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품산업협회 정관 개정 내막

2025.06.02 09:13:14 호수 1534호

돌려먹기 임기 연장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무보수의 명예직을 두고 경선이 벌어졌다. 한국식품산업협회장 이야기다. 박진선 샘표 회장과 황종현 SPC삼립 대표가 맞붙었다. 협회 설립 이후 첫 협회장 경선이 치러지고 있는 가운데 협회 이사회에서는 갑작스레 관련 정관 개정안을 준비 중이라 많은 의문점이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두 달 넘게 공석이던 한국식품산업협회의 협회장이 다음 달 선출될 예정인 가운데, 협회장 선출을 앞두고 정관 개정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정안에 포함된 이사회의 추천을 거치도록 하는 방식을 놓고 일각서 협회 내 특정 이사진의 의사 개입 또는 이사회 입김 강화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입김 강화

앞서 한국식품산업협회는 지난 2월28일 정기총회서 이효율 협회장(풀무원 이사회 의장)을 이을 신임 협회장을 선출하려고 했다. 하지만 협회 역사 최초로 박진선 샘표 회장과 황종현 SPC삼립 대표가 각각 지난해 10월, 지난해 11월 출사표를 던진 후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며 협회장 선출이 미뤄졌다.

1969년 협회 설립 이래 복수 후보가 경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다.

이례적인 경합 상황 속 한국식품산업협회는 지난 5월 15일 이사회를 열고 협회장 선출 정관을 변경하는 정관 개정안을 내놨다. 당시 이사회 회의록에 따르면, 이사회서 협회장추천을 받은 자 중에 회장을 선출한다는 1안과 현행 정관의 범위 내에서 회장 선임 규정을 제정해 회장 선출 절차를 명문화하는 2안이 나왔다.


결과는 이사회의 추천이 필요한 1안이 선택됐다.

그간 한국식품산업협회는 회원 3분의 2 이상 출석 및 출석 회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의결한 사람이 회장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임시총회 이후에는 직접투표가 아닌 이사회의 추천을 거쳐 협회장을 선출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식품산업협회 관계자는 “그동안 합의 추대 형식으로 회장 선출이 진행됐지만, 이번에는 출마 의사를 밝힌 곳이 두 군데 있어서 선거를 진행하게 됐고 절차를 마련하다 보니 일부 이사 사이서 추천권 요구가 있었다”며 정관 변경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기존에 선언적 규정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기준이나 절차는 없어서 정관 변경을 하고, 변경 후 식약처 승인을 받은 이후에 비상근 회장 선임에 관련된 규정을 제정해야 한다. 스텝 바이 스텝을 밟고 있는 상황”이라며 “협회는 중립적인 입장서 절차 마련에 임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설립 이후 첫 경선
갑작스런 정관 개정

하지만 협회 내부에서는 해당 설명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개정안이 적용될 경우 이사회의 입김이 세질 수밖에 없고 특정 이사진의 의사 개입이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한국식품산업협회 이사회는 대부분 대기업 대표들로 구성돼있는 만큼, 정관 개정이 이뤄지면 결국 대기업 대표들이 돌아가며 협회장을 맡는 시스템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식품산업협회 지난 5월 이사회 회의 이후 다수의 이사들이 “황 대표도 협회장 한번 해야지” “대기업 대표인데 협회장하는 게 맞다” 등의 말을 주고 받았다고 한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투표로 선출하는 지금까지도 이사회 구성원 중에 협회장이 계속 나왔다”며 “이런 상황에 이사회의 추천으로 협회장이 결정되면 이사회의 권한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사회의 추천으로 협회장 자리에 오른 사람이 자신을 추천한 이사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다른 기업 대표를 이사회로 구성할 수도 없게 돼 무소불위 권력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대부분의 이사진들이 오너 일가가 아닌 전문 경영인이라 회사 내와 협회 내 임기 연장을 위해서 서로 단합하는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로 이효율 현 회장이 2월 임기(3년)가 끝났음에도 7년째 직을 수행하고 있고, 식약처 국장 출신인 김명철 부회장도 작년 11월 임기(2년)가 끝났음에도 5년째 직을 유지하고 있다.

이사회 입김 세지는 구조
‘끼리끼리’ 무소불위 우려

이 회장은 지난해까지 풀무원 총괄 대표이사를 맡았고 현재는 풀무원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심지어 지난 3월에 열린 정기주주총회서 이 회장이 기타비상무이사로 신규 선임되기도 했다. 전문 경영인으로서 임기가 끝났는데도 기업의 이사로 남은 것이다.

식품업계에서는 정부와 소통하는 자리인 한국식품산업협회 협회장인 점이 풀무원의 해당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한국식품산업협회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최근 K푸드 열풍에 힘입어 국내 식품기업들의 활동반경이 넓어지면서 민간외교관 역할의 협회장 자리에 있으면 해당 기업의 해외 진출 등도 수월하게 진행된다. 이 회장의 풀무원도 그의 임기 동안 해외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황 대표의 임기가 내년 초까지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SPC서 사고가 발생하면서 그의 입지가 더 흔들리는 상황에 협회장을 역임하고 SPC의 추가 해외 진출을 이뤄내면 그의 임기는 어떤 식으로든 연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현재 협회 이사회의 대부분이 전문 경영인인 상황서 협회장 자리로 인해 임기가 늘어날 수 있다면 이사회 추천으로 서로 돌아가면서 협회장을 역임해 자신들의 자리를 지킬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협회 관계자는 “정관 개정을 논의한 이사회 자리에 후보로 거론된 박 대표와 황 대표 두 분 다 계셨다”며 “본인을 직접 추천할 수도 있어 한 후보를 밀어주기 위함은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매출순으로?


협회 이사진 중 한 사람은 협회가 국내 식품업계를 대표하는 조직인 만큼 협회장 역시 국내 식품업계를 대표할 수 있는 규모의 회사가 맡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2024년 말 연결기준 샘표식품의 매출액은 4049억원이다. SPC삼립은 같은 기간 3조4279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SPC삼립이 월등하게 커 황 대표를 협회장으로 세우려는 것이라는 의견이다. 하지만 식품산업협회 192개 회사 중 85% 이상이 중소 및 중견기업으로 구성되는 만큼 대기업이 꼭 회원사를 대표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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