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으로 조기 대선이 현실화되면서, 국민의힘 내부의 잠룡들이 본격적으로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7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부는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을 6월3일로 잠정 확정하고, 오는 8일 국무회의서 최종 의결할 예정이다.
앞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윤 전 대통령 파면으로 조기 대선 사유가 확정된 지난 4일 21대 대선 예비 후보자 등록을 시작했다. 지난 6일 보수 진영에선 홍준표 대구시장이 “마지막 꿈을 향해 상경한다”며 사실상 출마 의사를 밝힌 데 이어, 안철수 의원도 같은 날 ‘착한 리더’를 내세우며 출마를 시사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도 이번 주 중 장관직 사퇴 후 공식 출마 선언을 예고했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역시 원·내외 친한(친 한동훈)계를 주축으로 선거캠프를 꾸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이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 불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맞설 ‘대항마’로 발돋움하기 위한 당내 경선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큰 난관은 헌재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의 후폭풍이다. 특히 헌재가 비상계엄에 대해 ‘위헌’이라는 명백한 판단을 내린 상황서, 각 후보들이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가 경선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대선을 위한 경선룰이 기존의 ‘당원투표 50%, 일반 국민 여론조사 50%’로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경선 후보들은 당심과 민심 두 쪽을 모두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윤 전 대통령의 파면 결정 이전까지는 보수 내부의 여론을 주도해 온 강성 지지층을 고려할 경우, 당 안팎으로는 탄핵 반대 입장을 취하는 것이 경선에 유리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12·3 비상계엄 이전에는 정치적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던 김 장관이 최근 각종 여론조사서 국민의힘 대선후보 중 선두를 달리고 있는 데에는 그가 명확한 탄핵 반대 입장을 밝혔다는 배경이 크게 작용했었다.
이에 그의 지지층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파면 결정 자체를 부정하거나 헌재에 대한 강한 불만을 가진 강성 보수층이 주를 이룬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그러나 헌재가 비상계엄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이제는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이 ‘위헌적 행위’에 따른 결과라는 법적 판단이 내려진 셈이다. 이는 탄핵 반대 입장을 취하는 후보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단순히 ‘강성 지지층 결집’이라는 단기적 효과를 넘어, 중도층과 본선 경쟁력을 중요시하는 전략적 보수 지지층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헌재 결정과 윤 전 대통령의 책임론에 대해 명확한 태도를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보수 잠룡들은 강성 지지층의 눈치를 보며 탄핵 반대 입장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중도층과 본선 경쟁력을 위해 윤 전 대통령과 거리를 두거나 탄핵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낼 것인지 심각한 딜레마에 놓여있는 셈이다.
기존에 탄핵에 찬성했던 것으로 알려진 오세훈 시장, 한동훈 전 대표, 안 의원, 유승민 전 의원은 상대적으로 중도층 공략에 유리한 위치에 있지만, 강성 지지층의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 반면, 탄핵 반대·기각을 주장해 온 김 장관, 홍 시장,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 등은 강성 지지층 결집에는 유리하나, 중도층 확장과 본선 경쟁력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탄핵 입장 외에도 경선 참여 자체에 대한 비판 여론이 만만치 않은 점도 국민의힘에겐 악재다.
헌재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후, 일각에서는 내란에 동조한 국민의힘이 조기 대선서 후보를 낼 자격이 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해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만큼 ‘귀책사유’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국민의힘 당규에는 ‘선출직 공직자의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인해 재보궐선거가 발생한 경우, 당해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을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비록 의무 규정은 아니지만,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인정해 만들어진 조항이다.
윤 전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지는 이번 조기 대선도 헌법 및 공직선거법에 따라 대통령의 궐위로 60일 이내에 치러지는 보궐선거로 규정돼있다. 따라서 초유의 위헌·위법적 내란 행위로 자당 소속 대통령이 임기 3년 만에 파면된 만큼, 집권여당의 귀책사유는 명백하게 존재한다는 것이 비판론자들의 주장이다.
과거 한 전 대표도 비대위원장 당시 “국민의힘 귀책으로 재보궐선거가 이뤄지면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으며,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일 치러진 서울 구로구청장 보궐선거에 앞서 전 구청장의 무책임한 사퇴를 이유로 후보를 공천하지 않았다.
국민의힘이 차기 대권을 노리는 것 자체가 논리적 모순이라는 지적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심지어 지난 4일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이 결정된 뒤 열린 국민의힘 비공개 의원총회서도 “우리는 폐족이 됐다. 이번 조기 대선에는 당 소속 후보를 출마시키지 말자”는 의견까지 나오는 등 ‘자성론’도 확산되면서 당 내부의 혼란과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이처럼 국민의힘 잠룡들은 짧은 경선 기간 동안 탄핵에 대한 입장과 헌재 결정의 무게, 당의 후보 자격에 대한 비판 여론이라는 복잡한 문제들을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이 대표에 맞설 유력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경선 레이스에 돌입했지만, 그 과정은 사실상 가시밭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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