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사이비 자선단체의 두 얼굴

2019.12.16 10:01:34 호수 1249호

‘빈곤 포르노’ 가난도 전시하는 시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찬바람 부는 계절이 돌아왔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다. 주변의 이웃에게 따뜻함을 나눠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때이기도 하다. 많은 자선단체들이 연말연시를 맞아 시민들의 기부를 독려하고 있다.
 

▲ 유니세프 광고


한때 기부는 기업과 부자들의 전유물이었다. 홍수나 화재, 재난 등 특정 사건이 일어났을 때 온정의 손길이 몰렸다. 가진 자들만 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기부는 사회가 변하면서 일상 속으로 녹아들었다. 기부의 범위는 넓어졌고 방법은 다양해졌으며 수혜자는 많아졌다.

기부 한파

하지만 기부 참여율은 매년 낮아지는 추세다. 통계청서 발표한 2019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년간 기부한 경험이 있거나 앞으로 기부할 의향이 있는 사람의 비중은 줄어들었다. 통계청은 지난 5월 전국 19000표본 가구 내 13세 이상 가구원 37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지난 1년간 기부를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의 비율은 25.6%로 나타났다. 직전 조사인 2017(26.7%)과 비교해 1.1%포인트 줄었다. 2011(36.4%)과 비교하면 10.8%포인트나 줄었다. 2년 주기의 사회조사서 201334.6%, 201529.9% 등 기부 참여율은 꾸준히 감소 추세를 보였다.

향후 기부 의향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39.9%, 유산 기부 의향이 있는 사람은 26.7%로 역시 2년 전 조사 때보다 각각 1.3%포인트, 7.8%포인트 줄었다. 기부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2013년 반짝 상승했다가 이후 꾸준히 감소했다. 2019년 조사에선 처음 40% 밑으로 떨어졌다.


기부를 하지 않는 이유로는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라는 답변이 51.9%로 가장 많았다. 이어 기부 단체 등을 신뢰할 수 없어서라는 응답이 14.9%로 뒤를 이었다. 기부 단체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기부를 하지 않는다는 비율은 지난 조사에 비해 6%포인트 증가했다. 지난 1년 동안 자원봉사를 해봤다는 비율도 201119.8%, 201319.9%, 201518.2%, 201717.8%, 201916.1% 등 매년 감소하고 있다.

기부 참여율 매년 줄어들어
향후 기부 의향도 감소 추세

불우이웃을 도우려는 시민들의 따뜻한 마음을 악용해 기부금을 제멋대로 유용하거나 자신의 뱃속을 차리는 데 사용하는 사례들이 종종 드러나는 것도 기부 참여율 축소에 한몫했다. 실제 오랫동안 자선단체에 기부금을 내온 한 시민은 적은 돈이지만 투명하게 썼으면 했다. 지금은(기부금을)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금니 아빠이영학 사건은 기부문화에 찬물을 끼얹었다. 얼굴 전체에 종양이 자라는 거대백악종을 앓고 있던 이영학과 딸의 사연이 한 방송사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지면서 각계서 후원의 손길이 이어졌다. 이영학은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딸의 근황을 설명하고 후원을 부탁하는 글을 자주 올렸고, 시민들은 이에 호응했다.

그러나 이영학이 딸의 친구를 집으로 유인해 성추행하고 살해한 후 시신을 유기한 사건이 뒤늦게 전국을 뒤흔들었다.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는 과정서 이영학의 이중생활이 드러났다. 그는 특별한 직업 없이 후원금으로 차량을 튜닝하고 명품을 구입하는 등 호화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국민의 공분을 샀다.

지난 5월에는 소외계층을 돕는다며 127억원이 넘는 기부금을 받은 뒤 정작 후원을 하지 않아 재판에 넘겨진 윤항성 새희망씨앗 회장이 징역 6년형을 받았다. 대법원 2(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상습사기, 업무상횡령 등으로 기소된 윤 회장에 대해 징역 6년의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 어금니아빠 이영학

윤 회장은 2014년 주식회사 새희망씨앗과 사단법인 새희망씨앗을 설립해 함께 운영했다. 윤 회장과 회사 관계자들은 불특정 일반인을 대상으로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을 지원한다며 후원을 요청하는 전화를 걸었다. 35개월 동안 49750명이 후원에 참여했고, 후원금은 127260만원에 달했다.

이 돈은 극히 일부만 소외계층을 위해 사용됐고 대부분 새희망씨앗의 운영비와 인건비로 나갔다. 윤 회장 개인 명의의 아파트 토지를 구입하고 개인계좌로 돈을 이체해 사용하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들은 금전적 손실뿐 아니라 마음의 큰 상처를 입었고, 일반인들도 기부문화를 불신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부금 제멋대로 쓰고
자극적으로 광고 연출

기부금 유용 문제 말고도 최근에는 가난을 전시해 모금운동에 나서는 사례도 지적받고 있다. 이른바 빈곤 포르노라는 것. 빈곤 포르노는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상황을 자극적으로 묘사한 소설이나 영화, 사진, 그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또는 그것으로 동정심을 일으켜 모금을 유도하는 일을 말한다.


1980년대 국제 자선캠페인이 급증하면서 빈곤 포르노라는 용어가 생겼다. 후원단체 광고에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아이들, 아이들이 눈물을 머금고 있는 모습, 흙탕물을 허겁지겁 마시고 있는 모습 등을 흔히 볼 수 있다. 지나칠 정도로 자극적인 광고는 특정 개발도상국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부추기고 인권을 유린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 인물에게 더 불우해 보이도록 특정 행위를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또 이런 광고를 위해 대역을 섭외하고 연출을 더해 한 편의 작품으로 만들어 모금활동에 이용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실제 인물을 대상으로 광고를 제작할 경우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고 인권침해의 가능성도 있기에 대역을 쓴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불우한 환경을 강조하는 배경은 그대로다.

쓰레기가 가득한 집, 화목하고 풍요로운 다른 가족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이들, 점심시간에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배고픔을 참는 모습 등 대중매체를 통해 가난을 표현하는 방식을 후원광고에도 그대로 답습해 표현하는 사례가 많다. 이는 광고를 접한 사람들에게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아가 차별의 불씨로 작용할 수 있다.

불우해 보이게?

지난해 7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는 제40차 심의소위서 후원광고에 대해 논의했다. 희귀난치병을 가진 A양의 사연을 지나치게 상세하게 보여줘 불편하다는 민원이 방심위에 접수됐다. 사회적 약자를 자극적으로 묘사해 빈곤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고 부정적이고 일방적인 편견을 조장한다는 취지였다. 심영섭 방심위원은 유럽연합 같은 경우 빈곤 포르노라 불리는 광고 자체를 금지시키려 한다어떤 방어 수단도 없는 이들은 도움을 받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초상권 등을 침해당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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