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권전략 전면수정 내막

2011.10.13 09:30:00 호수 0호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 쓰다 어쩌려고?

[일요시사=이주현 기자]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0·26 재·보궐선거를 지원하겠다”고 전격 밝혔다. 현 정부 출범 후 줄곧 이명박 대통령과 거리를 둬온 박 전 대표가 4년 만에, 심판론에 맞서는 ‘MB 프레임’ 속에서 첫 선거전에 뛰어든 것이다. 당초 내년 초 본격 대권행보를 시작할 것이라는 예상과 다른 ‘조기등판’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고집으로 불기 시작한 ‘안풍’이 박 전 대표의 대권행보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내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고 대권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애초의 전략에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내년 초 예상한 대권행보, ‘안풍’에 휩쓸려 6개월 조기 등판
정치 행보에 중대한 전환점 맞아, 신중한 ‘선거의 여왕’

10·26 재보선은 ‘미니대선’으로 불리며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결로 그 의미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는 박 전 대표에게도 마찬가지다. 스스로의 정치행보에서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고, 대권전략이 어그러져 버려 전면 수정에 나선 것이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박 전 대표는 요즘 어느 때보다 신중해 보인다.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는 자신이 지원에 나섰음에도 패한다면 이미지와 존재감에 크나큰 상처를 입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책임론에서도 자유롭지 못해 그간 지켜왔던 ‘대세론’에 더 이상 자신의 이름 석자를 달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번 선거지원에 임하는 박 전 대표로선 위험부담이 크다.

어그러져버린 대권전략
더 신중한 ‘선거의 여왕’

박 전 대표는 지난 6일 국회 기획재정위 국정감사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 정부와 여당이 잘할 수 있도록 한발 물러나 있었는데, 지금 상황은 한나라당뿐 아니라 정치 전체가 위기”라며 “모두가 힘을 모아야 되고 당과 우리 정치가 새롭게 변할 수 있도록 ‘저도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해 이번 결정을 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나경원 후보 지원을 공식 선언한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이어 “정치가 무엇보다도 국민의 삶의 질을 바꾸고 보다 나은 희망을 드려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해서 참 송구스럽게 생각을 하고 있다”며 “정치권 전체가 많이 반성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나 후보 지원 방법과 관련해선 “어떻게 지원을 할 건가, 어떻게 힘을 보탤 건가 하는 것에 대해선 아직 정해진 게 없고, 당 관계자들과 상의를 해서 결정할 것”이라며 “직책을 맡고 안 맡고 하는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힘을 보태려고 한다”고 말해 선대위원장 자리를 맡을 생각은 없음을 시사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이번 서울시장 보선을 대선 전초전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대선하고는 관계없는 선거라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한 친박계 핵심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를 포함해 전국 재·보선 지역구를 돌며 후보 유세를 자연스럽게 지원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며 박 전 대표는 ‘리베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이번 10·26 재보선이 대선의 전초전이라는 ‘미니대선론’에 대해서 박 전 대표는 “대선과 상관없는 선거”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박근혜 대 안철수’의 대선 전초전으로 흐를 가능성을 경계한 것이다. 또한 자신이 지원한 나 후보가 낙마하더라도 이를 자신과 연결 지으려는 시도를 미리 차단하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박근혜 vs 안철수’
‘박근혜 vs 문재인’

박 전 대표의 의도와는 다르게 정치권의 반응은 이번 선거가 미니대선이라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서울시장 선거는 매번 정국의 흐름을 바꿔놓는 분수령의 역할을 해왔고, 그만큼 선거를 전후해 정치적 파장도 컸다. 하지만 이번 서울시장 보선은 이전 서울시장 선거의 정치적 비중마저도 뛰어넘을 것 같다.

여론조사의 가상대결로만 이뤄지던 박풍(朴風)과 안풍(安風)의 맞대결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유동적이긴 하지만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대학원 원장이 본격적으로 박원순 후보의 선거 지원에 나서기라도 한다면 그 파괴력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이번 선거의 승패는 내년 총선과 대선의 판도를 바꿔놓을 메가톤급 영향력을 갖는 선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총선과 대선을 얼마 남겨두고 있지 않은 시점에 한나라당의 텃밭이었지만 최근 민심이반이 가속화 되고 있는 부산 동구청장 재선거 등 굵직하고도 정치적으로 상징성이 큰 지역의 선거가 있기 때문에 중량감은 더욱더 무거워지고 있다.

따라서 나 후보 개인에 대한 지원이 아닌 10·26 재보궐선거 전체를 지원하기로 나선 박 전 대표는 나 후보가 패배해 서울시장 책임론에 대한 짐을 덜진 몰라도 다른 지역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부산 동구청장 선거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신공항 무산, 저축은행 사태 등으로 흔들리고 있는 부산민심의 실체를 엿볼 수 있어 박 전 대표에게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지역으로 여겨질 듯 보인다.

