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작고 10주기’ 고 신성희

2019.10.14 14:17:13 호수 1240호

평면에 머물지 않는 공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나의 작품은 찢어지기 위해 그려진다. 그리고 찢는다는 것은 이 시대 예술에 대한 질문이다. 그것이 접히며 묶이는 것은 곧 나의 답변이다. 공간은 나로 하여금 평면을 포기하게 한다. 포기해야 새로워진다는 것을 믿게 한다.” ‘누아주(Nouage, 엮음)의 작가’ 신성희가 작고한 지 10년이 흘렀다.
 



갤러리현대가 신성희 작가의 개인전 신성희: 연속성의 마무리전을 준비했다. 2009년 타계한 신성희는 국내외 미술계에 누아주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화가로서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성찰했다. 또 이를 독창적으로 유희하고 극복하는 일련의 연작을 발표했다.

입체의 형태

신성희의 연구는 회화의 본질을 쫓아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1970년대 초반 시작한 일명 마대 위의 마대연작에서는 캔버스 대신 마대를 바탕으로 삼아 그 위에 마대의 씨실과 날실, 그 음영 등을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재현했다. 그 시각적 특징은 당대 한국 미술계의 흐름을 주도한 모노크롬 회화와 유사했다.

신성희는 이 연작서 대상과 그림, 사실과 착각, 실상과 허상 사이의 차이 혹은 대비를 고민했다. 이 과정을 통해 그는 그림은 착각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1980년 가족과 함께 프랑스 파리로 떠나 나그네생활을 시작한 그는 한국 미술계와 거리를 두며 자신만의 미학적 테제를 찾는 데 몰두했다.

1980년 가족과 파리로 떠나
자신만의 미학 찾으려 골몰


1980년대 일명 콜라주 회화는 다채로운 색으로 칠한 종이와 판지를 찢고 접어 멍석을 엮듯 무작위로 잇대고 겹쳐 붙여 이것을 한 화면으로 만든 연작이다. 신성희는 콜라주 회화가 그리는 행위와 그것을 받쳐주는 지지체를 분리해 실험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초반에는 투명한 아크릴판을 지지체로 삼았지만 1985년 이후부터 아크릴판 없이 종이를 잇댄 화면 자체가 지지체가 되도록 했다.

이어붙인 종이와 종이 사이에 형성된 화면 곳곳의 구멍은 이후 전개될 평면이면서 동시에 입체인 새로운 회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신성희는 1990년대 초반 다시 캔버스로 돌아간다. ‘무엇을 그리는가보다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캔버스 접기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해결했다.

이번 전시서 선보이는 연속성의 마무리연작은 채색한 캔버스 천을 일정한 크기로 잘라 띠로 만들어 서로 잇대고 박음질해 완성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까지 색띠를 엮어 화면에 그물망을 구축하는 누아주 연작으로 또 다른 변신을 시도했다.

갤러리현대는 신성희의 작고 10주기를 기념해 1990년대를 대표하는 연속성의 마무리 연작 33점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이 연작만을 살피는 첫 전시로, 신성희의 미술사적 성취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갤러리현대는 1998년부터 2016년까지 6회에 걸쳐 신성희의 개인전을 개최, 시대에 따라 변화한 그의 작품 세계를 한국 미술계에 알려왔다.
 

1988년 첫 전시에는 콜라주 회화를, 1994년에는 콜라주, 연속성의 마무리 연작, 오브제 작업을, 2001년과 2010년에는 마대, 콜라주, 연속성의 마무리, 누아주 연작, 오브제 작업을 선보였다. 2005년 누아주, 2016년 마대와 캔버스 뒷면을 극사실적으로 그린 초기작품까지 신성희의 작품을 소개했다.

박음질 회화로 통하는 연속성의 마무리 연작은 제목처럼 색을 칠한 띠가 한 화면에 수직과 수평으로 연속해서 배치된 작업이다.

신성희가 1980년대 전개한 콜라주 회화는 유희성과 우연성이 적극적으로 개입됐다. 반면 연속성의 마무리 연작은 집을 짓거나 맞춤옷을 재단하듯 캔버스 뒷면을 기준으로 띠의 길이와 배치, 구조와 밀도 등을 완벽히 계산해야 한다. 천에 유채와 아크릴 물감으로 점을 찍고 얼룩을 뿌리는 추상적인 그림 그리기 과정서 출발한다. 이 추상회화처럼 보이는 캔버스 천을 잘라 해체하고 다양한 길이의 띠 형태로 접는다.

‘연속성의 마무리’ 집중 소개
“캔버스에 생명을 부여하자”

띠의 가장자리 끝을 뜯어내 캔버스 질감이 살아나도록 한다. 이렇게 만든 띠를 서로 마주보게 한 다음 재봉틀로 박음질을 해서 색 띠를 조합한다. 신성희가 평생에 걸쳐 고민한 회화를 떠나지 않으면서 동시에 평면 작업에만 머물지 않는 공간이 창조되는 순간이다.

이번 전시는 연속성의 마무리 연작의 시기별 변화는 물론 작업과정의 치밀한 설계와 섬세한 변주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누워있는 것은 죽은 것이라는 신성희의 말처럼 가로와 세로로만 작업하는 연속성의 마무리 연작의 제약서 벗어나 누아주라는 구축적 회화로 나아가는 흥미로운 변화를 감상할 수 있다.
 


연속성의 마무리 연작에는 캔버스에 생명을 부여하자는 문장을 소명으로 삼고 회화의 평면성을 해체하고 다차원적 공간을 창조한 신성희만의 예술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프랑스의 미술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는 신성희의 작품을 두고 놀라운 개혁! 혁신! 고백하건대 나는 이 진동하는 캔버스의 천 가장자리를 바라보며 어루만지고 싶은 충동의 커다란 설렘을 느낀다고 극찬했다.

다차원 공간

갤러리현대 관계자는 이번 전시를 통해 평면이라는 회화의 절대성에 놀라운 개혁을 선사하고, ‘우리를 바람이 오가는 공간의 문을 열게’(작가의 말)한 신성희 작품의 진면목을 재확인할 수 있다고 기대를 드러냈다. 전시는 오는 31일까지.
 

<jsjang@ilyosisa.co.kr>

 

[신성희는?]

1948년 안산서 태어나 2009년 서울서 세상을 떠났다. 1966년 서울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회화과에 진학했다.

1968년 신인예술상전 신인예술상을, 1969년 제18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서 특선을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1980년 32세에 가족과 함께 파리로 떠나 2009년까지 활동했다.

갤러리 꽁베흐정스, 미국 시그마갤러리, 앤드류 샤이어 갤러리, 스위스 갤러리 프로아르타, 일본 도쿄도 미술관, INAX 갤러리, 한국 환기미술관, 소마미술관, 단원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갤러리와 기관에서 전시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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