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잔혹사 3 살인행렬 이어진 ‘경기서남부’ 현장르포

2009.02.10 10:59:34 호수 0호

주민들 두문불출 “7시 이후 외출 겁나요”

‘강호순 잔혹사’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2명 이상의 사람이 모이기만 하면 화두로 꺼내놓을 정도다. 잔혹한 연쇄살인마의 행각에 사람들은 저마다 혀를 차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편에선 또 다른 연쇄살인범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한 자구책들도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끔찍한 살인행렬이 이뤄졌던 경기 서남부지역 주민들은 아직도 ‘공포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강호순의 잔혹사는 이들 주민의 인식과 생활패턴까지 바꿔놓았다. 그 현장을 직접 찾아가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희대의 살인마’ 강호순은 경기 서남부지역에서 부녀자 7명을 주검으로 만들었다. 성실한 직장인과 자상한 아버지 탈을 쓰고 있었지만 실체는 잔혹한 연쇄살인마였다. 연이은 부녀자 살인 소식에 공포 속에 살아야 했던 경기 서남부지역 주민들. 기자가 만난 이들 주민은 연쇄살인범이 잡혔음에도 아직 ‘공포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모습이었다.
  
지난 3일 오후 4시. 기자는 노래방 도우미 김모(당시 37세)씨가 암매장됐던 화성시 마도면으로 방향을 잡았다. 마도면으로 향하는 동안 차창 밖으로 비춰진 전경들은 한마디로 서늘한 기운이 맴돌고 있는 듯 ‘오싹’하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환한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정류장도 텅 빈 모습이고 이동하는 차량 역시 드문드문 이어질 뿐이었다. 눈에 띈 주민의 얼굴에는 밝은 빛이 보이지 않았다. 굳은 얼굴에선 참담함마저 느껴졌다. 아직도 현장에선 스산한 기운만이 감돌고 있었다.
마도면 초입에서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들을 만났다. 이들에게 강호순 사건에 대해 묻자 안색이 어두워지면서 굳어졌다.
“현장검증하는 곳에 가봤어…사람이 어떻게…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거지. 세상에 무서워가지고 잠을 못자겠어.”
지난 2일, L골프장 암매장 현장검증을 하는 곳을 다녀왔다는 박모(52·여)씨는 말을 하면서 치를 떨었다. 그는 “그게 인간이냐. 짐승만도 못한 놈은 당장 사형시켜야 한다”고 극언을 퍼부었다.
석 달 전 무섭고 두려워서 학생인 아들과 딸들을 모두 서울로 보냈다는 김모(45·여)씨는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며 “강호순은 사형도 아깝다. 시내 한복판에 매달아서 많은 사람에 의해 고통을 당하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이 있던 고모(46·여)씨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호신용품을 소지하고 다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자신의 몸은 자신이 먼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해져 있다는 것.
“립스틱 모양으로 된 거 있잖아…호신용 스프레이라던데 그걸 주머니나 핸드백 등에 많이 넣고 다녀. 호루라기도 있어. 호신봉도 있고, 손칼이나 전기충격기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도 봤어. 모두 밤길이 무서워서 그런 거지. 세상 참 무서워졌어….”
 저녁 7시를 조금 넘은 시각. 지난 2007년 1월 강호순이 노래방 도우미 박모(당시 37세)씨를 차에 태워 암매장한 안산시 사사동에 도착했다. 이곳은 개발 전까지 ‘사사리’로 불리며 논과 밭이 주를 이뤘던 곳이다. 아직도 한적한 길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버스정류장을 찾았다. 어둠이 깔린 이곳은 벌써부터 인적이 끊겼다. 30분 가량 지켜보고 있었으나 거의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고작 4명만 보았을 뿐이었다. 그나마 그들은 두 명씩 짝을 이루고 있었다.  
“밤엔 절대 나오지 않는다. 예전에는 등산객이나 운동을 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이들도 해 진 후엔 보기 힘들다. 쓰레기조차도 낮에 버리고 있는 추세다.”

