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런던산책

2008.11.25 09:47:37 호수 0호

요즘 해외 도시를 여행하는 방식에 있어선 자기만의 테마를 찾아가는 것이 대세다. 꼭 가보고 와야 한다는 도시 명물들을 모조리 정복하는 일보다 자신의 기호에 맞는 즐거움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경험자들이 입을 모으는 까닭이다.
영국의 대표도시 런던에도 새로운 테마여행의 깃발이 꽂혔다. 런던에서 반여행자 반생활인으로 살았던 <런던산책>의 저자 박영자가 도시 구석구석을 누비며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기존의 가이드북에서는 찾을 수 없는 참신한 도시 산책로 열 개를 개척해 소개한다. 남다른 행보로 좀 더 쿨하게 런던을 즐기고 싶었으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대영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피카디리 광장, 웨스트민스터 사원, 빅벤 등 소위 교과서적인 명물뿐이었던 이들에게 반가운 낭보다.
영국의 대표도시이지만 어느새 국적이 모호한 국제도시가 된 런던에서 저자는 진짜 영국다운 모습을 찾고 싶어 거리를 누볐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다닌 것은 아니고 현대적이고 복잡한 것보다 오래된 것, 느린 것에 애정이 가는 그녀의 취향이 길잡이 역할을 했다. 그렇게 해서 엮인 도시 산책의 테마가 앤티크, 마켓, 가든. 저자는 그녀만의 산책로 위에서 만난 오래된 가게들과, 멋스럽게 시간의 때를 묻힌 물건들을 파는 시장, 그리고 시간을 되새김질하는 듯 여유로운 분위기의 공원들을 하나하나 직접 사진을 찍고 글을 적어 책 한 권에 담았다.
런던산책에 동참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저자는 몇 가지 ‘런던산책 즐기는 법’을 제시한다. 우선 가이드북을 내려놓을 것. 여기는 꼭 가봐야 한다는 식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면 그때야 소소하지만 흥미로운 볼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이 몰리는 번화한 거리를 벗어나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와 걷는 것도 또 다른 방법이다. 그렇게 다니다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같은 장소를 시간과 장소를 달리해 다시 찾아가보기도 하자. 처음에 느끼지 못한 새로운 풍광을 발견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영국 문화를 이해하려는 사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국제도시가 되어버린 런던에서 영국적인 것을 발견하려면 영국다운 것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할 테다. 이런 조건은 그녀가 런던산책로를 발견하게 된 방법이기도 하다. 런던 유명 관광지를 전부 자기 얼굴 나오는 사진 배경으로 놓고 싶은 욕심만 버린다면 <런던산책>이 제안하는 여정은 매우 구미당기는 대안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열 개의 산책로는 런던 중심가를 넘어 외곽까지 꽤 넓은 지역을 아우르며 자리 잡고 있는데, 햄스테드, 첼시, 켄싱턴, 이슬링턴, 소호, 치즈윅, 이스트 앤드, 윔블던, 템즈 강변, 그리니치 등을 포함한다.
각 산책로에는 수백년의 역사를 지닌 펍, 고서적이 즐비한 헌책방, 앤티크 그릇 상점, 앤티크 가구점 등, 영국의 고풍스런 분위기를 물씬 느끼게 해주는 공간들도 있고, 온갖 잡동사니가 다 모이는 버몬지 앤티크 마켓, 런던 최대 앤티크 시장인 포토벨로 마켓, 150년 전통의 채플 마켓 등 ‘낡음’을 ‘가치’로 아는 사람들이 모인 마켓의 풍경도 있다. 영국인들의 국민적 정서가 드러나는 가드닝 숍이나 촉박한 마음을 달래주는 평화로운 공원과 정원 등도 보여 산책길을 더욱 호젓하게 한다.
이 책에는 7~8개의 장소들이 하나의 산책로로 묶여 하나의 장을 이루는데, 각 장소별로 다양한 모습을 찍은 컬러 사진이 빽빽이 구성되어 있어 대단한 상상력이 없이도 공간의 느낌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또한 각 장에는 손으로 그린 예쁜 산책로 지도가 친절하게 마련되어 있다. 각 장을 한 장씩 넘기다 보면 런던의 이모저모를 담은 ‘리포트’도 중간중간 발견할 수 있다. 전국에서 클래식 자동차들이 모이는 ‘베테랑 자동차 달리기’ 행사나 카부트 세일 등 소소하지만 흥미로운 정보를 소개한다. 저자가 런던에 살며 만난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워낙 분명한 테마를 갖고 있는 책답게 소개되는 사람들도 책의 테마와 자연스레 연결되어 있다.

박영자 저/ 한길사 펴냄/ 1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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