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서울시장 유력후보 전격 비교검증②걸어온 길

2011.10.11 10:55:00 호수 0호

판사 출신 ‘엘리트 제도권’ 나경원 vs 인권변호사 출신 ‘시민운동가’ 박원순

[일요시사=손민혁 기자]10·26 서울시장 재보선에 나선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와 야권의 박원순 후보는 정치권과 시민사회진영에서 각각 스타성을 지닌 인물이지만 지금까지의 인생역정은 사뭇 달랐다. 나 후보가 ‘제도권’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경우라면 박 후보는 인권변호사로 민주화운동을 한 ‘운동권’이었다.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온 것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사법고시를 패스한 법조인 출신이라는 점 뿐이다. 서울시장 유력후보인 두 사람의 ‘걸어온 길’을 전격 비교·검증 해봤다.

‘제도정치권’과 ‘시민사회진영’의 두 스타
같은 법조인 출신이지만 인생역정은 판이

사법고시에서는 나경원 후보가 34회, 박원순 후보가 22회로 대선배다. 나 후보는 부산, 인천지법, 서울행정법원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판사생활을 하면서 정통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반면 박 후보는 대구지검 검사로 1년여 근무했지만 곧바로 인권변호사로 돌아서면서 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 섰다. 두 사람의 길은 법조계 이후 완전히 갈렸다.

1963년 12월6일, 네 명의 딸 중 첫째로 태어난 나 후보는 서울여자고등학교 시절에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전체 557명 가운데 1등을 차지할 정도로 3년 내내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거쳐 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전공하고 1992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24기를 10위권 이내의 성적으로 수료한 나 후보는 판사 재직 당시, 대학 시절에 만난 김재호 서산지원장과 결혼했다.


‘미녀 정치인’ 나경원

나 후보는 2002년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의 정책특보로 정계에 입문한 이후 비교적 큰 파고 없는 정치활동을 보여 왔다.

이 전 총재가 대선 패배 후 잠시 변호사 활동을 했지만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원내에 진입했고, 2006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서울시장 후보에 오세훈 전 시장이 결정되자, 오 전 시장의 대변인으로 임명됐다. 이후 강재섭 전 대표 시절 당 공동대변인으로 활동했으며 18대 총선에서 서울 중구에서 당선, 재선에 성공했다.

나 후보의 정치 행보에서 질적인 도약대는 2010년 6월 서울시장 선거 후보 경선이었다.

당시 오 전 시장에게 패배했지만, 3선이던 원희룡 후보와의 단일화 여론조사에서는 승리했다. 그해 7월 전당대회에서는 3위의 성적으로 최고위원에 당선되는 이변을 연출했다.

이어 지난 7·4 전당대회에서도 3위의 성적으로 연이어 최고위원 자리를 꿰차며 입지를 굳힌 나 후보는 홍준표 대표의 반대도 있었지만 서울시장 재보선에 전략공천으로 후보에 나섰다.

현 정부에서는 범 친이계로 분류되며 정부의 역점 추진과제였던 미디어법 처리에 앞장섰다. 개각 때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하마평에 오르내렸고, 높은 인지도로 당내 경선에서 항상 높은 득표력을 보이며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했다.

반면 박 후보는 참여연대 사무처장, 상임집행위원장에 이어 2002년부터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 상임이사를 맡아 활발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왔다.

국내 대표 진보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를 만든 시민운동 1세대 선두주자다. 박 후보는 오랜 기간 사회정의를 위해 활동한 점을 높게 평가 받아 지난 2006년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리핀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195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박 후보는 경기고를 졸업한 뒤 나 후보와 같은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지만 1학년 때 유신체제에 항거에 할복한 고 김상진 열사 추모식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투옥, 제적되면서 대학은 1983년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연수원을 12기로 수료하면서 법조계에 입문한 박 후보는 대구지검에서 1년간의 짧은 검사생활을 한 뒤 변호사로 활동했다.
 
군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당시, 권인숙 성고문사건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맡으면서 인권변호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당시 박 후보는 국민연금 노령수당 청구소송을 승소로 이끌며 ‘생활 최저선’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하기도 했다.

그러던 지난 1991년 박 후보는 돌연 유학길에 올라 2년 동안 미국과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시민사회운동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지난 1994년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참여연대를 창립, 사무처장을 맡아 본격적으로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소액주주운동 등을 성공시키며 우리 사회의 1세대 시민운동가로 자리매김했다.

1990년대 말 IMF 위기 때에는 소액주주운동을 통한 재벌개혁운동을 펼쳤고, 2000년 총선 때에는 `부적격 후보들에 대한 낙천ㆍ낙선운동을 처음 주도했다.

하지만 박 후보는 거기서 머물지 않았다. 지난 2000년에는 8년간 몸담았던 참여연대를 떠나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하면서 우리 사회 기부문화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또 2001년에는 ‘아름다운가게’를 설립하고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아름다운가게와 아름다운재단 총괄상임이사를 지냈다. 아름다운 재단이 본궤도에 올라서자 이번에는 ‘21세기 실학운동’을 기치로 ‘희망제작소’를 설립하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목표로 활동을 벌여왔다.

한때 대권후보로 거론될 만큼 정치권의 영입 제의도 잇따랐지만 박 후보는 시민사회진영의 울타리를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며 정치권의 새로운 핵으로 등장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5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보이며 나 후보를 앞서고 있다.

‘시원 원순’ 박원순



‘미녀 정치인’ ‘똑순이’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나 후보와 ‘원순씨’ ‘시원 원순’등 친근한 이미지를 가진 박 후보. 이렇듯 같은 법조계 출신이지만 판이하게 다른 인생역정을 보이는 두 후보자다.

걸어온 길이 다르듯 그들의 사상과 정책 또한 판이하게 다르다. 보름도 채 남겨 두고 있지 않은 10·26 서울시장 보선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주게 될 것인지 서울시민들의 현명한 판단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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