맴도는 서늘한 기운…땅거미 내려앉으면 ‘집으로’
학생들 심야수업 기피, 직장인 회식·모임 자제

마을에서 만난 이모(46·마트운영)씨의 말이다. 이씨에 따르면 버스 왕래(30분 간격 배차)가 적고 인적이 드물어 주민들은 항상 불안에 떨었다고. 특히 사건이 일어난 이후 주민들의 왕래가 끊어지다시피 했다. 강호순의 차를 피해자들이 왜 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늦은 밤 퇴근하는 식구라도 있으면 두렵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일찍 귀가한 식구들이 전철역으로 늦은 귀가를 하는 또 다른 식구를 위해 마중을 나가는 경우도 많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씁쓸하다.”
식품을 구매하러 마트를 찾은 30대 초반 부부의 말이다. 이들 역시 위험하다는 이유로 마트조차 동행해서 온 것. 귀갓길이 요즈음처럼 무서운 적이 없다는 부부는 빠른 시일 안에 서울 입성을 고려하고 있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식당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 한곳을 찾았다. 식당종업원들만 한곳에 옹기종기 앉아있을 뿐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사건 이후에는 저녁 손님을 보기 힘들다. 식당들은 저마다 장사가 안 된다고 불만이 높다. 한마디로 손님들이 안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다른 곳으로 이주를 생각하고 있다.”
식당주인 김모(51)씨의 하소연이다. 김씨의 치안당국에 대한 불만은 높았다.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불안과 공포, 치안에 대한 불신 등이 어우러져 주민들 사이에도 정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서울로 출퇴근을 한다는 회사원 강모(34·여)씨. 강씨는  강호순 사건 이후 ‘귀가시계’가 바뀌었다고 말한다. 언제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긴급상황에서 화를 모면하기 위한 호신용 도구를 갖추고 일찍 귀가를 서두른다고.



“재테크 차원에서 아파트를 매입해 이사를 왔다. 하지만 지금은 세를 주고서라도 옮겨볼 생각이다. 요즈음 여기 사람들은 직장인의 경우 회식이나 모임을 자제하고 있고 학생들은 심야수업이나 학원수업 등을 꺼리는 분위기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이 여기 주민들의 공통된 심정일 것이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들은 실제 귀가시계를 바꾼 경우가 많다. 예컨대 퇴근 즉시 귀가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여성의 경우 집안 남자들의 보호를 받으며 귀가하는 모습이 많아졌다. 만일 귀가 시간이 늦어질 경우 아예 친구나 친척집을 이용하는 경우도 늘었다.

저녁 9시. 택시를 타고 인근 안산 건건동으로 향했다. 택시기사에게 요즈음 이곳 분위기에 대해 물으니 주민들 공포만큼이나 택시기사들도 공포 속에 운전을 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경기 서남부지역에는 택시강도사건이 자주 발생한다. 세상이 무섭다. 때문에 택시운전을 하는 것도 힘들다. 특히 외딴 곳으로 손님을 모시고 갈 때는 무서움을 느낀다. 젊은 남자들이 동승할 때는 그 무서움이 더욱 커진다. 강호순 같은 사람을 만나면 별 도리 없이 당하고 말 것이다.”
택시기사 장모(43)씨는 일반 손님이 택시 타기 무섭다고 하지만 택시기사도 손님을 태우기 겁이 난다고 토로했다. 항상 낯선 사람들을 태우게 되는 두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장씨는 주변 회사 동료들 중에는 한 달 평균 두 세 건 택시강도를 당한다고 말했다. 또 이로 인해 생을 달리한 사람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반월역 인근에서 만난 회사원 조모(18·여)양. 처음 기자를 경계하다가 인터뷰에 응한 조양은 통금시간이 밤 11시에서 9시로 2시간 앞당겨졌다고 말했다. 대입을 앞두고 학원수강 등을 하다보면 늦는 경우가 태반인데 밤길이 무서워 두 과목 수강을 없애고 귀가를 서두른다는 것.
“친구들은 저마다 핸드폰 위치추적 장치를 장착하는가 하면 호신용 물품을 소지하고 있다. 핸드폰이나 열쇠고리 등에 끼워 들고 다닌다. 모두들 턱없이 부족한 경찰을 믿었다가는 언제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많다. 때문에 스스로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강호순이 잡혔지만 사건지역은 아직도 그 공포와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장을 뒤로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사람이 사람을 못믿는 흉흉한 현재 모습을 다시 떠올리며 마음이 무거웠다. ‘악마’들과 섞여 사는 수밖에 없다는 인식만 팽배한 싸늘히 식어버린 그곳에 언제 다시 따뜻한 봄날이 찾아올까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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