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박민우 기자] 야권 대선주자들이 ‘문재인 때리기’ 수위를 높이고 있다. 노골적인 비난이 계속되면서 ‘1대 다자’ 구도로 판이 돌아가는 모양새다. 문 캠프 측은 무대응 전략이다. 반격은커녕 꿈쩍도 않는다. 작정하고 때리는 쪽이나 모르쇠 맞는 쪽이나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 앞서 대선 출마를 선언한 조경태 의원이 마이크 앞에 섰다. 그리고 대놓고 문재인 상임고문을 까기(?) 시작했다. 주제부터 ‘문재인이 대통령이 될 수 없는 5가지 이유’였다. 조 의원은 문 고문의 ▲자질 부족 ▲경쟁력 문제 ▲기회주의 ▲패권주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책임 등을 거론했다.
십자포화 시작
조 의원은 “문 고문의 국정운영 경험은 청와대 근무밖에 없어 대통령 후보로서 최소한의 자질이 없다”며 “이번 부산 총선에서 결과적으로 박근혜 전 위원장에게 패했기 때문에 경쟁력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이 문 고문에게 부산시장 선거 출마를 부탁했지만 거절했다. 여건이 좋지 않을 때는 피하다가 좋을 때 과실을 탐내는 게 기회주의 아닌가”라며 “부산 친노의 패권주의적 공천의 중심에 문 고문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노 전 대통령 비극의 출발은 친인척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있다”며 “당시 친인척 관리 책임은 민정라인에 있었고 민정라인의 책임자는 문 고문이었다”고 강조했다.
야권 대선주자들의 ‘문재인 때리기’가 시작됐다. 그 수위가 아슬아슬할 정도다. 노골적이고 원색적인 비난이 계속되면서 ‘1대 다자’구도로 판이 돌아가는 모양새다.
문 고문 비판에 가장 적극적인 야권 대선주자는 손학규 상임고문이다. 손 고문은 연일 ‘문재인 필패론’을 외치고 있다. 손 고문은 먼저 한 라디오에 출연해 “대통령과 비서는 다르다”고 문 고문을 깎아내리더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승리할 수 없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방식이 이번에도 또 통하지 않는다”, “한 번 물레방아를 돌린 물은 물레방아를 다시 돌릴 수 없다”등의 비난을 퍼부었다. 각종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발언 수위를 점차 높이고 있는 손 고문은 급기야 “문재인은 안 된다”는 ‘불가론’까지 꺼내들었다.
정세균 상임고문도 문 고문을 타깃으로 공격의 날을 세우고 있다. 정 고문은 한 토론회에서 ‘자신이 시대정신에 가장 부합하다’고 밝힌 문 고문을 겨냥해 “내가 더 낫다”고 반박했다. 또 라디오에 출연해 “문 고문은 한 국가를 책임지기에는 부족한 부분도 있다”고 쏘아붙이는가 하면 문 고문이 주장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공동정부’추진에 대해 “단일화만 되면 모든 게 잘 될 것이라고 하는 자세를 가진다면 수권정당답지 못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야권 대선주자들 연일 노골적 ‘문 때리기’
2강 구도 효과 노림수에 무대응 전략 일관
야권 내에서 대선 실전을 방불케 하는 ‘무시무시’한 독설이 유독 문 고문에 쏟아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문 고문이 지지율에서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참 뒤쳐진 야권 대선주자들의 1차 공격 포인트가 문 고문인 셈이다. 앞서가는 문 고문을 주저앉혀야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서 유리하다는 공통된 계산이 깔려있다.
실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6월 셋째주 주간집계에 따르면 차기 대선후보 다자구도에서 문 고문은 15.1%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나머지 야권 후보들은 5%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손 고문은 3.9%, 김 지사는 3.3%, 정 고문은 1.2%에 불과하다. 리얼미터의 지난달 25, 26일 조사에서 조 의원은 1.2%의 지지율을 얻었다.
민주당 표밭인 호남에서도 문 고문이 1위다. 리서치뷰가 최근 발표한 범야권의 대선후보 적합도를 보면 문 고문(25.3%), 손 고문(14.6%), 김 지사(7.5%), 정 고문(1.7%), 조 의원(0.2%) 순이었다.
당내 지지도 역시 마찬가지다. 국가비전연구소와 타임리서치가 지난달 7일 공개한 ‘민주당 전국대의원 대상 여론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민주당 대의원들은 당내 대선주자 가운데 문 고문(24.4%)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손 고문(22.8%), 김 지사(20.7%), 정 고문(7.9%)이 그 뒤를 이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문 고문을 집중적으로 겨냥하는 야권 대선주자들은 모두 문 고문과 대립각을 세워 지지율을 반등시키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며 “선두주자와 치열하게 치고받다 보면 2강 구도로 비춰지는 효과가 있어 싸움을 일부러 거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문 고문의 반응이다. 반격은커녕 꿈쩍도 않는다. ‘공격군’들의 기대와 달리 무대응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문 고문 캠프 측 인사는 “특별한 사안을 제외하고 야권 대선주자들의 공세에 직접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들의 공격 의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말려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고문도 모른 척 넘어가고 있다. 민주당 인사들의 견제가 이어지자 대변인인 유민영 전 춘추관장을 통해 강하게 항의한 안 원장과 다른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대신 당내 주자끼리 공방을 벌이지 말고 새누리당 쪽으로 포문을 돌리자고 제안했다.
문 고문은 한 토론회에서 “(야권의) 공동 목표인 정권 교체를 이루려면 새누리당 후보를 꺾어야 한다”며 “새누리당 후보에게 지지율이 뒤지는 상황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내 인사들이 아닌 박 전 위원장을 향해 직격탄을 날리기 시작했다. 문 고문은 “(박 의원은) 가난 때문에 고생하던 시기에 청와대에서 공주처럼 살았다”며 “제가 독재권력에 맞서 싸우던 시기에 독재권력의 핵심에 있었다”고 비꼬았다. 박 전 위원장의 높은 지지율에 대해선 “야권 단일 주자가 되면 압도할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1대 다자'구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권 주자들의 ‘문재인 때리기’는 좀처럼 멈추지 않고 있다. 오히려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 와중에 김두관 경남도지사와 정동영 상임고문, 박준영 전남지사, 김영환 의원 등도 조만간 대권 레이스에 합류할 태세다. 민주당은 9월 말까지 대선후보를 확정할 예정. 그때까지 십자포화를 맞을 게 뻔한 문 고문이 지금과 같은 스탠스를 유지할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