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노의 남자들 아귀다툼

2018.08.20 10:37:35 호수 1180호

여의도가 온통 노란색으로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선거제도 개혁이 9월 정기국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 최근 민주평화당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된 정동영 대표는 선거제도 개혁의 불씨를 키우는 모양새다. 이에 야당은 화답하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은 새로 선출될 당 대표에 따라 보다 명확한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던 인사들이 저마다 당 전면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선거제 이슈가 정국의 핵으로 부상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 5일 민주평화당(이하 평화당)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된 정동영 대표는 선거제도 개혁의 고삐를 당겼다. 정 대표는 취임 일주일 뒤 열린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서 “목숨 걸고 선거제도를 바꿀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어 정 대표는 “정기 국회가 넘어가면 선거제도 개혁은 물 건너 간다”며 사실상 개혁 시기를 9월 정기국회로 못 박았다.

선거제 개혁
9월 정기국회로

정 대표가 제안한 선거제 개편은 갑작스럽지 않다. 선거제 개혁은 국회를 비롯한 여러 갈래서 지속적으로 제기된 문제다. 특히 선거제 이슈는 20대 국회 전반기부터 개헌과 함께 동력을 얻기 시작했다. 개헌은 권력구조 개편을 골자로 한다. 선거제 개혁 역시 그 궤를 같이 한다.

선거제 개편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핵심으로 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전체 의석수를 확정하는 방식이다. 이후 지역구 의석과 전국구 의석을 결정한다. 지역구 의석은 현행 방식대로 결정되고 나머지 의석은 배분된다. 

예를 들어 한 정당이 10%의 지지율을 얻었다면 30석이 배분된다. 해당 정당이 지역구서 10석을 획득했다면 나머지 20석은 비례대표제로 보완된다.


사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어 민의를 더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군소정당들의 국회 입성이 원활해질 공산이 크다. 현행 소선거구제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정 대표 역시 소선거구제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전환하고자 한다.

정 대표가 선거제 개편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피자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은 이에 화답하는 모양새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역시 긍정적이다.

바미당 김관영 원내대표는는 지난달 선거제 개혁과 개헌을 연동해 영수회담을 제안했다. 이어 김 원내대표는 지난 16일, 국회서 열린 원내정책회의에 참석해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은 시대적 책무”라고 밝혔다. 바미당의 선거제 개편 입장은 다음달 2일 선출될 새 당 대표를 통해 선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바미당 전당대회 예비경선을 통과한 후보들 중 몇몇은 공식적으로 선거제 개편을 주장하고 있다. 김영환 후보는 지난 5일, 국회 정론관서 “선거제도 개혁에 사활을 걸겠다”고 강조했다. 정운천 후보 역시 지난 7일,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을 열고 “소선거구제 개편 등 정치제도 개혁을 통해 진정한 동서화합의 미래를 열어가겠다”고 밝혔다.

바미당 전당대회에서 가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손학규 후보도 선거제 개혁에 적극적이다. 손 후보는 지난 8일 국회 기자회견서 “선거제도를 비롯한 잘못된 정치제도를 바꾸겠다는 것이 손학규의 마지막 소명”이라고 호소했다.

정동영 연일 선거제 개혁 띄우기
김병준 “선거구제 이야기 가능”

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하 김 위원장)도 선거제 개편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뒀다. 김 위원장은 지난 8일 한국당 비대위원장실을 예방한 정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정 대표는 “김 위원장의 한국당과 평화당이 선거제도 개혁의 우군이 됐으면 좋겠다”며 선거제 개편을 위한 연대를 제안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선거구제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 룸을 열어뒀다”며 긍정적 의사를 밝혔다. 정 대표는 제1야당까지 우군으로 확보해 놓은 셈이다.

애당초 한국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함께 거대 양당의 축으로 자리하면서 선거구제 개편에 소극적이었다. 소선거구제 개편은 현행 의석수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한국당이 전향적으로 입장을 선회한 까닭은 지난 6·13지방선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지방선거 결과
한국당도 다급


한국당은 지난 6월 지방선거서 민주당에게 완패했다. 지방선거의 꽃이라 불리는 광역단체장 선거는 결정적이었다. 한국당은 보수텃밭이라 불리는 대구와 경북 단 두 곳서 승리했다. 겨우 체면치레한 셈이다.

