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영화 ‘허물어진 경계’

2020.03.16 11:03:15 호수 1262호

메가폰 들고 안방극장으로 ‘고고’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드라마를 두고 ‘안방극장’이라고들 한다. TV를 보는 각 가정의 안방을 극장으로 비유하는 말인데, 최근 드라마의 퀄리티를 보면 안방극장이 꼭 비유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만큼 세련된 영상미와 몰입도 높은 스토리, 배우들의 엄청난 연기력이 버무려져 있다. 뚜렷해 보였던 드라마와 영화의 경계는 오래 전에 희미해졌다. 집에서 자유롭게 보는 드라마 콘텐츠가 영화의 수준으로 높아진 이유와 미래에 대해 짚어봤다.
 

▲ 박찬욱·이경미 감독


과거에는 드라마와 영화에는 보이지 않지만 뚜렷한 경계가 있었다. 영화배우와 드라마 연기자라는 구분이 있을 정도였다.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들은 드라마에만,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은 영화에만 출연하는 풍토가 있었다. 가끔 영화 위주의 작품활동을 했던 배우가 드라마에 나오면 커다란 이슈가 되기도 했다. 

드라마를
영화처럼

배우 장동건과 신하균, 김혜수 등이 대표적인 예다. 감독과 스태프의 경계는 더욱 분명했다. 간혹 드라마 PD 중에 능력을 인정받은 PD가 영화를 연출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 경계가 허물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약 10년 사이 드라마와 영화의 경계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우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영화와 드라마를 오고 가며, 자유롭게 작품을 선정해왔다. 최근 두드러진 현상은 영화감독들이다. 특히 뚜렷한 족적을 남긴 영화 감독들이 드라마에 대거 진출하고 있다.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과 <챔피언>의 김용완 감독, <비밀은 없다>의 이경미 감독, <내 안의 그놈>의 강효진 감독을 비롯해 <공작>의 윤종빈, <터널>의 김성훈 등 걸출한 영화감독 대다수가 10부작 이상의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다. 


2011년 장항준 감독이 SBS <싸인>을 연출한 예도 있었지만, 이는 특이한 경우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영화감독이 드라마를 연출하는 경우는 없었다. 영화감독들의 드라마 진출은 CJ 계열의 채널부터 바람을 일으키면서 시작됐다. 

가장 먼저 나선 감독은 영화 <역모-반란의 시대>의 김홍선 감독이다. tvN <손 더 게스트>가 공포 장르임에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이후로 영화 <그녀를 믿지 마세요> 한지승 감독이 OCN <미스트리스>,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의 김종현 감독이 OCN <프리스트>를 연출했다.

비록 흥행면에선 성공하지 못했지만, 기존 드라마와 다른 수준의 질적 향상이 있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OCN은 더 깊은 영화계와의 협업을 선언한 후 ‘드라마 시네마틱’이라는 테마를 내건다. OCN 관계자는 “OCN 드라마가 영화 같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 강점을 부각하기 위해 드라마 시네마틱이라는 테마를 걸었다”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영화감독과 협업하는 흐름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 첫 작품은 <트랩>으로 <분노의 역류>의 박신우 감독이 연출했다.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날선 연출과 밀도 높은 스토리라는 측면서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두 번째 드라마 시네마틱 작품인 <사라진 밤> 이창희 감독이 OCN <타인은 지옥이다>를 연출하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잡는 데 성공했다. 세 번째 작품은 차태현과 이선빈, 정상훈 등이 출연하는 <번외수사>다. 

