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싫은 교사들, 왜?

2018.05.08 11:17:47 호수 1165호

“‘스승’이고 싶지 않아요”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가정의 달’ 5월은 행사가 많다. 어린이날(5일)과 어버이날(8일), 스승의 날(15일), 부처님 오신 날(22일) 등 기념일이 줄지어 있다. 사람들은 각종 기념일을 위해 저마다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5월의 여러 기념일 중 스승의 날은 유독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주인공인 교사들이 스승의 날을 더욱 꺼리는 추세다.
 



경기불황과 취업난이 이어지면서 직업 선택의 기준을 ‘안정성’에 두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공무원 시험에 취업준비생(취준생)이 몰리고 희망직업 선호도 조사에서 교사가 10년 넘게 1위를 차지하는 게 그에 대한 방증이다.

지난해 12월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017년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들이 가장 희망하는 직업으로 11년 연속 교사가 1위에 뽑혔다. 초등학생(9.5%), 중학생(12.6%), 고등학생(11.1%) 등 학생 10명 중 1명이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답했다.

교사도 싫은 날

10년 전에 비해 선호도 자체는 초등학생 15.7%→9.5%, 중학생 19.8%→12.6%, 고교생 13.4%→11.1% 등으로 떨어졌지만 이는 특정 직업군으로의 쏠림현상이 완화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교사는 2007년 조사가 시작된 이후 2012년 초등학생들 사이서 ‘운동선수’에 1위를 내줬을 뿐 줄곧 희망직업 최상위권을 유지했다. 직업 안정성과 방학 등 다른 직업에 비해 재충전의 기회가 많다는 점이 높은 선호도의 원인으로 꼽힌다.


이미 교사를 직업으로 삼은 이들이 자긍심을 가질 법한 조사 결과다. 하지만 일선에 있는 교사들의 반응은 그렇지 않다. 높은 선호도와는 별개로 교권 침해가 증가하는 등 현직 교사들이 견뎌야 하는 무게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일부 교사들은 교육적 의미의 스승보다는 직업적 의미의 선생님으로 남길 바란다.

희망직업 선호도 부동의 1위
교권 침해 등 고충 말도 못해

스승의 날은 교권 존중과 스승 공경의 사회적 풍토를 조성해 교원의 사기 진작과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지정된 날이다. 처음 시행된 1963년에는 5월26일을 스승의 날로 정했지만 1965년부터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15일로 변경했다. 

이후 사은 행사를 규제하는 정부 방침에 따라 폐지됐다가 1982년 부활했다.

스승의 날 분위기는 갈수록 위축되는 추세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스승의 날이면 학교 전체가 떠들썩했다. 학급별로 담임교사를 위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학생들은 돈을 모아 작은 선물을 준비하곤 했다. 스승의 날 전후로 온라인 커뮤니티나 유튜브 등에서 학생들의 이벤트에 감동하는 교사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오히려 교사들이 스승의 날을 꺼려하고 있다.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현직 교사가 스승의 날 폐지를 청원하는 글을 올렸다. 
 

지난달 20일 청원자는 “스승의 날은 유래도 불분명하고 정권의 입맛에 따라 없앴다가 만들기도 했다”며 “우리 헌법이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받도록 하고 있지만 정작 교사는 교육의 주체로 살아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역대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교육 개혁을 부르짖으면서 교사들은 개혁의 주체보다 대상으로 취급 받아왔다고 설명했다. 또 모든 책임을 학교에 떠넘기고 교사를 스승이라는 프레임에 가둬 참고 견디라면서 ‘교사는 있지만 스승은 없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등 왜 교사가 이 같은 조롱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기념일 폐지 청원 올라와
“잠재적 범죄자 취급” 토로

청원자는 “이런 교단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포상, 기념식 등의 행사로만 일관하고 있다”며 “교권은 포상과 행사로 살아나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교권 추락은 수수방관하며 교사 패싱으로 일관하는 분위기서 교사들은 스승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소명의식 투철한 교사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해당 청원에는 1만여명의 가까운 국민이 동의를 표했다.

청원자는 전북 이리 동남초등학교 교사 정성식씨. 정 교사는 지난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스승의 날은 조퇴하거나 학교를 떠나고 싶은 날”이라며 “학부모는 물론 학생들도 부담스러워하고 불편해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부정청탁금지법, 일명 김영란법 등에 대한 과도한 법 해석이 교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면서 이 같은 분위기가 생겨났다고 분석했다. 김영란법 자체에는 찬성하지만 국가의 과도한 해석이 교권 추락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

2016년 정부는 스승의 날 교사에게 캔커피나 카네이션을 주는 행위가 김영란법 위반이라는 최종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스승의 날 허용되는 카네이션 선물의 범위를 ‘학생 대표가 스승의 날에 공개적으로 선물하는 카네이션’ 혹은 ‘졸업생이 찾아가 전달하는 꽃 선물’ 등으로 정했다. 여기서 학생 대표란 학과 대표, 구성원들 사이서 대표로 선정된 이들을 가리킨다.

위축된 분위기

카네이션이 생화인지 조화인지, 재학생이라면 일반 학생인지 학생 대표인지, 교사와 학생 간 직무관련성이 없는 졸업생일지라도 석·박사 진학을 앞두고 있는지 아닌지 등 스승의 날에 고려해야 할 사항은 많다.

이 과정서 교사에게 감사를 표하려는 학생은 주려는 선물이 김영란법에 저촉되지 않는지 따져야 하고, 받는 입장인 교사는 아예 거절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정 교사는 이런 논란에 대해 “서글프다”며 “(그런)카네이션을 받고 싶은 교사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자조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스승의 날 폐지’ 국민청원 보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스승의 날 폐지’ 청원 글을 올린 전북 이리 동남초등학교 교사 정성식씨는 “이미 교권이 사라진 학교 현장에 스승의 날은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교권 침해는 늘어나고 있는데 이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는 매우 미비하다”며 “교사의 교육적 지시와 통제에 불응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학생이 교사에게 폭언을 퍼붓거나 폭행을 저지르는 일은 이제 더는 놀랍지 않다.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옛 어른들의 말은 최근 학교 현장서 그 의미가 사라진 지 오래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가 지난 1월17일부터 23일까지 총 677명의 교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육 분야 헌법 개정 관련 모바일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권 관련 내용을 헌법에 추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75.6%로 나타났다. 

교권침해가 나날이 심각해지고 흉포화 되는 만큼 헌법에 교권을 명시해 교원을 좀 더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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