“한국 정치의 위기 상황” “그동안 뭐했냐” 비난 빗발쳐
‘리베로’ 역할로 전국구 지원, ‘40:0’ 신화 다시 쓰나?


서울시장 선거가 ‘박근혜 대 안철수’라는 대선 유력주자들의 영향력을 시험해보는 무대인 반면 부산은 ‘박근혜 대 문재인’이라는 유력주자의 지원력과 영향력 대결도 주목된다.

전국적인 지원 유세를 밝힌 박 전 대표는 야권바람에 흔들리는 동구청장 선거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써, 서울시장 선거 패배 시 입을 타격을 분산하는 전략을 고려했음직하다.

두 지역 모두 승리로 이끈다면 선거의 여왕 이미지를 더욱더 확고히 함은 물론이고 안철수, 문재인 등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와의 격차를 벌리며 확실한 1강 체제를 굳히기 위한 전략으로도 풀이된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직접 지원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 동구청장 선거에 대해 민주당 부산시당 관계자는 “박 전 대표가 오는 시점을 전후로 문 이사장의 지원 유세를 요청해 상쇄효과를 내려고 한다”고 밝혀 부산에서 벌어지는 대선주자들의 한판 싸움도 기대되고 있다.

선거 결과는 한나라당의 내년 총선 공천 물갈이와도 직결된다. ‘공천학살’을 경험한 바 있는 박 전 대표는 공천에 대해 아주 민감하다. 따라서 패한다면 수면 아래 잠복했던 물갈이론이 또 다시 대두돼 박 전 대표를 괴롭힐지도 모른다.

본인은 “대선과 상관없는 선거”라 완강히 부인하고 있지만 선거 지원을 공식화하는 순간부터 대선주자로서의 검증대에 오른 박 전 대표이다.

선거 지원을 바라보는
어긋난 시선들

상황은 녹록치 못하다. 정두언 여의도연구소장도 박 전 대표의 선거지원이 판세를 크게 흔들지는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 소장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도움이 되겠지만 그게 판세를 그렇게 또 흔든다고 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정 소장은 그 이유에 대해 “(박 전 대표의 선거지원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라며 박 전 대표의 선거지원이 오래전부터 예고됐던 ‘당연한’ 수순인 만큼 나 후보의 지지율에 그 효과가 이미 반영됐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실제 최근에 실시된 여론 조사들을 살펴보면 박 전 대표가 나 후보의 지원유세에 나선다 해도 박 후보에게 진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두 후보 간의 지지율 격차는 약 9~10%대로 박 전 대표가 지원 여부를 밝히기 전과 비슷한 격차를 유지하거나 도리어 더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여론 조사 결과에 박 전 대표의 지지모임인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의 정광용 대표도 “같은 당이니 심정적 지지는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지원유세는 결단코 반대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정 대표는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면 안 되며, 박 전 대표는 차기 대권을 승리로 이끌 유일한 지도자로 남겨둬야 한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홍준표 대표의 책임 하에 치러져야 한다”고 밝혔다.

야당도 시큰둥한 반응이다. 박지원 민주당 전 원내대표는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박 전 대표 본인의 선거구(대구 달성군)의 (한나라당) 기초단체장도 낙선했다”며 “크게 평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근혜가 괜히 박근혜’고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겠냐며 환영하는 입장도 있다.

박 전 대표는 이미 과거 서울시장 선거를 지원한 경험이 있다. 지난 2006년 당시 당 대표의 신분으로 오세훈 후보를 도왔다. 그때 유세 도중 괴한의 피습을 당하는 등의 악조건 속에서 오 후보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선거의 여왕이란 박 전 대표의 별명은 2004~2006년 크고 작은 재ㆍ보선에서 ‘40대 0’의 승리신화를 만들면서 붙여졌다.

2년3개월 동안 야당 대표로 재임하면서 승승장구할 때 여당 대표는 선거패배의 책임을 지고 9번이나 바뀐 것도 유명한 일화이다.
 
한나라당 대표로 취임한 직후 천막당사에서 치른 2004년 총선에서도 개헌 저지선인 100석 이상(121석)을 차지하면서 정치적 존재감을 과시한 바 있다.

박 전 대표가 4년간 지켜온 ‘선거 불개입’ 원칙을 접으면서 내세운 명분은 “한국 정치의 위기 상황”이다. “한국 정치가 위기 상황에 처할 때 까지 뭐했냐”는 비난의 목소리도 높지만 최고 잠룡으로 평가되는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은 무시 못 할 변수임엔 틀림없다.
 
그동안 꼼짝도 않던 그를 ‘안풍’과 ‘박풍’이 6개월 일찍 등판시킨 것이다.

이것이 박 전 대표의 대권 전략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정면돌파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어 그 영향력과 파괴력이 얼마나 될지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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