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화창한 주말 저녁, 아파트 베란다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 냄새는 누군가에게는 소소한 행복과 낭만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웃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역의 민폐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아파트 베란다에서의 삼겹살 파티는 공동주택 생활에서 끊이지 않는 논쟁 중 하나로 ‘개인의 행복 추구’ ‘공동체 생활에서의 배려’라는 두 가지 가치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게 현실이다.
최근 층간소음, 반려동물 문제와 더불어 공동주택 거주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슈 중 하나인 베란다 삼겹살 파티가 재점화되고 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아파트 베란다 삼겹살 파티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물었는데,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글이 화제가 되고 있는 것.
누리꾼 A씨는 커뮤니티에 “SNS에 아파트 베란다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게 괜찮은지 투표를 올려봤다”며 “80%가 괜찮다고 답변해 경악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베란다는 위층이나 아래층 빨래에 연기나 냄새가 들러붙게 만들 수 있으니 상식을 지키자”고 주장했다.
A씨의 이 같은 주장을 미뤄볼 때 반대보다는 반대 의견이 많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절반 이상을 훌쩍 뛰어넘는 커뮤니티 회원들의 찬성 입장에 적잖이 당황한 것으로 보인다.
찬성론자들은 “내 집 안에서 삽겸살도 못 먹나?” “그런 게 싫다면 공동주택에 살지 말고 단독주택에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 “담배 냄새도 아니고, 집 안에서 편하게 좀 먹겠다는데 그 정도는 이해해줍시다” “청국장 끓이면 경찰 부를 듯” 등 대체적으로 호의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한 누리꾼은 “실제로 청국장 끓였다가 실제로 경찰 불러서 기사까지 난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또 아파트 베란다는 개인이 소유하거나 전적으로 사용하는 전용 공간의 일부이므로, 타인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유롭게 활용할 권리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특히 맞벌이 부부나 바쁜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는 멀리 교외로 나가지 않고도 집 안에서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간편하고 경제적인 여가 활동이 될 수도 있다.
지나친 규제는 개인의 삶을 위축시킬 수도 있다는 반론도 있다. 공동주택 생활의 특성상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며, 사소한 생활 소음이나 냄새까지 모두 규제하려 든다면 주거 공간에서의 자유가 너무 심하게 제약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모든 행위를 법이나 규정으로 획일적으로 통제하기보다는, 이웃 간의 기본적인 이해와 배려를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반면 A씨를 포함한 반대론자들은 “위층에 삼겹살 굽는 냄새는 물론, 끈적끈적한 기름기까지 묻게 될 텐데 그 피해를 어떻게 감당하느냐?” “고기 굽는 냄새, 생각만 해도 싫다” “본인 편하다고 위층까지 피해 입히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등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있다.
실제로 아래층에서 올라온 삼겹살 냄새가 위층의 옷에 냄새가 배이게 하거나, 집안 전체가 고기 냄새로 진동하면서 두통을 호소하거나 불쾌감을 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는 단순히 ‘냄새’ 차원을 넘어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넘어 고통을 야기할 수도 있다.
공동주택에서의 기본 매너 부족이라는 지적도 있다. 공동주택은 여러 세대가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므로,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동시에 이웃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와 매너는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자신의 즐거움이 타인에게 불편을 주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공동체 생활의 기본 원칙이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베란다 내 삼겹살을 구워 먹는 행위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규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대다수의 아파트 관리규약에는 ‘입주민의 쾌적한 주거 환경 조성을 위해 소음, 진동, 냄새 등으로 입주민에게 피해를 주거나 불쾌감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거나 자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또 발코니 등에서의 화기 사용으로 인해 화재 위험이 있는 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된 경우가 많다.
또 삼겹살 냄새로 인한 분쟁에 대해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통해 중재를 시도하거나, 심할 경우 공동주택관리 분쟁조정위원회나 법적 절차를 밟는 경우도 있으나 냄새 특성상 객관적인 증거 확보가 어려워 해결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최근 신축 아파트 중에선 바비큐장 등 공동 취사 공간을 마련해 입주민들이 냄새나 연기 걱정 없이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단지들도 늘고 있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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