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가리고 아웅’ 검찰 수사 ‘돈 봉투 사건’ 의혹 넷

2012.02.27 10:59:18 호수 0호

‘선배’라 봐줬나? ‘여당’이라서 봐줬나? “아님 뭔가 켕겨서…”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요즘 검찰은 ‘정치검찰’이라는 숱한 비판에도 눈 하나 꿈적 않는 모양새다. ‘돈 봉투’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속속 드러나는 살포 정황과 잇따른 증언에도 '피라미'만 잡고 ‘대어’들은 불구속 기소로 사건을 서둘러 마무리 지었다. 금권정치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며 세간의 시선이 쏠려있음에도 어김없이 뚝심(?)을 발휘한 것. 변죽만 울리다 종결된 검찰수사에 의혹만 더욱 증폭된 양상이다. 권력 앞에서 부러진 칼날 탓에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들을 짚어봤다.

이른바 ‘고승덕 폭로’로 정국을 뒤흔들었던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지난 21일 마무리됐다. 새해 벽두 새누리당이 수사의뢰서를 제출해 사건이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에 배당된 지 48일만이다.



고승덕 의원은 지난달 8일 검찰에 직접 출두해 “2008년 7월 전당대회 2∼3일 전에 의원실로 현금 300만원이 든 돈 봉투가 전달됐으며, 봉투 안에는 박희태라고 적힌 명함이 들어있었다”고 폭로했다.

여기에 박희태 전 의장의 전 비서 고명진씨가 지난 9일 한 언론사에 ‘고백문’을 보내며 돈 봉투 살포에 대한 확인사살까지 이어갔다. 하지만 검찰은 눈앞의 몸통을 제대로 지목도 못한 채 ‘허당’에 가까운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되레 의혹만 증폭시키는 양상이다.

‘배달꾼’ 안병용만 구속
검찰, 윗선 봐주기 논란

검찰은 지난 21일 그간 ‘윗선’으로 지목된 박 전 의장과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 조정만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을 정당법 50조(당대표경선등의 매수 및 이해유도죄) 위반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박 전 의장과 김 전 수석이 법적·도덕적 책임을 지고 모두 공직을 사퇴한 점을 고려해 사법처리 방향을 결정했다는 입장이다.

서울중앙지검 정점식 2차장검사는 “전대 직전 고승덕 의원실에 전달된 300만원은 박 전 의장 측에서 나온 돈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정 차장은 하지만 안병용 새누리당 서울 은평갑 당협위원장을 통해 구의원들에게 건너간 현금 2000만원에 대해 “박 전 의장의 관여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범죄사실에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의혹 1. 정황증거에도 돈 봉투 받아먹은 인물 단 한명도 못 찾아
의혹 2. 돈 봉투 살포한 ‘뿔테남’ 곽씨 외 검은돈 배달꾼 없었나?

검찰은 이봉건 국회의장 정무수석비서관과 돈 봉투 살포과정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박 전 의장의 비서 고씨에 대해서는 사건 개입 정도가 미미하다고 판단해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달랑 ‘검은돈 배달꾼’에 불과한 안 위원장만 구속 기소 된 채로 사건은 서둘러 매듭지어졌다.

정 차장은 “검찰총장의 말씀에 따르면 환부를 도려내는 스마트한 수사, 국민적 관심 사안을 신속히 종결 처리했다”고 자평했다. 또 현직 국회의장 기소는 헌정 사상 처음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결과에 비판 여론이 빗발치는 실정이다. 정황상 상당한 개연성과 증언들이 있었음에도 핵심인물들에 대해 불구속 기소에 그치며 ‘윗선 봐주기’라는 비판이 들끓고 있다. 검찰이 윗선들의 솜방망이 처벌에 ‘공직사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반영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고위 공직자의 부적절한 처신에 엄격한 법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검찰은 윗선들 모두가 자유로운 상태에서 재판을 받으며 ‘입맞춤’의 빌미까지 제공했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돈 봉투 지시자인 ‘몸통’은 제대로 지목하지 못한 채 배달꾼에 불과한 안 위원장만 구속함으로써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점도 비판 대상이다.

이처럼 ‘속빈 강정’이 따로 없는 검찰의 수사결과에 의혹만 더욱더 무성해진 모양새다. 먼저 고 의원 외에 돈 봉투를 받은 인물은 단 한 명도 찾아내지 못한 점이 가장 큰 의혹의 대상이다.

힘들게 잡은 핵심인물
‘뿔테남’ 곽씨 부실수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도 유분수’란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지난 2008년 당시 친이계로 분류된 새누리당 의원이 100여 명에 육박했던 점을 고려하면 박 의장 캠프에서 고 의원 한 사람에게만 돈 봉투를 전했을 리 만무하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검찰은 고 의원에 전달된 돈 봉투 300만원과 안 위원장이 살포를 지시한 2000만원 외에 다른 돈 봉투의 존재를 전혀 찾아내지 못한 것. 일반인들이 보더라도 다른 의원실에 돈 봉투가 뿌려졌을 것으로 볼만한 정황증거는 한 둘이 아니다.

‘뿔테남’ 곽씨에게서 돈 봉투를 직접 받은 고 의원의 전 여비서 이모씨는 쇼핑백에 같은 봉투가 여럿 들었었다고 진술했다. 앞서 고 의원은 기자회견 당시 “자신이 받은 돈 봉투와 비슷한 노란색 봉투가 잔뜩 있었다”고 말해 더 많은 검은돈이 오갔을 가능성을 열어뒀다.


