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 국조특위 해부

2019.04.08 11:08:10 호수 1213호

툭하면 꺼내드는 ‘국조 카드’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정치권이 외쳤던 공공부문 채용비리 척결은 공허하다. 여야는 지난해 말 채용비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그러나 회의 한 번 열린 적이 없다. 여야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정국경색을 야기했다. 비단 채용비리뿐만이 아니다. 정치권은 그간 걸핏하면 국정조사를 주장했다.
 

▲ 한 자리에 선 홍영표·나경원·김관영 여야 원내대표


공공부문 채용비리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이하 국조특위)는 지난해 12월17일 여야 합의로 구성됐다. 같은 해 국정감사에서 불거진 서울교통공사 친인척 채용비리 의혹과 강원랜드 채용비리 의혹 등이 불씨가 됐다. 여야 3당은 진통 끝에 채용비리 국조특위에 합의했지만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엇박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와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합의 직후부터 파열음을 냈다.

나 원내대표가 이날 “조사 대상에 강원랜드가 명기돼있지 않은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말하자 홍 원내대표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공공부문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반박했다. 이어 나 원내대표는 “강원랜드가 아닌 공공부문”이라고 하자 홍 원내대표는 “서울교통공사가 명시돼있지 않고 공공부문으로 돼있다”고 받아쳤다.

결국 같은 달 27일 열린 본회의서 채용비리 국정조사 계획서는 불발됐다. 여야는 다음 본회의서 이를 처리하기로 했으나 계획서는 통과되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 2월20일 발표한 ‘공공기관 채용실태 정기 전수조사’를 발표했다. 정부는 1025개 기관(공공기관 333개·지방공공기관 634개·기타 공직유관단체 238개)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총 182건의 채용비리가 적발됐다.

채용비리 국조특위에 합의한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은 같은 달 22일 국정조사 정상화를 촉구했다. 바미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서 “공공기관 채용비리는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적폐”라며 “국민 앞에서 청와대와 여야가 함께 약속한 합의 내용에 따라 국조 계획서 채택을 위한 특위를 가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조특위는 거대 양당의 소극적 행태에 빨간불이 들어온 상황이다.

민주당은 국정조사만 따로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정조사를 유치원 3법과 연계하기로 했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본회의서 유치원 3법은 통과되지 못했다. 한국당은 유치원 3법이 패스트트랙에 오른 만큼 국정조사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한국당의 태도는 그다지 적극적이지 못하다. 강원랜드 의혹의 경우 한국당 권성동·염동열 의원이 재판을 받고 있다. 최흥집 전 강원랜드 사장은 지난해 11월 결심공판서 권 의원과 염 의원으로부터 청탁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권 의원과 염 의원이 채용청탁 혐의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던 상황에서 나온 증언이었다. 현재 권 의원과 염 의원은 관련 재판을 받고 있다.

또 김성태 전 원내대표의 딸이 KT 채용비리 의혹에 휩싸이며 발목을 잡았다. 이석채 전 KT 회장은 해당 의혹과 관련해 지난달 22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김 전 원내대표는 지난해 10월 서울시청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서울시 국감서 시청 진입을 시도하며 파행을 빚은 바 있다. 당시는 서울교통공사 친인척 채용 논란이 불거질 때였다. 이날 김 전 원내대표는 ‘청년일자리 도둑질 서울시, 고용세습 엄정수사 촉구’라는 플래카드와 함께 “우리 자식들, 청년들의 일자리를 박원순 서울시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도둑질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해결하자던 채용비리 국조, 감감무소식
정치권 대결 구도만 심화, 책임은 누가?

한국당은 난감한 모양새다. 채용비리 국조특위를 주장했지만 김 전 원내대표가 채용비리 의혹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민주당 이재정 대변인은 지난 3일 국회 정론관서 “김 전 원내대표가 자신의 딸 KT 특혜채용에 직접 관여한 의혹이 드러났다”며 “검찰 수사 과정서 2011년 당시 김 전 원내대표가 직접 딸의 계약직 지원서류를 KT 사장에게 전달했다는 진술이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변인은 “한국당은 검찰이 여론몰이 수사를 기도하고 있고, 언론이 이에 편승해 팩트 확인도 없이 보도를 일삼고 있다며 법적 조치까지 거론하고 나섰다”며 “청년 일자리를 도둑질당했다고 공공기관의 채용비리에 대한 국정조사를 주장했던 한국당이 자당 의원의 특혜채용 비리 의혹에는 감싸기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채용비리 국조특위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까닭은 채용비리 이외의 국정조사와 무관하지 않다. 이른바 ‘손혜원 국정조사’가 대표적이다. 무소속 손혜원 의원은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이 일자 민주당을 탈당했다. 한국당 및 바미당 등 야당은 관련 의혹이 불거지면서 손 의원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여야는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는 형국이다.

여야는 지난달 4일, 3월 임시국회 개회 합의 당시 손 의원의 국정조사 여부를 두고 첨예하게 맞붙었다. 당시 홍 원내대표는 “손 의원의 국정조사 등에 대해선 조율이 되지 않았다”며 “정쟁을 위해 손 의원을 표적으로 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 손혜원 무소속 의원

반면 손 의원의 국정조사를 강하게 촉구한 나 원내대표는 “여당에게 최소한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기회를 줬지만 끝끝내 발로 걷어찼다”고 일갈했다.

최근까지 정국이 살얼음판을 걷는 가운데 손 의원에 대한 국정조사 논쟁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지난 3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은 손 의원과 관련된 목포 부동산 거래 내역을 모두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검찰의 수사 방향에 따라 손 의원의 국정조사 여부는 정국의 핵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채용비리 국조특위 역시 동력을 상실할 공산이 크다.

일각에선 국정조사를 정치권의 이슈몰이용 도구로 평가한다. 여야가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해 국정조사를 이용한다는 해석이다. 특정 사안을 중앙 이슈로 부상시키고 여야가 첨예한 대결을 펼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회의 시계도 함께 멈춰선다. 국회는 4월을 관통하고 있지만 올해 본회의는 9차례에 그쳤다.

살얼음판

정치권 관계자는 “국정조사는 여론의 관심이 큰 사안을 두고 진행되는 만큼 정치권의 존재감 다툼이 치열하다”며 “국정조사가 꼭 필요할 때도 있지만 정쟁을 목적으로 두고 있는 경우도 더러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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