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김용빈 대한카누연맹 회장

2019.11.11 15:38:29 호수 1244호

‘20일의 기적’ 역사의 기록이 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반도기와 국가로 아리랑을 사용한 남북단일팀의 정식 명칭은 코리아(KOREA). 코리아팀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카누 용선 종목서 금메달 1, 동메달 2개의 빼어난 성적을 거뒀다. 기적의 이면엔 김용빈 대한카누연맹 회장이 있다. 김 회장은 그날의 기적이 추억보다는 기록으로 남길 바랐다.
 

▲ 일요시사와 인터뷰 갖는 김용빈 대한카누연맹 회장


카누 용선 종목은 뱃머리에 용의 모형을 장식한 배, 드래곤보트를 다수의 인원이 함께 노를 저어 기록을 겨루는 경기다. 개인의 화려한 퍼포먼스보다는 단체의 일사불란한 단합이 요구되는 팀스포츠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남측과 북측 선수들이 절반씩 올라탄 남북단일팀, 코리아의 여자팀 용선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500m 결선서 가장 빠른 속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국제종합스포츠대회 사상 처음으로 남북단일팀이 금메달을 따낸 순간이었다.

미미한 시작

시작은 미미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하 평창올림픽)서 불기 시작한 남북 간의 훈풍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식어가는 중이었다. 카누 용선 남북단일팀을 구상했던 김용빈 대한카누연맹 회장의 도전은 공허한 외침으로 남는 듯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북측이 남측의 러브콜에 화답하면서 기적의 씨앗이 움트기 시작했다. 북측서 출전 선수 명단을 팩스로 보낸 시점부터 상황은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북측 선수단이 입국하고 대회까지 남은 훈련 시간은 20.


카누 용선 종목은 찰나가 순위를 가른다. 선수 개개인의 노를 북재비의 북소리에 맞춰 하나의 거대한 노로 만드는 게 관건이다. 훈련은 용선을 본 적도 없다는 북측 선수들에게 노 젓는 법을 가르치는 것부터 시작됐다.

훈련이 거듭될수록 호흡은 맞아가고 기록도 점차 나아졌지만, 이미 몇 년씩 함께 노를 저은 다른 나라 출전팀과 비교했을 땐 턱없이 모자랐다. ‘창피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부정적인 목소리가 스멀스멀 새나왔다.

모두가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기적은 선수들의 땀과 눈물을 자양분 삼아 조금씩 싹을 틔우고 있었다. 선수들이 충주호서 함께 본 무지개는 좋은 징조였다. 그리고 대회 당일 여자팀과 남자팀의 노가 물살을 갈랐다.
 

▲ 시상대에 올라간 남자 단일팀

여자 200m1, 여자 500m3, 남자 1000m5분 남짓이면 승부가 결정된다. 메달 소식은 팔렘방의 더운 공기와 함께 전해졌다. 코리아팀은 여자 500m 금메달을 비롯해 여자 200m와 남자 1000m에서 각각 동메달을 따냈다. 팔렘방에 울려 퍼진 아리랑은 ‘20일의 드라마’ OST였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북단일팀으로 금메달 따내

지난 5일 오후 대한카누연맹 사무실에서 만난 김용빈 회장은 기적’ ‘감개무량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201745세 나이로 제11대 대한카누연맹 회장으로 취임한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종교를 가진 분들이 가끔 신을 만났다고 하잖아요. 그것처럼 사업에만 열중하다가 갑자기 기적을 만나고 나니까 도전과 열정이 있으면 가능하구나, 패배적으로 생각할 필요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제가 20년동안 사업을 해오면서 지치기도 했는데, 앞으로 새로운 20년을 달릴 수 있는 원동력과 희망, 에너지를 얻었습니다. 정말 감개무량했습니다.”

김 회장은 젊은 회장답게 선수단을 호령하고 군림하기보다는 함께 이뤄내고 같이 걷기를 바랐다. 포탈사이트서 카누를 검색하면 스포츠가 아니라 유명 연예인이 광고하는 제품이 나올 만큼 낮은 인지도는 김 회장에게 도전의식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할 카누를 좀더 널리 알리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구상은 평창올림픽서 시작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를 기점으로 평창올림픽까지 이어진 남북의 평화모드에 착안, 김 회장은 아시안게임 카누 종목 남북단일팀 구성에 돌입했다. 공정성과 선수들의 인권을 고려해 백지 상태나 다름없는 카누 용선을 남북단일팀 종목으로 정했다.
 

▲ 도명숙 선수와 김현희 선수

문제는 김 회장의 생각을 우리나라와 북한, 전 세계에 관철시키는 일이었다. 김 회장은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페루레나 로페즈 국제카누연맹 회장 등을 만나 카누 용선 남북단일팀의 필요성과 파급력에 대해 강조했다.

김 회장은 “‘한 배를 탄다는 말은 화합을 의미한다. 남북한 선수들이 한 배를 타고 같은 목표를 향해 노를 젓는 것, 그 자체가 평화의 상징이 될 수 있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남북단일팀 구상과 추진은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자칫하면 양치기 소년’ ‘새빨간 거짓말쟁이가 될 수 있는 상황서 김 회장은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직접 만나 대화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됐기 때문에 언론보도가 북한에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실제 북측 관계자들은 기사를 통해 카누 남북단일팀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짧은 훈련기간에도
메달 3개 쾌거 이뤄

모든 상황을 진두지휘했던 김 회장은 극적으로 남북단일팀이 구성된 이후 서포터의 역할로 돌아갔다. 선수와 감독에 대한 무한 신뢰를 바탕으로 자칫 외부서 불어 닥칠 수 있는 외풍을 막아내는 것도 김 회장의 몫이었다. 그는 남북단일팀이 어렵게 구성된 만큼 주어진 시간동안 후회 없이 훈련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내가 할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언젠가 다큐멘터리로 제작할 수 있도록 남북단일팀 구성 과정과 훈련, 경기, 시상식 등을 영상에 담았다. 김 회장은 영상에는 메달과 상관없이 선수들과 감독, 연맹 등 우리 모두의 숭고한 노력이 담겼다“2018년 여름 한때의 추억보다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기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지난달 14일 발간한 책 <20일의 기적>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는 이슈가 이슈를 잡아먹는 시대라 숭고한 노력과 성과가 쉽게 잊히고 있다꿈같았고, 기적 같았던 그날의 일들을 좀 더 오래 남겨두기 위해 책을 기획하고 썼다고 계기를 언급했다.

<20일의 기적>에는 남북한 선수들이 마음을 모으는 과정, 대회에 임하는 각오, 헤어질 때의 슬픔 등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담겼다.

김 회장은 아시안게임의 여세를 몰아 미국서 열린 카누 용선 세계선수권대회 참가를 노렸지만 북측 선수들의 비자 발급 문제로 무산됐다.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하지 못하면서 남북단일팀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이벤트로만 남았다.


창대한 끝

그럼에도 김 회장은 피겨 종목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국민들이 김연아라는 존재를 통해 피겨를 접하고 사랑하게 됐다카누 역시 선수들이 여러 대회서 좋은 성과를 내고 그 성과들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인기 스포츠로 발돋움할 것이라 본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이어 아시안게임 남북단일팀 카누 용선 경기를 통해 스포츠가 국제 평화를 진척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앞으로도 대한카누연맹은 우리나라의 발전과 평화에 대한 진전을 이뤄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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