한국당의 지방선거 참패는 오는 2020년 시행되는 21대 총선과 결부지어 볼 수 있다. 소위 지방선거는 정부와 정당의 중간평가로 여겨진다. 한국당이 이전과 달리 선거제도 개편에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지방선거 이후 당 내외에서 제기되는 위기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정의당도 선거제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정의당 최석 대변인은 지난 7일 오전 국회 정론관 브리핑을 통해 “민의를 제대로 담보하는 선거제도 개혁은 이미 시대정신으로 자리매김했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이날 오후 정의당을 예방해 이정미 대표를 만나 선거제 개편과 관련해 협력을 촉구했다.

다만 정 대표는 민주당을 예방해 추미애 대표(이하 추 대표)를  만나는 과정서 실망감을 드러냈다. 추 대표가 선거제 개편과 관련해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지난 10일 KBS 라디오 <최강욱의 최강시사>와의 전화 인터뷰서 “민주당 추 대표와 한국당 김 위원장을 만나 똑같이 (선거제 개편을) 강조했지만 추 대표가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좀 답답하다”고 털어놨다.

민주당은 선거제 개편 논의를 좌우할 수 있는 입지를 지니고 있다. 집권 여당인 데다 정당 지지도가 여타 정당에 비해 압도적이다. 지난 6월 지방선거서도 ‘싹쓸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압승했다. 당 내외에선 21대 총선 전망도 지방선거 결과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 보고 있다.

민주당은 현행 의석수와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선거제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설지 확실치 않다.

그러나 민주당은 선거제 논의를 전면 부정하고 있지 않다. 최근 여야 5당은 회동을 통해 올해 안에 선거제 개혁을 이뤄내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여야 5당은 지난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다당제 민주주의와 선거제도 개혁’ 토론회서 뜻을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민주당 박병석 의원은 “정당들이 많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면서도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혁을 마련할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선거제 개편에 뜻을 함께 했다.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정 대표가 선거제 개혁의 당론 채택 여부에 대해 묻자 “문제없다”며 한국당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정 대표는 선거제와 함께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여야 모두 원론적인 입장에서부터 적극적인 화답에 이르기까지 동행의 뜻을 밝히고 있다. 최근 평화당 전당대회에 이어 민주당과 바미당도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다. 

민주당과 바미당은 각각 오는 25일과 다음달 2일 전당대회를 개최한다. 선거제 이슈가 힘을 이어간다면 각 당 수장들의 입장 표명이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민주당은 이해찬·김진표·송영길 후보가 막판 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민주당 당 대표 여론조사에선 이해찬 후보(이하 이 후보)가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바미당에선 손 후보가 유력한 차기 당 대표 후보로 평가된다. 이에 타 후보들은 적극적으로 손 후보를 견제하고 있다.

최근 전당대회를 앞두고 등판한 이들을 향해 ‘노의 남자들’이 돌아왔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 후보와 김 위원장 그리고 정 대표는 모두 참여정부서 일한 경험이 있다. 손 후보 역시 정치적으로 얽혀있다. 

이들이 모두 각 당 대표로 자리한다면 ‘노의 남자들’이 당 전면에 포진하게 된다.

전대 이후
다시 재편?

이 후보는 열린우리당 창당준비위원회 창단기획단장으로 열린우리당 창단의 기틀을 닦았다. 이후 그는 참여정부에서 36대 국무총리를 지냈다.    

정 대표는 참여정부서 31대 통일부장관으로 남북문제를 책임졌다. 이후 그는 열린우리당 초대 의장을 지냈다. 열린우리당은 노 전 대통령이 창당했다. 2007년 대선 때는 노무현정부의 여당이던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로 나섰다. 정 대표는 당시 대선 후보 경선서 이 후보와 손 후보와 경쟁했다. 정 대표는 대선서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크게 패했다.

손 후보는 이듬해 대통합민주신당 대표를 맡으며 당 수습에 들어갔다. 이 후보와 손 후보가 전당대회 이후 당 대표로 선출된다면 세 사람의 운명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다.

김 위원장은 2002년 대선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였던 노 전 대통령의 정책자문단 단장을 지냈다.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분과위원회 간사위원과 대통령자문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장, 대통령 정책실장을 역임하다 7대 교육부총리에 임명됐다. 
 

그러나 취임 13일 만에 논문 표절 의혹으로 자진 사퇴했다. 네 사람 모두 참여정부 시절 정치권의 중심서 활약했다.