게다가 안 위원장에게서 돈 봉투 살포를 지시받은 한 구의원이 순번이 매겨진 당협위원장 명단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19번부터 49번까지 돈 봉투를 전달하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1~18번은 다른 누군가가 전달했을 것이다”고 폭로했다.

박 전 의장 자신도 “약간 법의 범위를 벗어난 여러 관행이 있었던 게 사실이며, 많은 사람을 한곳에 모아야 하므로 다소 비용이 든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같은 정황에도 검찰은 “다른 의원들에게도 전달됐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곽씨도 기억나지 않는다”며 직접적 증거나 진술이 없는 한 실제 수사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입장만 강조했다. 스마트한 수사를 했다고 강조했지만 결국 관련자들 ‘입’만 쳐다본 수사라는 점을 자인한 셈이다.

곽씨 외에 다른 돈 봉투 배달꾼이 있었는지도 풀리지 못한 대목이다. 다수 의원들을 대상으로 짧은 시간 안에 돈 봉투를 돌려야 했다면 분명히 다른 전달자들이 있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새누리당 의원실 한 관계자는 곽씨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300만원이 든 돈 봉투를 받아 자신의 의원에게 전달했다고 언론에 털어놓기도 했다.

게다가 검찰은 어렵게 곽씨의 정체를 밝혀냈지만 조사는 단 한 번, 그것도 3시간에 그쳤다. 진술서를 확인하는 시간 등을 빼면 검찰이 곽씨를 겨우 2시간 남짓 조사한 셈이다. 진술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인정한 검찰이 정작 핵심인물인 곽씨에 대해 부실한 수사진행으로 의혹을 키운 꼴이다.

검찰이 ‘검은돈’에 대한 자금출처와 자금 조성 인물에 대해서도 밝혀내지 못한 점도 의문이다. 박 전 의장의 마이너스통장 1억5000만원, 라미드그룹 수임료라는 2억원 등이 드러났지만 검찰은 실체를 규명하지 못한 상태다.

검찰은 박 전 의장이 2008년 7월 1일과 2일 자신의 하나은행 마이너스통장에서 인출한 1억5000만원 중 일부가 고 의원실에 전달된 것으로 보고 있다. 고 의원실에 전달된 300만원이 하나은행 띠지로 100만원씩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 위원장이 구의원들에게 전달한 2000만원의 경우 끝내 출처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다. 검찰은 안 위원장 등 관련자들 모두 전달사실 자체를 극구 부인해 밝혀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검찰이 핵심 관련자들에게 증거인멸의 시간을 줬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박 전 의장의 전 비서 고씨는 한 언론사에 투척한 ‘고백문’을 통해 “진실을 감추기 위해 시작된 거짓말이 하루하루 들불처럼 번져 나가고, 이로 인해 이 사건과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까지 허위진술을 강요받는 상황을 지켜보면서…”라고 썼다. 검찰 조사과정에서 압력에 의해 허위진술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의혹 3. 스마트·스피드 수사 자평한 검찰 검은 돈 조성배경 못 밝혀
의혹 4. 친절한 검찰 ‘윗선’에게 증거인멸과 입 맞추기 시간 줬나?

이러한 고씨의 고백이 나온 일주일 뒤에라야 검찰은 비로소 김 전 수석을 소환조사했다. 게다가 ‘박희태 캠프’의 재정·조직 담당자였던 조 정책비서관이 고씨에 대한 검찰수사가 시작된 시점에서 고씨를 접촉하고, 해외순방 중이던 박 전 의장 측과 여러 차례 국제통화를 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다.

이처럼 꾸준히 ‘말맞추기’를 하려했다는 정황이 속속 포착됐음에도 이들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기는 것이 합당한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증거인멸ㆍ입맞춤 시간
제공한 ‘친절한 검찰’?

이 같은 수사결과에 야당의 비판도 거세다. 신경민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지난 21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이명박·새누리당 정권의 정치검찰에 더 이상 어떤 기대도 할 수 없다는 점이 백일하에 드러났다”며 “수사팀이 국회의장 공관으로 ‘출장수사’를 가서 ‘의장님’이라고 호칭하는 수사가 제대로 된 수사였을 리 없다”고 맹공했다.

문정림 자유선진당 대변인도 “검찰의 윗선 봐주기라는 의혹을 피해가기 어렵다”며 “법정에서 돈 봉투 살포의 규모, 출처, 사용처 등이 명백히 밝혀져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노회찬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갈 때까지 간 막장검찰의 고의적 직무유기를 개탄한다”며 성토했다.

정치권 돈 봉투 살포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임을 고려하면 검찰의 수사결과가 초등학생도 납득하지 못할 정도로 맹탕이라는 비판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수사결과가 부실한 까닭에 대해 한상대 검찰총장-최교일 서울중앙지검장-이상호 공안1부장이 김 전 수석과 같은 고려대 출신이기에 예견된 결과였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검찰이 돈 봉투 살포에 대한 의혹을 뿌리 뽑지 못한 채 이제 공은 사법부로 넘어간 상태다. 법정에서 명명백백히 시시비비가 가려져 금권정치라는 정치권의 악습을 끓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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