달라진 브라운관의 위상
전진하던 스크린 ‘답보’

최근 연상호 감독이 집필하고 김용완 감독이 연출을 맡은 <방법>은 오컬트 장르임에도 불구, 6%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물론 엄청난 화제성을 갖고 있다. 연기파 배우들과 아역 배우인 정지소를 통해 얻어낸 성과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CJ 계열뿐 아니라 JTBC도 영화감독들을 기용하고 있다. JTBC의 자회사인 JTBC 스튜디오는 배우 하정우와 그의 동생 김영훈, 강명찬 대표를 주축으로 세운 영화제작사 퍼펙트스톰과 <악인전> 등을 제작한 비에이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는 등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아울러 <극한직업>으로 흥행 감독이 된 이병헌 감독은 JTBC <멜로가 체질>을 연출했다. 비록 시청률은 높지 않았지만, 이 감독 특유의 말장난은 빛났다는 평가다.

MBC는 영화감독조합(DGK)과 손을 잡고 새로운 형태의 드라마를 제작한다. 제목은 <SF8>. 김의석, 노덕, 민규동, 안국진, 오기환, 이윤정, 장철수, 한가람 감독이 각 러닝타임 40분인 총 8편의 작품을 선보인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기술발전을 통해 완전한 사회를 꿈꾸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오리지널’과 ‘감독판’ 2가지 버전으로 제작되는 <SF8>은 MBC와 wavve를 통해 각각 방영된다. SF팬을 위한 오리지널 버전은 오는 8월 MBC서 방송 예정이고, 영화 마니아를 위한 감독판은 방송에 앞서 OTT서비스플랫폼 wavve에 한 달간 독점 선 공개할 예정이다. 
 

▲ (사진 왼쪽부터)연상호·황동혁·이병헌 감독

작품 기획은 물론 연출도 맡은 민규동 감독은 “SF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탄생한 <SF8>은 8인 감독이 만드는 사이언스 픽션 장르의 오리지널 시리즈로 공포, 미스터리, 액션, 멜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까지 다양한 장르의 향연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OCN <번외수사>(강효진 감독)와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이경미 감독)과 <킹덤2>(박인제 감독)가 방영을 앞두고 있다. 

이렇듯 연출력이 뛰어난 영화감독들이 드라마 시장으로 뛰어들 수 있는 배경은 드라마 시장이 커진 것에서 기인한다. 드라마 시장은 아시아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판권을 팔며 시장의 규모가 커졌다. 드라마 제작 편수는 한 해 150편에 달한다. 아울러 넷플릭스나 wavve와 같은 OTT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콘텐츠 품귀 현상이 일어났다. 콘텐츠 자체에 수요가 높아진 것.

콘텐츠 품귀 현상이 크리에이터 품귀 현상으로 이어지면서 영화 감독이 드라마에 진출할 수 있는 판이 만들어졌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최근 국내 드라마 시장이 급격하게 팽창됐다. 해외 판권이나 OTT 플랫폼 덕에 한국 드라마에 대한 사이즈가 커졌다. 그런 만큼 연출가나 스태프에 대한 품귀 현상도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영화감독으로 눈이 돌아간 것 같다”고 말했다. 

몸집 키운
안방 시장

드라마 시장이 글로벌화 됨과 동시에 국내 드라마의 경쟁상대는 타 방송사가 아닌 해외의 드라마가 됐다. 영화 제작 방식이 필름서 디지털로 바뀌고, 드라마 제작 규모가 커지면서 두 현장의 촬영 장비 및 기법의 격차가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영화계서 몸담았던 스태프들도 대거 투입하게 됐다.

과거 ‘생방 제작’이라고 불리는 등 몇 달 내내 밤을 새워가면서 만들었던 드라마 환경도 ‘반 사전 제작’ 형태로 바뀌는 등 여러 부문서 드라마와 영화의 현장 환경의 간극이 좁혀졌다. 드라마 촬영 환경의 변화가 영화와 드라마 사이에 인력 교류가 원활해진 배경이다. 

<멜로가 체질>의 이병헌 감독은 “현재 드라마와 영화 촬영 현장은 거의 비슷하다. 촬영 방법과 기법, 장비의 구분이 사라졌다”며 “영화에서밖에 표현할 수 없던 기술이 드라마서도 가능해졌다”고 밝혔다.


