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교수의 대중범죄학> 비동의 간음죄

  • 이윤호 교수
2023.04.07 11:06:18 호수 1421호

‘비동의 간음죄’란 글자 그대로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를 ‘간음죄’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폭행·협박이나 상대의 명확한 거부에도 성관계가 이뤄졌다면 성폭력으로 규정하곤 했지만, 최근 상당수 유럽 국가와 미국 다수 주에서 비동의 간음죄를 도입하는 추세다.



UN서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비동의 간음죄의 핵심은 성폭력을 폭행과 협박 여부와 관계없이 동의 여부를 중심으로 판단하자는 것이다. 현행 형법상 강간죄가 성립되려면 폭행이나 협박이 수반돼야 한다. 이는 곧 폭력이나 협박이 없으면 원치 않거나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일지라도 강간이 성립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을 함축한다. 

비동의 간음죄의 기준에 따르면 강간을 폭행이나 협박의 존재 여부가 아닌 동의 여부로 가름할 수 있게 된다. 범죄학계에서는 최근 ‘강간(rape)’이라는 성적 개념이 내포된 용어 대신에 폭력의 의미를 강조하는 ‘성폭력(sexual assault)’으로 대체하고 있는 추세다.

현행 형법은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가해자의 폭행, 협박이 피해자의 저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 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성폭력에 있어 폭력성의 규정은 지나치게 협의로 해석된다는 게 비동의 간음죄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동의 여부‘가 사실상 강간죄 규정의 핵심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추세지만, 여기서 더 명확해야 할 것이 있다. 어떤 방식과 내용의 의사표시를 동의로 규정할 것인가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거절은 거절이다, 또는 아님은 아님이고, 싫음은 싫음이다(No Means No)”라는 소극적 의사표시와 “동의만이 동의다. ‘네’라고 해야 원하는 것이다(Yes means Yes)”라는 하는 적극적 의사표시 등 두 가지 원칙을 기준으로 삼아왔다. 

소극적 동의는 피해자의 거부 의사를 요하고, 적극적 동의는 가해자의 상대방의 동의 의사를 확인할 의무를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소극적 동의는 “상대방이 싫다고 하면 멈추라”는 것인 반면, 적극적 동의에서는 “상대방이 좋다고, 원할 때만 관계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소극적 동의의 경우에는 상대방의 의사를 물을 의무가 없지만, 적극적 동의는 상대방의 의사를 물어야 할 의무가 주어진다. 비동의 강간죄는 아마도 적극적 동의를 기준으로 정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문제는 동의 여부를 어떻게 확인하느냐다. 적극적 동의를 기준으로 정하고 있는 영국에서는 동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자신의 선택으로 합의할 때”라고 동의를 규정하고 있는데,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능력‘은 선택의 자유와 능력이 제한되는 상황을 제외한 경우로 정하고 있다.

선택의 자유가 제한되는 상황으로는, 피해자 자신이나 제3자에게 폭력이 가해지거나 가해질 것을 두려워하는 경우와 납치되거나 불법으로 구금된 경우가 해당된다.

피해자가 잠들거나 의식이 없는 경우, 피해자가 신체적 장애로 인해 동의 여부에 대해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 동의 없이 약물 등 물질을 투여 및 복용하도록 만들어 피해자를 제압하는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결국 성행위 당시 이런 상황이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피해자의 동의가 없는 것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전통적으로 ‘모델(model)’ 강간 피해자는 강간범에 저항하고 싸울 것으로 기대했지만, 성범죄자와 직면할 때 대부분은 신체적, 심리적으로 얼어붙게 돼 공격에 저항하고 싸울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사회와 형사사법제도와 법률이 가해자로 하여금 강간하지 못하거나 강간하지 않도록 하는 것보다 피해자에게 싸우라고 요구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지나친 부담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저항이라는 행위 자체가 피해자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이다.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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