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한국만…’ 살인 형량 낮은 이유

2023.07.10 14:20:29 호수 1435호

“고의 아냐” 깎아주고 “심신 미약” 낮춰주고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살인범죄 재판서 가해자들은 모두 “고의가 아니었다”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대부분 재판 과정서 형량이 줄어든다. 이 문제는 한국의 살인 범죄 유형이 세분화돼있지 않기 때문이란 의견이 있다.



살인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주요 강력범죄 신고접수 건수가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10% 이상 늘어났다. 살인·강도·성폭력 등이 모두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였다. 이는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시민들의 외출이 늘어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물가 상승·자산 가격 하락 등 경기 불안도 범죄 증가에 한몫했다. 

점점 느는
강력범죄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31일 기준 112 신고에 접수된 5대 강력범죄가 작년 동기 대비 각각 10% 이상 증가했다. 살인 범죄는 585건으로 전체 증가율이 23.4%에 달했다. 5대 강력범죄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지난해에는 제주 유명 식당 대표 살인 사건, 이기영 살인 사건 등 흉악범죄가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범죄는 점점 잔혹해졌고, 발생 건수도 많아진 셈이다.

이처럼 살인 범죄가 증가하는 한편, 살인 범죄 양형기준은 모호해서 피해자 유가족들이 눈물 흘리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살인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은 매우 중요하다. 살인 범죄는 다른 범죄에 비해 발생 건수가 상대적으로 낮지만,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가장 극악한 범죄고, 피해를 돌이킬 수 없는 만큼 기준도 명확해야 한다. 살인은 피해를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 가장 높은 형벌이 부과돼야 하는 범죄다.


이런 이유로 살인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은 다른 모든 범죄의 양형기준을 설정하는 하나의 기준점이 된다. 양형위원회서도 가장 먼저 의결한 1기 대상 설정 범죄 7개 범죄군 중 하나가 살인 범죄 양형기준이다. 7개 범죄군은 ▲살인 ▲뇌물 ▲성범죄 ▲강도 ▲횡령‧배임 ▲위증 ▲무고 범죄다. 

살인 범죄 양형기준은 2009년 7월1일 시행된 이후 지난 1일까지 네 차례 수정돼 현재 5개의 범죄 유형으로 나뉜다.

유형별로는 ▲참작 동기 살인(기본: 4~6년, 감경: 3~5년, 가중: 5~8년) ▲보통 동기 살인(기본: 10년~16년, 감경: 7년~12년, 가중:1 5년 이상, 무기 이상) ▲비난 동기 살인(기본: 15년~20년, 감경: 10년~16년, 가중: 18년 이상, 무기 이상) ▲중대범죄 결합 살인(기본: 20년 이상, 무기 감경: 17년~22년, 가중: 25년 이상, 무기 이상) ▲극단적 인명경시 살인(기본: 23년 이상, 무기 감경: 20년~25년, 가중: 무기 이상)이다.

이 같은 기준은 시대 흐름에 따라 변하는데, 살인 범죄 유형을 나누는 것 자체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부분의 살인 범죄의 형량이 너무 낮고, 1심서 높은 형량이 나오더라도 2심서 형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타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살인 형량
“범행 동기 이외 범죄유형도 구분해야”

실제로 중년 남녀를 연달아 살해한 혐의로 1심서 사형을 선고받았던 권재찬이 항소심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그는 2021년 12월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건물서 50대 여성 A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후 A씨의 신용카드서 현금 수백만원을 인출하고 1100만원 상당의 귀금속도 빼앗았다.

권재찬은 A씨를 살해한 다음 날 인천시 중구 을왕리 야산서 공범인 40대 여성 B씨를 살해한 혐의도 받고 있다. 당시 권재찬은 B씨에게 A씨 시신이 부패할 수 있으니 야산에 땅을 파러 가자며 야산으로 유인한 뒤 살해했다. 경찰은 권재찬이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공범 B씨를 살해한 것으로 봤다.

서울고법 형사7부(이규형·이지영·김슬기 부장판사)는 지난달 23일 오전 권재찬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1심서 인정한 기획 살인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강도 범행은 기획적 강도에 해당하나 살인은 기획 살인으로 보기 어렵다”며 “누구라도 사형이 정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을 만큼 특별한 사정이 존재하는지 의문”이라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다른 중대 살인 사건과의 비교도 필요해 보인다. 20년간 법원서 사형이 선고된 사건은 18건인데, 피해자가 불특정 다수거나 중대범죄 결합사건으로 미리 계획한 살인죄에 해당한다. 원심의 사형 선고에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피해자 유족들은 “저런 사람에게 인권이 있느냐”고 소리치며 법정 밖으로 나갔다. 해당 사건은 연쇄살인을 했지만 ‘기획 살인’이 아니기 때문에 사형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것이다. 사형 판결에 대한 부담감도 같이 작용했다.

유형 분류
모호 지적

또 다른 사건도 있다. 자신의 딸에게 신내림을 강요한다는 이유로 무속인 친누나를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1심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60대 남성이 2심서 감형받았다.

