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우의 시사펀치> 방탄소년단과 병역면제

2020.10.26 10:12:44 호수 1294호

▲ ▲황천우 소설가

『우리 동네(노원구 하계동)가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노원에는 도로라고 해봐야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을 구불구불 돌고 돌아 중계동(중계본동)과 상계동(당고개역 부근)으로 들어가는 흙길이 전부였다. 그런데 한 순간 하계동의 논과 밭을 가로질러 도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 길에 대해 동네 어른들이 수군거렸다. 박정희 대통령이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비상 시 전투기 활주로로 사용하려고 도로를 일직선으로 만들려는 것이라 했다.

진위 여부는 차치하고 마치 그를 입증하듯 지금에 먹골역을 시작으로 의정부까지 일직선으로 길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조그마한 자갈들이 덮이고 다듬어질 무렵부터 버스가 다니기 시작했다.

그동안 우리 마을을 지나는 버스는 중계동과 상계동을 향하는 버스가 고작이었는데, 그 길로 도봉동에서 종로 5가까지 가는 버스가 다니기 시작했다.』

위 글은 현재 집필 중인 작품 일부로 1976년, 필자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무렵에 발생했던, 동일로(영동대교 남단과 양주시 마전동을 잇는 도로)가 들어서는 과정을 기록한 내용이다.


그런데 왜 필자가 느닷없이 위 글을 인용했을까. 물론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서 개최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양정모 선수가 왜 최초로 병역면제를 받았는지 정확하게 살펴보기 위함이다.

필자의 주변 상황을 간략하게 언급했지만, 1976년 당시 한국은 개발도상국에 불과했다. 필자의 기억으로 그 무렵부터 후진국이란 꼬리표를 뗀 것으로 여겨지는데 당시 대한민국은 세계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월남전 참전 영향으로 아시아권에 미미하게 알려진 정도였다.

그런 상태서 양 선수의 금메달 획득은 한국을 아시아를 넘어 세계에 알리는 기폭제가 된다. 당시 흑백TV로 양 선수가 시상대에 올라 금메달을 목에 걸고, 또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장면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던 기억이 남아 있을 정도다.

여하튼 양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자 박정희정권은 군 입대를 앞둔 그를 두고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

올림픽에서의 금메달 획득의 효과, 즉 국위선양에 대한 가치 때문에 그랬다. 또 박정권은 차기 올림픽, 1980년 모스크바 대회에서 다시 금메달을 획득해 국위를 선양하라는 의도로 병역면제 혜택을 주게 된다.

이제 이를 염두에 두고 최근 <일요시사>에서 실시한 방탄소년단의 병역면제와 관련한 설문조사에 대한 의견을 개진해보고자 한다.

사실 필자로서는 동 설문에 명확하게 답할 수 없다. 이 시점에 병역면제는 절대로 온당하지 않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간략하게 언급했지만, 병역면제 혜택의 본질에 대해서인데 이에 대한 본질은 국위선양이다.

그런데 ‘Made in Korea’가 사라진 지 한참 되는, Korea란 국가명 대신 기업명으로 도배되는 이 시점에 국위선양이란 단어는 모순이다.


국위선양을 구실로 병역을 면제해주는 행위는 후진국 혹은 개발도상국 시절에 존재했던 구시대의 유물, 즉 문재인정권이 입만 열면 외쳐대는 적폐다.

대한민국 국적을 지닌 건강한 남자라면 그 누구도 예외 없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다음은 방탄소년단의 병역면제에 대해서다.

그들의 영향력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병역면제 사유의 본질에서 바라본다면 당연히 병역면제 혜택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본질의 의미가 사라진 지금 그들에게 병역면제 혜택이 주어진다면 단지 적폐의 악순환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방탄소년단 스스로 그 적폐의 고리를 끊어버리면 어떨까 하는.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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