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파 사라진 국회의 현실

2018.09.10 11:19:43 호수 1183호

돌고 돌아 도로 10년 전으로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모두들 ‘개혁’과 ‘혁신’을 외칠 때 정치권은 ‘안정’을 선택했다. 손학규가 지난 2일,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당 대표로 당선되면서 65세 이상 ‘올드보이’ 네 명이 네 개 주요 정당을 이끌게 됐다. 정치개혁을 이끌던 소장파는 정치권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올드보이들 전성시대다. 첫 테이프는 민주평화당(이하 민평당) 정동영 대표가 끊었다. 지난달 5일 서울 여의도 K-BIZ 중소기업중앙회 그랜드홀서 열린 민평당 전국당원대표자대회(이하 전대)서 정 대표는 유성엽·최경환·민영삼·허영 당시 후보를 누르고 당권을 거머쥐었다.

당권 장악

뒤를 이어 이해찬 대표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당권을 차지했다. 지난달 25일 서울 잠실 올림픽체육관서 열린 민주당 전대에선 이 대표가 송영길·김진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지난 2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서 열린 바미당 전대에선 손학규 대표가 하태경·정운천·김영환·이준석·권은희 후보를 제치고 당대표로 선출됐다. 

여기에 지난 7월17일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으로 취임한 김병준 위원장까지 합치면 네 명의 올드보이가 원내 1·2·3·4당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모두 65세가 넘는다. 손 대표가 72세로 가장 나이가 많으며, 이 대표가 67세, 정 대표가 66세, 김 위원장이 65세로 뒤를 잇는다. 국회의원을 한 적이 없는 김 위원장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명의 선수만 합쳐도 15선이다. 이 대표는 7선, 손학규·정동영 대표는 각각 4선을 했다.

오랜 기간 정치를 해온 만큼 이들의 인연도 연결돼있다. 이번 전대를 통해 명실상부 ‘친노(친 노무현)·친문(친 문재인)’의 좌장임을 증명한 이 대표와 건재함을 알린 손 대표, 정 대표는 지난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후보 경선을 함께 치른 바 있다. 

당시는 김 위원장이 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을 맡았던 시기였다. 경선 결과 정 대표가 최종 대통령 후보로 나섰지만, 한나라당(한국당 전신) 이명박 후보에게 패했다.

이들의 정치 경험에 의문후보를 다는 사람은 없다. 국무총리, 당 대표, 장관, 도지사 등 정·관계서 다양한 역할을 거친 백전노장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실종됐다는 비판을 받던 정치권서 서로 간에 인연이 깊은 올드보이들이 대선배로서 본받을만한 정치를 보여줄 것이라 기대한다.

반대로 올드보이 전성시대가 우리 정치의 퇴행을 상징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대에 나섰던 이해찬·손학규·정동영 대표는 이미 한 차례 이상 올드보이 논란에 대한 질문을 받은 바 있다. 

이 대표는 전대가 있기 전인 지난달 9일 기자간담회서 “올드보이의 귀환이라는 표현은 피할 수 없다고 본다”면서도 “정책 내용이나 철학에 대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면 세대교체인 것이지, 나이로만 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손 대표는 당선수락 연설서 “나이는 많지만 정치 입문 때부터 개혁을 주장했고 그런 입장엔 변화가 없다. 얼마나 개혁 의지를 가졌느냐가 올드보이냐 골드보이냐의 차이”라고 언급했다. 

정 대표는 지난달 12일 민주당 전대가 있기 전 기자간담회서 “이해찬 의원만큼 생각이 젊은 사람이 없다. 생각의 나이가 중요하다”며 우회적으로 올드보이 논란을 반박했다.

이해찬·손학규·정동영 전면 포진
올드보이들의 귀환…득이냐 실이냐

전대가 끝났음에도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올드보이가 귀환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가 눈에 띄는 젊고 유능한 정치인을 발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한 의원실 보좌진은 “당선된 사람만 나이가 많은 게 아니다”라며 “같이 선거를 치렀던 사람들도 대부분 50대 이상이다. 민주당 전대만 봐도 당대표 후보들의 나이가 50, 60, 70대였다. 이 사람들이 현재 당에서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인데, 이렇게 되면 젊은 정치인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개혁 성향의 소장파가 점차 사라지는 현 정치 상황에 대한 아쉬움이 짙게 드리운다. 30대인 한 정치인은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진 기존 정치세력으로 인해 바른 소리를 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는 “뭐 좀 바꿔보겠다고 말하면 선배들로부터 곧바로 한소리를 듣게 된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바른말을 불편해 하는 분위기가 여야를 가리지 않고 팽배해 있다는 것. 또 다른 30대 정치인은 “젊은 사람이 한마디라도 하면 싸가지 없다는 소문이 퍼진다”며 “공천 얘기까지 나오면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때 정치권에선 소장파 정치인들의 전성시대가 있었다. 보수 진영에서는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 진보 진영에서는 이인영 등 386(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생인 세대)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 대표적이다.

남원정이 국회에 발을 들인 시점은 18년 전인 지난 16대 국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남원정은 한나라당 소장파들이 주축이 돼 설립된 미래연대의 지휘봉을 잡으며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을 쓴 한나라당에선 개혁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이회창 전 총재 측근들을 주축으로 하는 주류와 소장파들이 중심이 된 비주류가 부딪혔다. 이때 남원정이 개혁과 세대교체를 강하게 요구하면서 지금의 명성을 쌓았다.

386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은 기존 정치인과는 다른 참신한 시대적 감수성을 보여 큰 주목을 받았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이인영·우상호·강기정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발탁한 이들은 지난 2000년 대거 정치권에 진출해 참여정부 때 지금의 위치로 성장했다.

세력이 중요

남원정과 386세대는 60대를 향해가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이들을 대체할 수 있을 만한 인물을 발굴해내기는커녕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마저 조성해내지 못하고 있다. 기존 정치세력의 무관심 속에 정치권서조차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문희상-김성태 설전 왜?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한 지난 5일, 때 아닌 문희상 국회의장과 설전을 벌였다. 

김 원내대표가 문 의장을 향해 “어떻게 입법부 수장께서 청와대 스피커를 자처하시나”라며 “입법부 수장으로서 품격도 상실하고 균형 감각도 상실한, 대단히 부적절한 코드 개회사였다”고 비난한 게 화근이 됐다. 

이에 문 의장은 “국회의장을 모욕하면 국회의장이 모욕당하는 게 아니라 국회가 모욕당하는 일이라는 걸 명심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받아쳤다. 

국회 본회의장은 한 때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앞서 문 의장은 정기국회 개회사에서 “국회 협치의 틀을 만들겠다”며 “촛불 혁명의 제도적 완성은 개헌과 개혁입법”이라고 밝힌 바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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