과거의 인연으로 얽혀있는 이들이 모두 당 대표에 안착하게 된다면 정 대표의 선거제 개혁이 어떻게 작용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선거제 개편 공론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정 대표는 민주당과 바미당의 전당대회 이후 그 행보를 더욱 넓혀갈 것으로 보인다.

전당대회 이후 선거제 개편 논의는 치열해질 가능성이 있다. 후반기 국회의장에 선출된 문희상 국회의장(이하 문 의장)은 취임 이후 개헌과 함께 선거제 개혁에 힘을 실었다.

문 의장은 지난달 18일 오전 국회 기자간담회를 통해 선거제도 개혁 의지를 드러냈다. 문 의장은 이날 “선거제도의 개편이 따르지 않는 개헌은 의미가 없다”며 “선거제도만 개편한다고 해도 역사적으로 정치개혁을 제대로 한 국회로 기록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문 의장 역시 노 전 대통령과 정치적 인연이 닿아있다는 것이다. 문 의장은 참여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이었다.

민주당·바미당 전대 후 선명해질 듯
문 의장까지 가세…개편 가능성은?

전당대회 이후 새 당 대표를 주축으로 본격적인 5당 체제가 공고히 되면서 선거제 개혁이 어떤 흐름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민주당과 바미당 전당대회서 노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얽힌 이 후보와 손 후보가 당의 전면에 나설 수 있을지 역시 관전 포인트다.

선거제 개혁은 각 당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교차하는 곳으로 꼽힌다. 정쟁의 과열이 예상된다. 게다가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둔 상황서 의석수 확보를 위한 각 정당의 움직임이 선거제 개편과 맞물려 분주해질 것으로 보인다.

바미당은 의석수로 원내 3당 자리를 꿰차고 있지만 지난 6월 지방선거서 참패했다. 바미당 소속 후보들의 99%가 낙선했고, 기초단체장 선거에선 단 한 석도 차지하지 못했다. 지방선거 이후 정계개편 시나리오의 중심에 선 것도 그 이유에서다. 

바미당은 다가올 총선을 대비하기 위해 선거제 개혁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만연하다. 유력한 차기 당 대표로 꼽히는 손 후보는 선거제 개혁을 ‘정치적 소명’이라 강조하며 만전을 기하고 있다.
 

평화당도 지난 지방선거서 한계를 보였다. 기초단체장은 5석 확보에 그쳤다. 호남서의 성과는 있었지만 외연 확장에는 실패했다. 또한 평화당은 정의당과 함께 ‘평화와 정의’라는 이름의 공동교섭단체를 결성했지만 정의당 노회찬 의원의 타계로 지위를 상실했다. 

2020 총선 결과에 따라 당의 존폐 여부가 좌우되는 상황이다. 정 대표가 평화당 대표에 취임하자마자 선거제 개혁 카드를 꺼낸 것도 당의 현재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선거제 개혁의 키는 민주당에 달려있다 봐도 큰 무리가 없다. 민주당은 연일 정당 지지율 1위를 기록하는 가운데 6월 지방선거서 압승했다. 이어 2020 총선서의 승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민주당이 선거제 개혁 논의를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는 새로 선출될 당 대표의 입장을 통해 분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개혁 어디까지
당 대표 입장은?

이 후보와 손 후보가 전당대회서 차기 당 대표로 선출된다면 노 전 대통령과 정치적 인연이 닿아 있는 이들이 4당의 수장이 된다. 정의당과 후반기 국회를 이끄는 문 의장이 선거제 개편에 적극적인 가운데 이들의 정치적 결단이 선거제 개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노무현의 숙원, 선거구제 개편 이뤄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당선 직후 선거구제 개편을 언급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선거제를 바꾸겠다”며 “중대선거구제가 아니라도 좋다. 지역구도가 깨지면 대통령 권한을 그만큼 양보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제1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노 전 대통령의 선거구제 개편 제안에 수용 불가 방침을 내세웠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대연정을 한나라당에게 제안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대연정 제안의 반대급부 내용은 선거제도를 고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노 전 대통령과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대연정 등을 논의하기 위해 회담을 가졌지만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당시 박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선거구제 개편 제안에 행정구역 개편을 역으로 제안하면서 사실상 반대의사를 표했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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