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죽기 전에 해외여행은 한 번 가봐야지.’ 해외여행을 인생의 버킷리스트로 꼽는 사람은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 해외여행이 일상으로 자리잡으면서 생긴 변화다. 폭발적으로 증가한 수요에 비례해 여행 상품도 크게 늘었다. 그와 동시에 과도한 여행 취소 수수료로 소비자가 피해를 입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해외여행이 일상으로 들어왔다. 저가항공사의 등장으로 항공권 가격이 저렴해지고 각종 여행 상품이 나타나면서 해외여행자의 수요가 급증했다. ‘크게 마음먹고’ 멀리 떠나는 여행보다 주말, 휴가 등을 이용해 근거리에 있는 여행지로 짧게 떠나갔다가 돌아오는 여행자도 늘었다.
해외여행자↑
실제 여행업계 관계자들은 인터넷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해외여행지에 대한 정보가 무궁무진해지면서 해외출국자가 늘었다고 분석했다. 또 일상서 휴식을 얻으려는 여행자들이 근거리 여행지를 선호하면서 해외여행 시장의 성장세가 커졌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해외로 출국한 여행자 수는 1011만847명에 이른다.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4.7% 늘었다. 지난해 해외출국자수는 2869만5983명.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많은 사람이 해외로 나갈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나라 5170만 인구(통계청 장래인구추계 2019) 대비 55.5%, 국민 2명 중 1명은 해외여행을 가는 셈이다.
여행사와 항공사 등 관련 업계는 발 빠르게 여행자 잡기에 나섰다. 온갖 종류의 여행 상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행자들이 커뮤니티 등에서 정보를 공유하면서 입소문이 퍼졌다. 홈쇼핑 등을 통해 저렴한 가격에 여행 상품을 판매하는 여행사도 늘어났다. 부지런한 여행자들은 보다 싼 가격으로 해외여행을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문제는 저렴한 가격 뒤에 숨어 있는 ‘함정’이다. 여행 상품을 구입했다가 부득이한 사정이 생겨 갈 수 없게 된 경우, 계약 취소 과정서 발생하는 문제는 소비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1인당 수십만원에 이르는 계약금을 아예 돌려받지 못하거나 과도한 위약금으로 손해를 보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여행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개인 사정으로 여행을 취소해야 하는 소비자들의 위약금 문의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행 취소 위약금이 이렇게 큰지 몰랐다’ ‘(여행)한 달 전에 취소했는데도 환불금이 얼마 안 된다’ ‘급한 일이 생겨서 여행을 취소하려 했는데 위약금 때문에 양도했다’ 등이 그런 사례다.
해외여행자 크게 늘면서
업계도 저렴한 상품 내놔
지난 3월 방송을 통해 여행 상품을 구입한 A씨도 비슷한 상황이다. A씨는 아내와 함께 여행을 가기 위해 홈쇼핑으로 KRT여행사의 북유럽 4개국 여행 상품을 구입했다. 덴마크, 에스토니아,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를 7박8일 일정으로 여행하는 상품이었다.
A씨는 10월 7박8일 일정으로 날짜를 정했다. 계약과 동시에 1인당 30만원씩 총 60만원의 계약금도 치렀다. 하지만 7월경 A씨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여행 계획이 틀어졌다. 부상 정도가 심했던 A씨는 의사로부터 ‘당분간 장거리 여행을 하지 않는 게 좋다’는 소견을 들었다.
여행을 할 수 없게 된 A씨는 지난 8월말, 여행을 약 한 달여 앞두고 의사 소견을 적은 진단서를 내고 계획을 취소했다. 문제는 A씨는 사정이 인정돼 계약금을 환불 받았지만 동행하기로 한 아내의 계약금 30만원은 고스란히 날리게 됐다는 점이다.
A씨는 “둘이 함께 가기로 한 여행서 한 사람이 못 가게 됐으면 다른 한 사람도 취소하는 게 일반적인 것 아니냐”며 “동행인에게는 사정이 없다고 계약금을 전액 돌려줄 수 없다는 여행사의 정책은 횡포”라고 비판했다.
KRT여행사 관계자는 “A씨가 구입한 상품은 일반 표준취소 약관이 아니라 특별약관 규정이 적용되는 상품”이라며 “A씨의 경우는 보내준 진단서를 확인해서 계약금 환불 처리를 했고, A씨의 아내 분은 취소 수수료(30만원)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당 내용(취소 수수료 관련)은 일정표나 전화 안내, 문자메시지, 여행계약서 등을 통해서 사전에 안내가 된 부분”이라며 “특수성이 있는 상황서 이런 일이 발생해 고객님께서 불편을 느낀 것 같다”고 덧붙였다.
KRT여행사서 말하는 특수성이 있는 상황은 A씨가 구입한 여행 상품이 일반약관보다 특별약관이 우선 적용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A씨의 여행계약서 하단에는 ‘환불규정은 당사 해외여행 표준약관보다 우선 적용되는 특약규정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분쟁 해결기준과 별도로 진행되는 규정입니다. 예약 취소 시 해외여행 약관 제5조(특약)에 의한 자체 특별약관이 적용됨을 양지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고지하고 있다.
예약 순간부터 환불 불가
여행사 “사전에 고지했다”
KRT여행사가 명시한 특약규정에 따르면 예약금이 입금된 순간부터 그 어떤 이유로든 환불이 불가능하다.
KRT여행사 관계자는 “이 상품은 디파짓(deposit)이라고 해서 항공좌석을 사전에 다 구입하는 방식으로 계약했다. 그래서 ‘어떤 이유가 있어도 100% 페널티가 나온다’는 내용이 담겼다”며 “그렇기 때문에 고객들에게 더 좋은 가격대의 상품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서 고시한 소비자분쟁 해결 기준에 따르면 여행자가 여행 30일 전까지 계약 해제를 요청할 경우 계약금을 환급하도록 돼있다. 사실 이 같은 여행사의 특별약관 규정을 둘러싼 논란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왔다. 특별약관을 표준약관보다 우선 적용해 여행사서 과도한 취소 수수료를 물리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다.
특히 성수기인 여름 휴가철에는 이와 관련된 소비자들의 신고가 급증한다. 한국소비자원과 공정위는 지난 7월 여름 휴가철인 7∼8월에 피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숙박, 여행, 항공 분야에 대해 소비자 피해 주의보를 발령했다.
3개 분야 소비자 피해는 2016년 2796건, 2017년 3145건, 2018년 3307건으로 매년 증가했다. 이중 21%가 7∼8월에 집중됐다.
‘질병에 따른 여행 취소 후 과다한 위약금 부과’도 대표적인 신고 사례로 꼽힌다. 공정위나 소비자원은 “여행계약 시에는 특약 내용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등록된 여행업체인지, 영업 보증보험에 가입돼있는지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강조했다.
나몰라라?
또 얼리버드나 땡처리 항공권의 경우는 환불이 불가한 경우가 많으니 여행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다면 구매를 자제해 달라고 덧붙였다. 결국 소비자가 알아서 잘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위 약관심사과 관계자는 “특별약관이 (일반약관에)우선한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문제가 된다면 특별약관의 내용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