스태프들 사이서도 변화가 생겼다. 드라마 스태프가 벌어들이는 수익이 영화를 넘어섰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예전에는 영화 스태프들의 수익이 더 컸는데, 이제는 그 차이가 불분명해졌다. 드라마만 전문으로 하는 스태프 중에 월에 1000만원가량의 수익을 얻는 경우도 많다”며 “스태프들의 수익만 봐도 드라마의 달라진 위상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야기에 어울리는 플랫폼을 선택하고자 하는 감독들의 개인적인 욕심도 영화감독들이 드라마로 진출한 요인으로 꼽힌다.

영화 <터널>에 이어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2>를 연출한 김성훈 감독은 “2시간에 담지 못한 서사가 분명 있다. 드라마 산업이 성장하면서 창작자 입장에선 놀이터이자 일터가 새롭게 늘었다”고 말했으며 <멜로가 체질>의 이병헌 감독은 “이제 어떤 플랫폼인지보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가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7∼8년 전부터 드라마 연출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배우 도경수와 6부작 웹드라마 <긍정이 체질>을 선보이기도 했다.

영국서 <리틀 드러머 걸>을 연출한 박찬욱 감독 역시 “원작 내용이 워낙 방대했기 때문에 드라마로 만들기로 했다. 영화와 드라마의 근본적 차이는 없다고 생각했고 ‘긴 영화’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콘텐츠
품귀 현상

드라마 시장이 일취월장하는 사이 영화 시장은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도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허물어진 이유다. 드라마가 글로벌화 됐음에도, 영화는 여전히 국내 시장에만 의존하고 있다. 영화 수익의 대부분이 국내 관객으로만 채워진다. 전 세계서 각광받은 <기생충>이 해외 시장서 큰돈을 거둬들였을 뿐이다. 

대규모 투자 영화에만 집중되는 현상과 함께 작가주의 영화들이 스크린을 배정받지 못하는 점, 클리셰로 점철된 양산형 영화만 대다수 만들어지는 풍토가 생겨나면서 창작자의 고유성을 유지할 수 없는 환경으로 치닫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면서 드라마로 눈길을 돌리는 창작자가 늘어났다는 주장이다.

한 영화 관계자는 “영화서 창의성을 고수하는 것이 드라마보다 어려워진 현실이 됐다. 성공한 적 없는 장르나 내용의 시나리오가 영화서 선택되기 어려운 형편이다. 오히려 드라마가 더 유연하다. 연출가 입장에선 드라마가 영화보다 나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 (사진 왼쪽부터) 영화 &lt;리틀 드러머 걸&gt; &lt;멜로가 체질&gt; tvN 드라마 &lt;방법&gt;

영화 감독들의 진출은 한국 드라마의 경쟁력이 높아지는 데 일조한다. “한국 드라마는 어떤 경우에든 사랑을 한다”는 말은 ‘옛말’이 됐다. 극 전개와 상관없는 ‘러브라인’은 거세된 장르물이 늘어나면서 신선함과 완성도를 고루 갖추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꼭 영화감독 출신의 연출가가 아니더라도 곳곳에 포진한 실력파 스태프들 덕에 지상파와 JTBC, CJ 계열의 6채널의 드라마 수준은 이전보다도 훨씬 더 높아졌다. 

신파가 강하게 섞였거나 개연성이 부족한 엔딩이 더러 있었으나 이젠 그마저도 보완된 수준의 작품들이 대거 보인다. tvN <호텔 델루나> OCN <왓쳐> <구해줘2> <타인은 지옥이다>, KBS2 <동백꽃 필 무렵>  SBS <스토브리그> <낭만닥터 김사부> JTBC <검사내전> 등이 호평을 받았다. 

