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80)조서

2018.04.23 10:59:32 호수 1163호

의자왕의 선택은?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신라의 연호, 법흥왕이 건원(建元)이라는 연호를 사용한 이후 독자적으로 연호를 제정하여 사용해왔다. 

당나라 태종 시 신라에게 당의 연호인 정관(貞觀)을 사용하기를 요구하였으나 그를 차일피일 미루며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다 진덕여왕이 들어서면서 다시 연호를 태화(太和)라 제정하여 사용했던 터였다.

옛 땅을 찾기 위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소?”

“폐하, 폐국의 어리석음을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나이는 속일 수 없는지 고종의 표정과 말투에서 불쾌한 심정이 그대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신라는 우리의 신하 국이 아니었다는 말 아니오?”

“폐하, 부디 폐국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기어코 법민의 소리에 울음이 가세했다. 그 모습을 주시하며 고종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잘 들으시오. 짐은 한시도 귀국을 우리의 신하 국이 아니라 생각해본 적 없소. 그리하여 선황제도 그렇지만 짐 역시 모든 일에 있어 귀국을 항상 애처롭게 생각하였고 그에 도움의 손길을 주었소.”

말을 하다 말고 고종이 가만히 턱을 괴었다.

“귀국이 지금이라도 자진해서 허물을 고치고자 하니 그동안 있었던 일은 묻지 않겠소. 허나 차후로는 한 치도 상국의 의지를 거스르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황제 폐하. 뼛속 깊이 명심하겠사옵니다.”

“좋소. 그 일은 이제 그만 접고. 금번에 백제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는데 그에 대해 말해보시오.”

고종의 말소리가 온화하게 변하자 법민이 가만히 호흡을 고르고 조신하게 고개 숙였다.


“황제 폐하, 비록 금번에는 황은에 힘입어 폐국이 승리 하였지만 이전에 침략으로 신라의 많은 성과 진들을 빼앗긴 바 있습니다.”

고종이 고개를 돌려 시립해 있는 상리현장을 주시했다.

“폐하, 그런 연유로 선황제께서 신을 고구려와 백제에 보내어 신라를 침공하지 말라 주의 준 바 있습니다.”

“그런데도 두 번국(藩國,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이 말을 듣지 않았다는 이야기인가?”

“송구하옵니다만, 그런 연유로 선황제께서 친히 군사를 이끄시고 고구려를 정벌하시고자 하셨습니다.”

“백제는?”

“백제는 일시적으로 지시에 따르는 듯 보였지만 이내 마음을 돌려 신라를 공략하였습니다.”

고종의 시선이 다시 법민에게 옮겨졌다.

“짐이 어찌하였으면 좋겠소?”


“송구하옵니다만 폐하께서 다시금 백제에 조서를 내려 침략한 성들을 돌려주도록 하신다면 그 은혜 죽어도 잊지 못할 일이옵니다.”

“전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면?”

“행여 그럴 일은 없겠으나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발생하면, 황제 폐하의 조서를 봉행하지 않는다면 신하 국으로서 그를 두고만 볼 수는 없사옵니다.”

“신라에서 스스로 찾겠다는 말이오?”

“황제 폐하의 황은을 앞세워 저희가 쳐서 옛 땅만 찾고 화해를 청하여 이전처럼 화목하게 살도록 하겠사옵니다.”

“경의 충정 충분히 알겠소. 아울러 백제로 하여금 신라의 요구를 반드시 들어주도록 할 터요.” 

법민, 고종 이용해 뺏긴 땅 되찾으려 하다
당나라의 조서 받고 황당한 의자왕 ‘무시’

신년을 맞이하여 당나라에 사절로 다녀온 성충과 그 일행이 의자왕을 찾았다. 

전과는 달리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의자왕이 그들을 맞이했다.

“말해보세요.”

앞으로 나선 성충이 굳은 표정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전하, 우선 있었던 일 그대로를 아뢰고 보충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성충의 마뜩치 않은 표정과 말투에 모두의 얼굴에 긴장감이 들어찼다. 이어 의자왕이 성충의 의견을 받아들이자 성충이 짧지 않은 두루마리를 끌러 읽기 시작했다.

