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세월호 다시 꺼낸’ 윤솔지 감독

2025.04.07 10:38:57 호수 1526호

“참사 진실? 결론이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게 4월은 ‘고통’ 그 자체다. 이들은 2014년 이후 11번의 4월을 거치는 동안 부서지고 상처 입었다. 누군가는 ‘또?’라며 눈을 흘겼다. 또 다른 누군가는 ‘다 끝난 일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눈을 돌리고 외면했다. 세월호 침몰 11년, 모든 게 무위로 돌아간 듯한 이 시점에 한 영화가 등장했다.



2014년 4월16일 승객 476명을 태운 배가 가라앉았다. 전 국민이 배가 기울었다가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장면을 목격했다. 299명이 사망했고 5명은 끝내 뭍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 가운데 250명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었다. 당시의 참상은 1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국민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왜 꺼냈나

세월호 참사가 한국 정치사에 끼친 영향은 상당하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파면된 탄핵 심판 사건에 단초를 제공했고 이후 정권교체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당시 세월호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겪은 이들은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물었다. 국민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사건이 일어나면 구조에 나서야 할 국가가 손 놓고 있었다는 비판이 빗발쳤다.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등의 공식 기구가 진실 규명을 위해 구성됐다. 이들의 방향성은 세월호 침몰 원인으로 향했다. 배 자체의 문제를 원인으로 보는 ‘내인설’과 배 외부에 힘이 가해져 가라앉았다는 ‘외력설’ 등이 제기됐다.

문제는 결론이다. 모든 기구가 명확한 침몰 원인을 내놓지 못했다. ‘확증 불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확정할 수 없다’ 등의 표현이 난무했다. 다시 말해 ‘모른다’였다. 3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는데 그 원인조차 알 수 없다는 사실에 유가족은 절망했다. 진실을 알려주리라 믿었던 이들의 배신은 치 떨리는 분노로 치환됐다.


지난 2일 개봉한 윤솔지 감독의 <침몰, 10년 제로썸>은 이 지점을 파고든다. 윤 감독은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가 ▲왜 구조하지 않았는가 ▲책임자는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 등에 집중한 89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누군가에겐 ‘끝난 일’로 치부될 수 있지만 되짚어보면 무엇 하나 명료한 답을 줄 수 없는 질문들이다.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서 기자 시사회가 진행됐다. 광양시립국악단 류형선 선생의 소리와 함께 뒤집힌 세월호가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일부 등장인물이 목소리를 높이고 감정을 토로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영화는 전체적으로 건조하고 차갑다.

그렇기에 영화 중반부 아이의 시신을 확인하는 어머니의 절규는 화면이 까맣게 변한 뒤에도 귓가에 남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 뒤로 쏟아지는 유가족의 울음소리도 울림이 크다.

윤 감독은 <침몰 10년, 제로썸>을 통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실 규명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침몰 원인을 특정할 수 없고 국가가 승객을 구하지 않은 정황이 있으니 검증을 통해 진실을 찾자고 주장했다. 그전까진 윤 감독에게 세월호는 끝나지 않는 사건인 셈이다.

지난 1일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서 윤 감독을 만났다. 정식 극장 개봉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윤 감독은 인터뷰서 여러 차례에 걸쳐 ‘멍청하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수식했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 자신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말하는 과정서 나온 표현이었다. 한때 삶의 즐거움으로 여겼던 많은 부분이 ‘죽어버린 듯’ 사라졌다고도 했다.

“(2014년) 4월22일 장례식장에 갔어요. 그때는 노란 리본이 없었고 새카만 현수막만 가득했거든요. 주변에 온통 교복, 체육복, 국어 교과서 같은 게 있더라고요. 그때 안 될 것 같다고 느꼈어요. 저는 다 해봤단 말이죠. 사고 싶은 것도 사봤고 갖고 싶은 것도 가져봤고 첫사랑도 해봤고 그런데 그 애들은 아무것도 못 해봤잖아요.”

‘공동체 상영’ 거쳐 정식 개봉
‘아무것도 안 한’ 문재인 비판

윤 감독은 <침몰 10년, 제로썸>을 스스로 가진 의문을 정리하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특조위, 선조위, 사참위 등 국가 조사 기구가 내놓은 결론을 한데 모아 살펴보고 침몰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서 나온 의문을 제기한다는 취지다. 동시에 세월호 참사를 다룬 박근혜·문재인·윤석열정부에 대한 비판도 담았다.

눈여겨볼 대목은 영화에서 표현된 분노가 상당 부분 문재인정부로 향한다는 점이다. ‘문재인이라면 해줄 거야’ ‘꼭 진실을 규명할 거야’라는 유가족의 기대를 완전히 망가뜨렸다는 성토가 영화 곳곳에 드러났다. 윤 감독은 ‘기만당했다’는 표현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분노를 나타냈다.

“사랑했기 때문에 배신감이 더 컸다고 말하고 싶어요. 원래 나쁜 사람은 애초에 배척해 버리잖아요. 문재인 대통령은 해줄 거라고 모든 유가족이 믿었죠. 그래서 정치적으로도 힘을 실어줬던 거고요. 그런데 5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문재인 대통령이 없었다면 세월호 참사 6주기부터 우리는 또 다른 방향으로 진실 규명을 외쳤을 겁니다.”


‘제로썸’이라는 제목도 그런 의미를 담았다. 시민 650만명의 염원을 담아 만든 세월호 특별법이 유명무실해지고 문재인정부 5년 동안 진실 규명은 흐지부지됐다. 그사이 국민의 관심은 사그라들었다. 또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생기면서 목소리를 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결국 지난 10년의 노력이 완전히 깨끗하게 ‘0’으로 돌아갔다.

무엇보다 뼈아픈 대목은 ‘문재인정부서 그렇게까지 해줬는데 세월호 유가족은 인정하지 못하는 거야?’라는 반응이다.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는데도 문정부서 뭔가를 했다는 것만으로 세월호 참사를 끝난 사건으로 치부하는 시선이 생겼다는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은 이 반응과 시선을 되돌려야 하는 과제까지 떠안게 된 셈이다.

그래도 윤 감독은 “이상주의자인가 봐요”라며 희망을 드러냈다.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 때 수백만의 시민이 힘을 보탠 것처럼 <침몰 10년, 제로썸>이 정식 극장 개봉을 하기까지 과정서 본 시민의 염원이 결국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끄집어 올릴 것이라고 믿는 듯했다.

실제 <침몰 10년, 제로썸>은 지난해 전주 국제영화제서 첫선을 보인 후 배급사를 찾지 못해 애먹었다. 영화를 건져 올린 건 시민 1500여명으로 구성된 배급위원회였다. 이들은 극장을 대관해 ‘공동체 상영’을 시도했고 현재까지 6500명에 이르는 관객이 영화를 봤다. 모두가 자발적으로 움직인 결과였다.

고통 끝내야

윤 감독은 “오로지 시민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곧 있으면 세월호 참사 11주기인데 그때까지 <침몰 10년 제로썸>이 극장서 상영될 수 있도록, 진실 규명을 외칠 수 있도록 부탁드린다. 다시 한번 기억하자는 의지의 뜻을 보태달라”고 말했다. 윤 감독은 올해가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의 ‘원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다.

세월호 참사에서 진실은 ‘4월의 고통’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결국 유가족은 진실 앞에서만 멈춰 설 수 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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