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의미와 무의미’ 최병소

2020.12.07 09:56:53 호수 1300호

1970년과 2020년의 만남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 종로구 소재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최병소 작가가 개인전을 연다. 최병소의 작업세계를 통해 반예술적 태도, 의미의 해체, 일상적 상황의 활용으로 대변되는 1960~19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의 실천과 정신을 조명한다. 
 

▲ CHOI Byungso, Untitled 016000, 1975, Hangers, Dimensions variable_installation size 730 x 430 cm


최병소 작가의 개인전 ‘意味와 無意味 SENS ET NON-SENS: Works from 1974 to 2020’ 전시가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에서 열린다. 최병소는 이번 전시에서 자신의 예술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1970년대 초기 작품과 최근 작품을 병치했다. 

반예술적 태도

최병소는 1970년대 초반 전위적 한국 실험미술의 태동과 단색화의 경향을 관통하는 독특한 미술사적 위치에 있다. 전시제목은 최병소의 작품 ‘무제’에 사용된 메를로 퐁티의 저서에서 가져왔다. 

그는 예술과 사회 전반에 존재하는 주류 체계를 부정하며 그 체계를 해체하는 것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고자 했다. 그의 작업세계는 이성과 논리 세계의 무의미함을 주장하고, 경험과 물리적 경험성의 중시를 주장했던 메를로 퐁티의 세계관과 그 맥이 닿아있다. 

최병소가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활동하기 시작했던 1970년대는 5‧16 군사정변과 유신체제에 대한 정치적 좌절감, 그와 동시에 새마을운동으로 인한 경제적 안정과 희망이 공존하던 시대다. 


한국 실험미술의 태동 
단색화의 경향 관통

젊은 작가들은 일부 개방된 문호를 통해 국제미술의 실험적 미술경향을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군부독재 체제 속에서 실험적 작업과 전시들은 제재와 억압의 대상이 됐다. 

국전과 같은 공인된 무대에 설 수 있는 미술은 추상미술과 단색화 사조로 점차 편중됐다. 1970년대 이후 전개되는 모노톤 회화의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성격에 비해 현실에 대한 발언을 직간접적으로 시도했던 실험적 미술활동은 당시 정권에 대한 항거로 읽혀 탄압받았다. 

이처럼 경직된 분위기에서 한국의 실험미술은 그 활동과 위상이 자연스럽게 축소됐다. 최병소는 추상미술의 형식성을 일부 계승하면서도 사회적 불평등과 부조리를 직시해야 한다는 예술가들의 실험 정신을 실천하며 단색화와 실험미술의 경계에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만들어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 한국 작가들의 실험적 시도의 원동력에는 형식주의 예술에 대한 저항, 내면으로 침잠하던 추상미술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 당시 최병소는 “순수조형에의 의지 확인과 실험의 장이자, 20세기 전반부 예술의 지자체였던 팽팽하게 고양된 캔버스의 평면성, 그 조건 위에서 추구됐던 일루저니즘의 미학을 부정한다”고 말했다.
 

▲ CHOI Byungso, 0170712 Untitled, 2017, Paper, ballpoint pen, pencil, 110 x 80 x 1 cm

그의 작업 기저에는 반예술적 태도가 깔려있다. 그는 신문지, 연필, 볼펜은 물론이고 의자, 잡지 사진, 안개꽃 등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물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매체의 순수성, 형식주의 모더니즘과 같은 미술의 위계를 전복시켰다. 

과거 그의 대구 작업실이 침수돼 1970~1980년대에 제작된 작품 대부분이 유실 또는 파손됐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현재 남아있는, 1970년대 사진 작품으로는 유일한 두 작품을 소개한다. 

작업실 침수로 1970년대 작품 유실
유일하게 남아있는 작품 2점 소개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 사진을 이용해 만든 ‘무제 9750000-1’과 의자 위에 사물을 놓고 촬영한 사진·문자를 결합한 ‘무제 97500000-2’는 사진의 시각 이미지를 언어로 해석 또는 지시해 놓은 작품이다. 

최병소의 작품에서 사진의 이미지는 이를 형용하는 문자와 결합돼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연다. 의미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우연적이고 필연적인 어긋남을 의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닐고 있는 두 마리의 새와 그 상황을 설명하는 언어의 결합, 의자에 올려둔 사물과 그 사물을 지시하는 단어의 결합에서 관람객은 도리어 상황과 현실을 담을 그릇으로 언어가 가진 한계를 경험하게 된다. 

단어와 사물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관계자는 “최병소는 하찮은 물건과 행위 모두 그 시대의 본질을 구성하고 있음을 직시함으로써 예술을 생산해내는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에 이르고 있다”며 “예술과 반예술, 의미와 무의미 사이의 열린 가능성을 탐색하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 시대를 증언하는 최병소의 실험적 태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드러냈다. 전시는 2021년 2월27일까지. 


<jsjang@ilyosisa.co.kr>

 

[최병소는?]

1943년생

▲개인전

‘意味와 無意味 SENT ET NON-SENS’ 아라리오 갤러리(2020)
아트바젤 홍콩(인사이트 섹션), 우손갤러리(2019)
우손갤러리(2018)
아트센터 쿠(2017)
마리아룬드 갤러리(2016)
생떼띠엔느 현대미술관(2016)
아라리오 뮤지엄 탑동바이크샵(2016)
우손갤러리(2015) 
아라리오 갤러리(2015) 외 다수 

▲수상


11회 이인성 미술상 수상(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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