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대선자금 노골적 '모르쇠' 이유

2012.08.01 09:11:10 호수 0호

야권·시민단체, 심지어 최시중도 "대선자금이라니까!"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로 구속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7월17일 열린 첫 공판에서 "대선자금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는 폭탄 진술을 했다. 법정진술인 만큼 대선자금 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힘을 얻게 됐다. 정권 말이 되면 검찰의 권력형 비리 수사는 우리 사회의 통과의례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하에서의 검찰은 왠지 수상하다. 최 전 위원장의 진술이 "대가성을 부인하는 취지일 뿐"이라며 애써 사건을 축소하려드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권재진 법무부 장관은 지난 7월23일 열린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 "구체적인 단서가 나오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겠다"며 현재로서는 대선자금 수사에 착수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단서 없다?

판사 출신인 박범계 민주통합당 의원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6억원을 받았다는 진술을 했고,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이 이상득 전 의원에게 대선자금으로 쓰라며 돈을 줬다고 했는데, 여전히 수사에 착수할 단서가 아니라고 생각하느냐"며 "내가 고시공부를 할 때 배웠던 형사소송법을 보면 '풍문도 수사의 단서'라고 나와 있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은 이 같은 구체적인 진술이 나오는데도 여전히 (형소법과) 다른 판단을 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고 따져 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권 장관은 전임 청와대 민정수석으로서 이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지난해 9월 이 대통령은 청와대 확대비서관회의에서 이번 정부가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자평했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불과 10개월 만인 지난 24일, 최측근이었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을 비롯해 최근에는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까지 줄줄이 비리에 휘말리면서 결국 대국민 사과를 해야만 했다. 야권에선 "도덕적으로 완벽하다던 이명박 정권이 도덕적으로 완벽하게 무너졌다"며 냉소를 보냈다.

현재 정치권에선 대선자금 수사 문제가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대통령의 측근비리 수사과정 곳곳에서 대선자금의 꼬리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요지부동이다. '증거와 단서가 있다면 수사하겠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대선자금 수사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하다는 반응이다. 정권 초반엔 정치검찰이라는 비판을 받다가도 정권 말이 되면 무서울 정도로 단호하게 사정의 칼날을 휘둘러왔던 검찰이었다.


사건 축소 은폐 의혹 "단서가 없으니까?"
아직은 MB 눈치 봐야…국민은 '무관심'

10년 전인 2002년에도 그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둘째아들인 김홍업씨는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돼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3남 홍걸씨도 최규선 게이트에 이름이 오르면서 결국 호송차 신세를 졌다. 검찰은 당시에도 엄청난 청와대의 압력에 시달렸다. 이희호 여사가 아꼈던 김홍걸씨 수사 때는 더했다. 당시 검찰에 전화를 한 사람이 박지원 비서실장(현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이었다. 검찰의 한 간부는 "박지원 비서실장의 불같은 전화가 걸려오는 날이면 검찰청사가 시끄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버텼다. 결국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둘이나 구속되는 전례 없는 일이 생겼다.

그렇다면 이렇게 단호했던 검찰이 이명박 정권 들어 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검찰의 주장대로 증거가 불충분하다. 지금까지 대선자금을 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거의 구속이 됐는데도 진술 외에는 특별한 추가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저축은행의 경우처럼 3억원 등의 소액을 가지고는 불법대선자금의 규모를 밝혀낼 수 없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들 사이에선 만약 대기업들이 불법대선자금을 건넸다고 하더라도 이미 지난 2003년 일명 '차떼기' 불법대선자금 수사로 인해 혼쭐이 났기 때문에 방법이 더 교묘해져서 꼬리를 잡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공소시효 역시 문제다. 지난 2007년 12월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공소시효는 5년에서 7년으로 늘었지만 법 개정 전인 2007년 12월 이전에 받은 대선자금은 공소시효가 5년만 적용된다. 2007년 당시 대선후보가 결정된 직후 대선자금을 본격적으로 모았다면 수사에 착수하자마자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셈이다.

하지만 야권과 시민단체들은 검찰의 수사의지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만약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때부터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면 공소시효가 문제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비판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권재진 법무장관, 충직한 MB맨으로 불리는 한상대 검찰총장, 그리고 BBK 주임검사로 이명박 정부 들어 승승장구하고 있는 최재경 중수부장 등이 대선수사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지적인 것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대선자금 수사는 커녕 현재 진행되고 있는 측근비리 수사조차도 증거물이 나왔으니 어쩔 수 없이 털고 가자는 식의 수사일 뿐"이라며 "과거와 같이 검찰이 비리를 단죄하기 위해 소명의식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펼치는 수사라고 보긴 힘들다"고 평가했다.

수사의지 문제

그러나 한 정치전문가는 "검찰은 행정부에 소속된 준 사법기관이므로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구조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권력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는 않았던 게 사실이다. 비리가 터지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수사를 하고 단죄를 해왔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런 검찰의 뒤에는 국민여론과 언론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예를 들어 1997년 김영삼 정권 말기 현직 대통령의 아들인 현철씨를 구속할 당시 검찰은 정권의 의지대로 적당한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 하려고 했다. 검찰총장이 대통령의 고교후배였고 중수부장도 권력의 의지에 따라 특수통이 아닌 공안통이 임명되어 현 정권과 상황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언론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고 현철씨 주변을 파헤쳤다. 청와대가 중수부장을 교체하면서까지 재수사를 할 수밖에 없도록 분위기를 조성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언론도 국민도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며 쓴소리를 했다.

이어 그는 "야권과 시민단체는 물론 돈을 건넨 사람도,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도 대선자금이라고 주장하는데도 검찰이 '모르쇠'로 일관할 수 있는 것은 국민과 언론의 무관심이 가장 큰 이유"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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