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맘대로’ 심신미약의 양날

2023.04.17 16:42:32 호수 1423호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건가?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강력범죄 사건이 발생한 후 피의자가 재판 전에 1순위로 알아보는 것이 있다. 바로 본인이 ‘심신미약’ 판정을 받을 수 있는지의 여부다. 최근 주취감형의 문제점이 부각되면서 피의자가 주취감형을 주장할 경우 가중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피의자가 과거 정신질환 병력이 있으면 심신미약 판정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 과정에서 판사의 재량이 작동해서다.



심신미약은 심신장애의 한 종류다. 여기서 말하는 심신장애는 정신의학적 용어가 아닌 법률상 용어다. 이런 이유로 심신미약은 정신과 전문의 소견이나 국립의료원 등 전문가 견해가 제시되지 않아도 된다. 법관은 자유심증주의(증거의 증명력을 법관의 자유판단에 맡기는 주의)로 심신미약을 판단할 수 있다.

아닌데…

형법 제10조(심신장애)에는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 ‘심신장애로 인해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고 적혀있다. 심신장애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증거가 필요하다.

이때 필요한 것이 정신과 진료기록이다. 심신미약을 주장하려면 ▲조현병 ▲조울증 ▲지적장애 ▲자폐성 장애 등을 받아야 심신미약 여부를 진단받아야 한다. 

과거에는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심신미약이 인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국민의힘 최춘식 의원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강력범죄 4건 중 1건이 음주 상태서 발생했다. 2017~2021년 동안 발생한 5대 강력범죄(살인·강간·강도·폭력·절도) 230만7017건 중 가해자가 술을 마신 경우는 54만9500건에 달했다. 이런 경우 형법 제10조에 근거해 형이 감면되는 상황이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조두순이다. 2008년 8세 여아를 납치·강간해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은 조두순은 재판서 범행 당시 주취 상태를 주장해 감형받았다. 2021년 강릉에서는 일면식 없는 행인을 뒤쫓아가 흉기로 살해하려 한 50대 남성이 항소심서 심신미약이 인정돼 감형됐다.

상황이 이런 만큼 주취감형에 대한 비판 여론은 상당히 높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2018년 만 19세 이성 남녀 5522명 대상(총 502명 응답)으로 ‘주취감형 제도 존폐에 대한 국민 여론’ 발표 결과에 따르면 폐지 응답이 80%로 압도적이었다. 유지하자는 응답은 11.8%에 불과했다.

재판부 재량껏…판단은 ‘자유심증주의’
주취 감형 주장 시 가중처벌 가능성 ↑

지난해 가해자가 술을 마시고 피해자를 살해한 뒤 심신미약을 인정받는 것이 잘못됐다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인하대학교 건물에서 동급생을 성폭행하고 계단서 밀어 숨지게 한 사건이다. 

당시 재판부는 가해자가 피해자에 구호 조치를 하지 않고, 112나 119 신고조차 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지만, 검찰이 무기징역을 구형하며 주장한 ‘살인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가해자가 만취 상태였기 때문에 피해자의 사망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최 의원은 음주 상태서 형법상의 모든 죄를 범했을 때 형을 감면하는 대신 각 죄에 정한 형의 장기 또는 다액에 2배까지 가중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최 의원은 “음주 범죄 당시 피의자의 ‘자발적 음주 행위’는 자의적으로 심신장애를 유발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법적 책임주의 구현을 위해 현행법을 현실에 부합하게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심신미약은 정신질환자에 한해 적용되고 있다. 지난 3일 부산고법 울산 제1형사부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30대 A씨에 대한 항소심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해당 사건은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A씨가 정신병원서 나가기 위해 입원 중인 다른 환자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허망하게 생을 마감한 점, A씨가 유가족들로부터 용서받지 못한 점 등을 고려해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면서도 “정신지체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서 범행한 점, 범죄 사실 자체는 인정하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A씨는 조현병과 정신지체로 2021년 10월부터 울산 울주군의 한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병원의 폐쇄병동에 입원해 생활했다. 그러다 폐쇄된 생활에 갑갑함을 느끼자 범행을 저질러 병원 밖을 나가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말을 잘 듣는 B씨의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 

똑바로 걷고 피해자 정확히 가격
폐지 의견 80% 압도적…유지 12%

그는 징역 25년을 받았지만, 조현병과 정신지체로 심신미약을 주장해 3년이 감형됐다. 결국 이 경우도 주취감형처럼 법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제주도 묻지 마 폭행사건’이 있다. 지난 1월31일, 제주시 대학로서 갑자기 돌을 주워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묻지 마 폭행’을 한 20대 남성 C씨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C씨는 이날 새벽 0시30분 제주시청서 돌을 집어들고 버스킹 공연을 보던 20대 남성 D씨의 얼굴을 가격하고 도주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는 전치 3주의 치료를 요하는 광대뼈 골절상을 입었다. 

범행 약 10시간 만에 붙잡힌 C씨는 “당시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인근 CCTV에 잡힌 C씨는 술집서 술을 마시고 나와 혼자 터벅터벅 걸어가다가 길가에 있던 돌을 집어들고 범행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조사 결과 그는 1년 전, 지인으로부터 상해 피해를 당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한 우울증 상태인데도 별도의 치료 없이 홀로 제주에 내려와 생활하다가 폭행을 저지른 것이다.

재판부는 “묻지 마 범죄는 사회적으로 큰 불안을 일으켜 엄벌이 필요하다. 그러나 피고인이 피해자와 합의한 점,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던 것으로 보이는 점, 원만히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법률 전문가의 입장은 재판부와 달랐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YTN에 출연해 “해당 사건에선 심신미약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핑곗거리

승 선임연구위원은 “이 사건은 CCTV 동영상이 있다. C씨가 걸어와서 돌멩이를 집고 180도로 휘둘러서 피해자를 때리고 도망친다. 본인이 어디서 어떻게 도망가야 하는지 동선을 알고 있다”며 “마치 계산이라도 한 듯이 몸 자체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이어 “보통 음주를 하면 비틀거려야 하는 게 정상인데 심지어 빠르다. 공격하는 것도 휘청거리는 게 아니라 딱 지점을 정해 공격한다”며 “심신미약의 가능성은 1㎜도 없다. 흉기를 들고 사람을 때리면 특수상해로 특수상해형은 1년에서 10년까지다. 이런 무차별 폭행 사건은 10년의 최장형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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