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125)조문

2019.03.19 09:31:45 호수 1210호

김유신 평양성으로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지소부인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유신은 주안상이 차려지자 두 아들을 그 앞에 자리하도록 했다. 

“삼광아.”

“네 아버지.”

“지금부터 이 아비 말을 잘 듣거라. 원술이도 같이.”

유신이 일전에 고구려 영토에 들어갔다가 퇴로가 막혔던 일, 그리고 연개소문을 만났던 일을 상세하게 이야기했다.


그를 듣는 지소부인, 삼광과 원술은 차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순간순간 표정이 변화되었다.

고구려의 운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동안 가슴속에 묻어두었는데. 지금 저 별이 떨어진 모습을 보니 연개소문 대감이 운명을 달리한 듯 보이오.”

“그런데 왜 저쪽으로.”

“그러게 말이오. 나도 이해되지 않는구려.”

“여하튼 연개소문이 돌아가셨다면…….”

“고구려의 운이 다했다는 이야기지요. 이제 당나라 놈들이 본격적으로 고구려를 공략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유신이 잠시 하늘을 바라보다 지소부인과 아들들의 얼굴을 주시했다.


“내 한번 다녀오리다.” 

“고구려에요!”

삼광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 아비가 평양성에 다녀와야겠구나.”

“위험하지 않으시겠어요?”

“방금 이 아비가 말한 걸 벌써 잊은 게냐?”

“그래도.”

“삼광아.”

“네 아버지.”


“여하한 경우라도 사람을 해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단다. 특히 조문 사절은 절대 해하면 안 되지.”

“그야 그렇지요.”

대신 답한 지소부인이 근심스런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오, 부인.”

“조정에 장군을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러지요.”

“그 부분은 부인이 맡아주시오.”

“그래요, 오라버니를 만나 장군의 입장을 전하겠어요.”

“그러면 소자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유신과 지소부인의 대화를 듣던 삼광이 끼어들었다.

“그냥 조용히 다녀오련다. 행차가 거창하면 말들이 많아질 수 있으니 그저 하인이나 대동하고 다녀오련다.”

김유신이 하인을 대동하고 국경을 넘어 고구려 영토로 들어갔다.

가까운 초소를 찾아 자신의 신분과 국경을 넘어선 이유를 밝혔다.

일전에 보았던 연개소문의 아들 남건을 만나려 한다고 설명하자 호위를 삼엄하게 하고 평양성으로 안내했다.

평양성에서 신라의 김유신이 자신을 만나기 위해 국경을 넘었다는 이야기를 접한 남건이 성 밖 멀리까지 나와 유신을 마중했다.

“대장군, 어서 오십시오.”

“오랜만이오, 장군.”

맞이하는 남건의 손을 잡으며 자세히 살펴보았다. 상을 당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를 살피며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시는지요, 대장군.”

“내가 뭔가 오해했던 모양이오.”

“일단 성으로 들어가시지요.”

남건의 안내로 성에 들자 주변은 조금도 소요 없이, 평상시와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어 평양성의 연개소문 집무실로 들자 고문을 위시한 고구려의 여러 장군들과 남생, 남산이 신라의 노회한 대장군을 영접했다.

“연개소문 대감은?”

다음 말은 차마 이을 수 없었다.

“아버지께서는 잠시 여행 중이십니다.”

“여행이라니요?”

“스님 한 분과 함께 당나라로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당나라로 말입니까!”

김유신의 목소리가 절로 올라가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갈피를 잡지 못했다.

“대장군, 왜 그러시는지요?”

남생이 다급하게 나섰다.

“이런 말씀 드려도 될는지 모르겠소.”

“주저 마시고 말씀해주세요.”

남생의 표정에 불길한 기운이 스쳐지나 갔다.

“경주를 떠나기 전날 밤에 별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의 목으로 마른침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별이 이곳이 아닌 당나라 수도가 있는 장안으로 떨어졌다오.”

“그러면 아버지께서!”

유신이 말을 마치자 남생과 남건뿐만 아니라 모두 경악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연유로 대장군께서 아버지 조문을 겸해 방문하셨다는 말씀이십니까.”

“분명 그 별은 연개소문 대감의 별이었소만.”

“대장군, 실은.”

김, 연개소문의 아들을 만나다
연, 죽어서 당나라를 점령하다

남생이 입을 열다가 모두에게 시선을 주었다.

“말해보시오, 장군.”

고문이 급히 말을 이었다.

“며칠 전 꿈에 저 역시 그와 비슷한 꿈을 꾸었는데…….”  

“무슨 꿈이었소?”

“아버지께서 당나라의 고종을 무릎 꿇리고 엄히 문초하는 꿈이었습니다.”

남생의 이야기에 모두의 얼굴이 근심 그 자체로 변해갔고 여기저기서 자신들 역시 이상한 꿈을 꾸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이어 무거운 침묵이 이어지기를 잠시, 밖에서 한 스님이 남생을 찾는다는 전갈이 전해졌다.

남생이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문제의 스님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의 상황을 살피던 스님이 가볍게 합장하고 온사문이 전하라 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연개소이 당의 수도인 장안과 멀지 않은 곳에서 돌아가셨고 유언에 따라 화장해서 당나라 장안성에 재를 뿌렸다는 내용이었다.

스님의 이야기가 끝나자 연개소문의 집무실은 일시에 통곡의 바다로 변했다.

잠시 후 유신이 아들들, 특히 남건을 위로하며 손을 이끌었다.

“역시 아버님은 영웅이십니다.”

“대장군, 아버지의 진정이 무엇입니까?”

“결국 소원대로 당나라를 정복하신 게지요.”

“물론 그 부분은 인정합니다만 굳이 이곳이 아닌 당나라에 뼈를 묻으신 그 사유 말입니다. 자식으로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난감하기 그지없습니다.”    

“생전에 별다른 말씀은 주시지 않았습니까?”

유신의 말에 남건이 잠시 생각에 잠겨들었다.

“그저.”

남건이 말을 하다 말고 차마 다음 말은 잇지 못하겠다는 듯 유신을 주시했다.

“여하튼 지금부터 각별히 준비해야 합니다. 당나라에서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사실을 반드시 알 터이고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고구려를 침공할 게요.”

“당연히 그리할 테지요. 그렇다고 선선히 그들에게 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장군의 의지는 알고 있소. 그러나 실제 상황에서는 그리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기둥의 부재

“특히라니요?”

“연개소문 막리지란 커다란 기둥이 있고 없고 차이가 금방 드러날 것입니다.”

남건이 가볍게 신음을 토했다.

“연개소문 막리지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 고구려 군은 급격하게 와해되고 이전처럼 당나라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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