『해동(海東)의 삼국이 나라를 세운지 오래며, 경계를 나란히 하나 땅은 실로 들쭉날쭉하다. 

근대 이래로 마침내 의혹과 틈새가 생겨 전쟁이 번갈아 일어나서 거의 편안한 해가 없었고, 마침내 삼한(三韓)의 백성으로 하여금 목숨을 칼과 도마 위에 올려놓게 하고, 무기를 갖고 분풀이를 하는 것이 아침저녁으로 서로 이어졌다.

짐은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기에 심히 긍휼히 여기고 민망해 하는 바이다. 지난해에 신라 사신 김법민이 상주하여 아뢰었다.

‘고구려와 백제가 입술과 이빨과 같이 서로 의지하여 빈번하게 신라를 침략하니 큰 성과 중요한 진들이 모두 백제에게 병합되어 영토는 날로 줄어들고 위력도 아울러 쇠약해지게 되었습니다. 바라건대 백제에 조서를 내려 침략한 성을 돌려주게 하소서. 

만약 조서를 받들지 않으면 곧 스스로 군대를 일으켜 쳐서 빼앗을 것이되 다만 옛 땅을 얻으면 곧 서로 화해를 청할 것입니다.’

짐은 그 말이 순리에 맞음으로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옛날 제(齊)나라 환공(桓公)은 제후의 반열에 있으면서도 오히려 망한 나라를 존속시켰는데 하물며 짐은 만국의 임금으로 어찌 위기에 처한 번국을 구휼하지 않으리요.

백제왕이 겸병한 신라의 성은 모두 마땅히 그 본국에 돌려줄 것이며 신라도 사로잡은 백제의 포로들을 또한 돌려보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연후에 환난을 풀고 분규를 해결하고, 무기를 거두어들이고 전쟁을 그치면 백성은 짐을 내려 어깨를 쉬는 소원을 이루게 되고 세 번국들은 전쟁의 수고로움이 없을 것이다. 

이는 저 변경의 부대에서 피를 흘리고 강토에 시체가 쌓이고 농사와 길쌈이 모두 폐하게 되어 남녀가 의지할 것이 없게 된 것과 어찌 같은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왕이 만약 나아가고 머무는 것을 따르지 않는다면 짐은 이미 법민이 청한 바대로 왕과 승부를 결정하도록 내맡길 것이고, 또 고구려와 약속하여 멀리서 서로 구원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고구려가 만약 명령을 받들지 않으면 즉시 거란과 여러 번국들로 하여금 요하를 건너 깊이 들어가 노략질하게 할 것이다. 

왕은 짐의 말을 깊이 생각하여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할 것이며 좋은 계책을 살펴 도모하여 후회함이 없도록 하라. 』(삼국사기 중에서)

성충이 조서를 읽어 내려가자 의자왕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갔다. 그를 살피는 신하들 표정 역시 대동소이했다.

“허허, 과연 계집이 다스리는 나라로고.”

의자왕이 굳은 표정을 풀고 허탈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김법민이 누구요?”

“김춘추의 큰 아들입니다.”

“그 아비에 그 아들이로고.”

의자왕이 혀를 차며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그런데 김법민인가 뭔가 하는 놈이 당고종에게 고자질한 내용이 진실이오?”

“비록 전하께서 보위에 오르셔서 신라를 공격하여 많은 성을 취하였으나 저희 역시 많은 희생을 치렀습니다.”

“그야 그렇지. 은상도 그렇고.”

의자왕이 말을 하다 말고 흥수를 주시했다.

“군사, 당고종이 고구려에도 이와 관련한 조서를 보냈을 터인데 그들은 어찌 대처할 것 같은가?”

당나라의 조서

“고구려에는 연개소문이 건재합니다.”

“그 의미는?”

흥수가 연개소문을 언급하며 간단히 말을 끝내자 의자왕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고구려는 결코 당의 조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옵니다. 연개소문의 손에서 바로 찢어질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냥 무시하고 말아야겠소.”

의자왕이 건성으로 말을 받고는 서둘러 회의를 파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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