특히 <타인은 지옥이다>는 걸출한 수작으로 꼽힌다. “드라마와 영화의 강점을 그대로 가져오고 싶었다. 연출자로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1시간짜리 영화 10개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한 이창희 감독의 연출력에 극찬이 쏟아졌다.

웹툰이 갖고있는 고유한 주제의식과 정서를 완벽하게 묘사한 것은 물론 원작과 다른 충격적이고 끔찍한 엔딩까지, ‘진일보한 드라마’라는 평가가 나온다. <타인은 지옥이다>는 동명 웹툰을 드라마화시킨 만큼 10∼30대 젊은 원작팬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고, OCN만의 스릴러 감성이 취향인 20∼30대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한자 이름과 사진, 소지품으로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능력을 가진 10대 소녀와 사회부 기자가 대기업의 숨은 악과 맞선다는 내용의 <방법>도 높아진 한국 드라마의 위상을 알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오컬트 장르임에도 워낙 탄탄한 개연성과 빠른 이야기의 전개,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연기력 등으로 신선함과 완성도를 고루 갖춘 작품으로 평가된다. 

플랫폼보다 중요한 서사
OTT의 발전, 다양성 확대

연상호 감독은 시청률 3%만 넘겨도 시즌2 제작을 약속했는데, 10회가 6%를 넘겼다. 오컬트 장르로서는 눈에 띄는 결과다. 

<방법>은 영화 및 드라마 시즌 2로도 제작된다. 영화는 드라마 시즌 1을 잇는 내용이 담기며, 시즌 2는 영화의 후속 이야기를 이어간다. 드라마→영화→드라마 순으로 매체를 바꿔가며 <방법> 세계관을 확장하려는 계획이다. 영화 메가폰은 드라마 연출을 맡은 김용완 PD가 잡는다. 작품 내외적으로 새로운 시도가 모색되고 있다. 

OCN 드라마 시네마틱의 첫 번째 주자였던 <트랩>은 할리우드 메이저 제작사에 리메이크 제안도 받았다. 한국 드라마가 로맨스물이 아닌 장르물로 해외에 진출한 사례는 드물다. 시청률을 공개하지 않는 넷플릭스서 나온 <킹덤>은 국내만큼 해외서도 큰 인기를 끈 것으로 추정된다. 구글서 ‘킹덤’의 연관검색어는 ‘킹덤 모자’ ‘킹덤 레딧(미국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등이 있는 것을 봐서 킹덤에 대한 반응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희미해진 가운데 드라마 시장은 더욱 팽창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그 배경은 플랫폼 OTT의 발전 때문이다. 대표적인 OTT기업이 넷플릭스는 2019년 1분기 순이익이 전년동기 대비 22% 증가한 45억 달러(한화 약 5조3752억5000만원)다. 

엄청난 자본력을 바탕으로 높은 수준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꾸준히 한국 드라마와 손을 잡고 있다. JTBC <스카이 캐슬> <비밀의 숲>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 등이 그 예다. 신원호 PD의 신작 <슬기로운 의사생활> 역시 넷플릭스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OTT의 발전으로 인해 기존의 드라마 성공 문법 역시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시청자 조사기관에 의존했던 시청률 집계 방식이 무용지물이 될 공산이 크다.

앞서 각 방송사는 화제성으로 현재 인기의 척도를 알아본다. 비록 시청률이 낮다 하더라도 각종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의 반응을 살피며, 투자 여부를 결정했다. 시청률이 인기의 척도 역할을 못하고 있는 셈이다. 넷플릭스 등의 발전으로 시청률과 무관하게 실제 화제성에 기인한 다양한 작품이 나올 것이라는 예견이 나온다.

시청률
무용지물

한 OTT 관계자는 “OTT의 발전으로 인해 앞으로는 시청률이 아니라 취향으로 선택될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작품들이 만들어지게 될 것”이라며 “그만큼 다양한 콘텐츠가 생길수록, 시청률은 분산되겠지만 그만큼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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