지난달 16일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이규홍)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에게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12년을 선고, 5년간의 보호관찰을 명령했다. 또 원심서 내려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명령 청구도 기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계획적으로 살해할 목적이나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가 신을 모시는 문제로 피고인의 가족을 괴롭혔고 범행 당일에도 딸에게 무당을 하라고 하자 우발‧충동적으로 살인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피해자의 상처와 사인 등을 종합할 때 피해자는 저항 없이 피고인에게 일방적인 폭행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굉장히 횟수가 많고 강한 힘으로 폭행을 가한 사실이 인정된다. 피해 사망 예견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가 동생인 피고인으로부터 부당하게 죽음에 이르는 과정서 느꼈을 정신적 고통은 가늠하기 어렵다. 피고인은 이전에도 종교 문제로 처를 사망에 이르게 한 처벌 전력이 있다. 친족 생명을 두 번이나 빼앗은 것은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이 고의가 있어 보이지 않고 우발적으로 보이는 점, 유족인 딸이 처벌을 바라지 않는 처벌탄원서를 제출한 점, 피해자 사망을 발견한 직후 119에 신고한 점, 자백하고 반성하는 점 등을 고려해 피고인의 양형부당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며 “폭행치사 전력을 고려해도 불특정 시민이 아닌 가족 간 신을 모시는 특이사항서 일어난 범죄다. 재발 위험성 평가서도 일반인 수준의 점수가 나왔다. 향후 일반인을 살해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잘못을 깊이 인정하고 있다”고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명령 청구를 기각했다.

반성하고 
뉘우치면?


부모가 자녀를 출산한 후 자녀를 버리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검찰이 남자친구와 강릉 여행을 갔다가 몰래 출산후 사흘 뒤 병원서 아이를 데려와 영하의 날씨 속에 길에 내다버린 20대 친모에게 실형을 구형했다.

인천지검은 지난달 20일 오전 인천지법 제14형사부(재판장 류경진)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서 이같이 구형했다.

검찰은 “피해 아동을 출산한 지 3일이 지난 시점서 주거지에 머물면서 휴식을 취하고 남자친구와 양육 문제를 상의했다. 이후 다시 병원에 가서 범행을 저질렀는데,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이어진 상황서 범행한 것이라고 전혀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친모로서 보호의 의무를 저버리고 생후 3일 된 피해자를 살해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범행으로 사인이 중대하다. 피해 아동을 양육할 의지도 보이지 않았고 범행 전후의 태도도 불량한 점을 고려해달라”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친모 측 법률 대리인은 “피해자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서 범행한 것으로 영아살해죄가 인정돼야 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친모는 최후진술을 통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뉘우치고 있다”고 말했다. 친모 측은 앞선 공판서 검찰이 기소한 죄명인 살인미수가 아닌 형량이 낮은 영아살해죄로 처벌해달라고 주장했다. 갑작스러운 출산으로 불안정한 정신 상태가 유지된 상태서 저지른 범행이라는 취지였다.

가해자 “계획한 범죄 아니다”
유가족 “살인자가 무슨 인권”

영아살해죄는 분만 중 또는 직후의 영아를 살해하면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돼있다. 영아살해죄보다 실인죄의 형량이 높아서, 영아살해죄를 주장하는 것이다. 이같이 살인범죄는 1심서 나오는 형량보다 감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양형위원회서 발간한 <2021 양형위원회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살인범죄는 전체 473건 일어났다. 이 중 양형기준이 적용된 사건은 전체 428건인데, 살인 189건 중 제2유형 보통 동기 살인이 157건으로 가장 많았다. 그 외 제1유형 참작 동기 살인은 17건, 제3유형 비난 동기 살인은 8건, 제4유형 중대범죄 결합 살인은 7건이었다.

살인미수 사건은 전체 239건으로 살인과 마찬가지로 제2유형 보통 동기 살인이 212건으로 가장 많았다. 제1유형 참작 동기 살인은 14건, 제3유형 비난 동기 살인은 9건, 제4유형 중대범죄 결합 살인은 4건이었다. 

즉, 살인미수를 포함한 살인범죄 양형기준 적용 대상 범죄의 대부분이 제2유형인 보통 동기 살인으로 그 비중이 가장 높았다. 이 같은 결과는 양형기준의 범죄유형 세분화에 문제가 있다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2010년 10월, 우발적 살인 대신 ‘살인에 대한 제한적 방어’를 인정하는 ‘자제력 상실에 의한 고의적 살인’ 조항이 ‘검시관 및 사법법’에 신설됐다. 영국은 고의적 살인과 우발적 살인을 구분하고, 구체적인 양형기준을 만들었다.

그러나 한국은 이런 구분이 없기 때문에, 피해자의 귀책사유가 인정되면 일반적인 살인보다 약하게 양형이 적용될 수 있다. 

우발적이냐
계획적이냐

<살인범죄 양형기준 고찰> 논문을 발표한 이재방 홍익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는 논문을 통해 “영국 살인 범죄 평균 형량은 20~25년으로 한국은 이보다 훨씬 낮다. 이는 한국 살인 범죄 대부분이 제2유형인 보통 동기에 속하게 때문”이라며 “양형기준 적용 대상의 80%가 제2유형에 해당된다면, ‘동기’ 이외의 새로운 기준에 의해 유형을 분류하든지, 아니면 현재의 유형 내에서 추가로 하위 세부 유형을 분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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