됐다. 2017년 5월에는 63세의 나이로 에베레스트를 다시 정복해 국내 최고령 등정자가 됐으며, 총 6차례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아 국내 최다 등정 기록도 수립했다.
특히 고인은 세계 산악계에서도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다. 1987년 에베레스트를 시작으로 1994년 남극점, 1995년 북극점에 도달해 세계 최초로 ‘3극점’을 모두 정복한 산악인으로 기록됐다.
허 대장의 발자취는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과 함께 전 세계 대륙에 새겨졌다.
남미의 아콩카과(6959m), 북미의 데날리(구 매킨리·6194m),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5895m), 오세아니아의 칼스텐츠(4884m), 유럽의 엘브루스(5642m), 남극의 빈슨 매시프(5140m)까지 7대륙 최고봉(세븐 서밋, Seven Summits)을 모두 정복하면서 세계 최초로 어드벤처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 같은 업적으로 그는 정부로부터 체육훈장 기린장(1982년), 거상장(1988년), 맹호장(1991년), 청룡장(1996년)을 받으며 한국 산악계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렸다.
산악인으로서 정점에 오른 허 대장은 유년 시절의 또 다른 꿈을 좇았다. 1998년 초경량 항공기 조종 자격증을 취득하고 ‘하늘의 모험가’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물론 순탄하지 만은 않았다. 2007년 새해 첫날, 경기 여주에서 이륙한 초경량 항공기가 전남 청산도 인근 상공에서 엔진 고장으로 바다에 추락하는 아찔한 사고를 겪었다. 그러나 이런 위기도 그의 도전 정신을 꺾지 못했다.
구조된 후 1년 만인 2008년 4월, 경기도 여주에서 제주까지 1000km 단독 비행에 재도전해 성공했다. 2011년에는 독도-마라도-가거도를 거쳐 고향 제천으로 돌아오는 1800km 국토 순례 비행도 완수했다.
말년까지도 허 대장은 초경량 항공기 세계 일주라는 원대한 꿈을 품고 준비해 왔다. 동시에 전국을 다니며 강연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 끊임없는 도전 정신의 중요성을 전파했다.
고인은 아들 허재석씨와 딸 허정윤씨 등 1남 1녀를 두고 있다. 빈소는 서울 한양대학교병원 장례식장 7호실에 차려졌으며, 조문은 오후 2시부터 가능하다. 발인은 오는 8월1일 오전 10시40분이며, 고향인 충북 제천 선산에 안장될 예정이다.
평소 허 대장의 족적을 존경해온 한 산악인은 “한국 산악계가 불굴의 도전 정신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거목을 잃었다”며 “허영호 대장이 남긴 발자취는 후배 산악인들에게 영원한 이정표로 남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그의 삶은 ‘도전의 아이콘’으로 불릴 만큼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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