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교수의 대중범죄학> 심신미약이 전가의 보도인가?

  • 이윤호 교수
2025.07.21 16:02:31 호수 1541호

경찰 조사실이나 법원 재판정에서도, 심지어 텔레비전의 범죄 관련 방송에서도 시청자와 시민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장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범죄자, 용의자, 피의자들의 반성 없는 태도와 뻔뻔함은 말할 것도 없고, 이보다 더 화나게 하는 장면은 아마도 술에 취해서, 아니면 약물에 취해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변명하는 것이다.



이는 다름이 아닌 심신미약으로 인한 형량의 감경을 기대하는 노림수가 대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경이나 면죄가 비단 우리만의 현실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과거 레이건 대통령의 저격을 시도한 존 힌클리(John Hinkley)에게 단 하루의 형벌도 주어지지 않았던 사례가 있었다.

일국의 현직 대통령을 저격하려다 경호원과 참모를 살상한 현행범에게 어떠한 형사 처벌도 가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바로 정신이상 무죄 변론 (Insanity Defense)이 있었기 때문이다. 범인이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형벌의 목적은 응보에서 억제와 교화·개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응보적 형벌은 특히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고, 그의 행위도 자신의 자유의사에 따른 선택의 결과이며, 그렇게 스스로 선택한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도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에서 출발한다.

이는 소년 범죄자에게 성인범에 대한 형사사법제도와 별도의 소년사법제도를 운용하는 이유와도 맥을 같이하는데, 청소년은 아직 성숙하지 않아서 성인처럼 이성적, 합리적 선택을 하는 능력이 부족하거나 없기 때문에 그들의 행위에 대해 형사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마찬가지 논리로 정신이상이나 정신질환자의 경우 성인이라도 우리 형벌제도가 전제하는 자유의사에 따른 합리적, 이성적 판단과 선택에 장애가 생기기 때문에 적어도 형이 감경돼야 한다는 취지인 것이다.

그런데, 힌클리 사건을 계기로 대중들은 범죄자가 정신질환을 핑계로 범죄에서 도망간다고 비판했고, 이를 계기로 정신이상변호개혁법(Insanity defense Reform Act)이라는 법률이 제정됐다. 

힌클리처럼 정신질환이 범죄의 이유일 때는 무죄(Not guilty by reason of insanity)라는 입장에서 ‘유죄지만 정신질환(Guilty but mentally ill)’으로 보완해 정신질환은 인정하되, 죄는 있는 것으로 판결해 형사시설에서 정신질환 치료를 행하도록 한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정신질환을 인정한다는 것이 곧 죄가 없거나 형벌을 감경할 이유는 아님을 분명히 한 것으로, 누구나 죄를 지었으면 유죄라는 법조계의 상식과 ‘정신질환이 있으므로 치료가 필요하다’는 정신의학계의 의견을 모두 반영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신질환도 아닌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형이 감경되는 웃지 못할 현상을 목격해 왔다.

물론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의 판단과 결정과 그에 따른 행위가 과연 합리적, 이성적이었는가는 따져볼 여지가 있지만, 여기서 문제는 술에 취한 것 또한 본인의 자유의사와 의지에 의한 선택이었고 그로 인한 모든 책임 또한 그래서 본인에게 있어야 한다.

정신질환이 대체로 자신이 의지대로 선택한 것이 아니기에 감경이나 무죄 변론이나 유죄이지만 치료하라는 취지의 사법적 판단도 가능한 것인 반면에 음주는 본인의 선택인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미국 통계를 보면 범죄자의 상당수가 범행 전 음주나 약물의 영향하에 있었다고 하며, 그와 같은 범죄를 줄이거나 해결하기 위한다면 음주와 약물이 개입된 범죄에 대해서 감경하지 않고 오히려 가중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이런 와중에 우리는 지나치게 극단적일 정도로 강력 범죄자에 대한 사이코패스 판단에 매몰되고 있어 더욱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심신미약이 미국처럼 과거 필요적 감경 사유였던 것이 지금은 임의적 감경 사유로 바뀌었지만, 바라건대 음주로 인한 범죄에서 음주가 감경이 아니라 가중의 사유로 고려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이런 주장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은 음주 운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강경한 태도가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특히, 현재 세계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피해자 중심의 사법제도를 지향한다면, 특히 주취 감경 등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경은 사법 정의의 실현도 어려워지고, 피해자에 대한 보상도 더 어려워진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