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77)유언비어

2018.04.03 08:43:36 호수 1160호

김유신의 계략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한편 그 시각 신라의 진에서는 김유신을 필두로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숙의를 거듭하고 있었다.

“상장군, 방금 전에 진을 치는 중에 물새 한 마리가 날아간 일을 두고 병사들 사이에 수군거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내친 김에 밀어버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물새가 말이오?”

“그러합니다, 상장군.”

진춘과 죽지가 말을 잇자 김유신이 순간적으로 눈동자를 반짝였다.


물새의 의미

“물론 장군들의 심정 내 모르는 바 아니오. 그리고 저 백제군사들 어렵지만 반드시 무너트릴 수 있소. 그러나 전쟁에서 중요한 게 뭐요?”

모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침묵을 지켰다.

“최소한의 희생으로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는 거요. 아울러 저들의 심리를 자극해서 예기를 꺽은 연후에 공격해도 그다지 늦지 않소.”

“하면 방도가 있습니까?”

“물새가 무엇을 의미하겠소?”

느닷없는 질문에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물새는 바로 백제를 의미하오. 물가에 궁을 세운 백제 말이오. 그러니 물새가 날아들었다 함은 저들이 오늘 밤 우리 진지를 염탐하러 사람을 보낼 것이라 이 말이오. 우리의 속내가 무엇인지 살피려고.”

“하오면.”

“그를 역으로 이용해야지요.”


질문을 했던 천존이 그 의미를 헤아린다는 듯 진춘과 죽지를 주시했다.

“역으로 생각해봅시다. 지금 백제군은 우리 행동을 어찌 볼 것 같소?”

“성을 놔두고 진지를 구축한 사유를 궁금해 하겠지요.”

“하면.”

“그러니 병사들에게 지원군이 와서 성을 내주고 불편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불평하도록 하시오.”

선뜻 이해되지 않는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일종에 전술이오.”

“그러면 적들로 하여금 그를 믿게 하려는!”

“아울러 장군들은 부하들에게 내일 새벽에 기습공격을 감행 할 것이라는 유언비어를 퍼트리도록 하시오.”


“유언비어라 하심은.”

“물론 내일 공격을 감행할 것이오. 그러나 새벽은 아니고 저녁 무렵이 될 거요.”

지속되는 천존의 질문에 유신이 힘주어 답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백제 병사들로 하여금 오늘 밤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여 그동안 피로가 누적되었을 백제군을 몰살시키려 하오.” 

유신이 수하 장수들에게 다시 그날의 상황을 주지시키고는 심복 몇 사람을 불러들였다. 

그들에게 백제 병사로 변장하여 백제의 염탐꾼들이 돌아갈 그 시점에 백제 진영에 들어가 신라군이 백제군이 자고 있을 무렵 공격할 것이라는 말을 퍼트리도록 했다.

밤이 깊어지자 유신의 말 대로 백제에서 염탐꾼들이 신라 진영에서 첩보를 입수해서 백제 진영으로 돌아갔고 그 시간에 맞추어 유신의 밀명을 받은 신라 병사들이 유신의 지시 사항을 백제 병사들 사이에 퍼트렸다.

한편 염탐꾼들로부터 보고를 받은 은상이 정복과 자리를 함께했다.

“군사, 이 무슨 의미입니까?”

“혹시 뭔가 계략이 숨어 있지 않을까요?”

“계략이라!”

“워낙 김유신이란 작자가 간계를 부려서.”

정복은 물론 은상도 출정에 앞서 성충에게 김유신과 관련하여 항상 주의를 풀지 말라는 충고를 들었던 터였다.

“만약 계략이라면 한밤중에 우리 병사들이 모두 잠에 빠져들었을 무렵 기습공격을 감행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러면…….”

두 사람이 신라의 공격에 대한 대처에 쉽사리 결정 내리지 못하고 있을 즈음 정중이 들어와서 진지에 공공연하게 퍼져 있는 소문을 전했다. 

물론 신라군이 백제군이 잠에 빠져든 순간 기습공격을 감행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닌다든가?”

정복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진중에 쫙 퍼져 있습니다.”

“김유신의 간계로구먼, 간계.”

“간계라 하면.”

“밤에는 공격이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헛소문을 퍼트려서 불안한 심리를 조성하겠다는 의도로 비쳐집니다.”

“그렇더라도.”

“여하튼 경계를 확실하게 하라 하고 평상시처럼 행동하라 하지요.”

은상이 정복의 의견에 따라 병사들에게 평소처럼 행동하라 지시하였지만 이미 불안감에 사로잡힌 병사들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혹시나 있을지 모를 기습공격에 가슴을 졸이며 밤을 보냈다.

염탐꾼 역으로 이용…기습공격 소문
‘먹혔나’불안감에 병사들 사기 저하

은상과 정복 역시 마찬가지였고 잠을 자는 둥 마는 둥하고 막 아침을 먹으려 할 즈음에 신라 진영에서 북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급히 전투태세를 갖추었으나 그저 북소리로 끝나고 잠시 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침묵이 이어졌다.

그와 같은 일이 몇 차례 연속되자 가뜩이나 피로한 백제 군사들의 온몸에서 맥이 빠지기에 이르렀고 얼추 그를 감지한 유신이 신라의 선봉에 공격을 지시했다. 

진춘이 소수의 기병을 이끌고 곧바로 백제군을 공격해 들어갔다. 

순간 비몽사몽을 헤매던 백제군이 쳐들어오는 신라 군사에 대응하기 위해 일시에 한곳으로 몰렸다.     

신라와 백제 간 거리가 좁혀지고 막 전투가 전개될 무렵 신라군에서 다시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 백제의 군사를 포위하는 형국으로 곳곳에서 신라 군사들이 백제군을 압박하듯 밀려들었다. 

진춘의 기병을 상대하려던 백제 군사들이 혼란에 휩싸였다. 

한데 어우러졌던 병력을 급히 분산시켜 신라군을 맞이하는데 이번에는 다시 북소리가 울리며 김유신이 이끄는 지원군이 백제 진영을 향해 내달렸다.

고립무원에 갇힌 백제 군사들의 처절한 혈투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무기력에 빠진 백제군은 변변하게 칼 한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당하기에 급급했고 뒤이어 달려온 김유신이 곧바로 은상을 노리며 접근했다.

“네가 은상이라는 물새냐! 어서 칼을 버리고 항복하라!”

은상이 신라군을 맞아 혈전을 벌이는 중에 고개를 돌려 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상장군 김유신’ 기 옆에서 김유신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뭐라! 네 놈이 신라의 쥐새끼 김유신이로구나. 감히 내게 항복을 권하다니. 오로지 죽음만 있을 뿐이다!”

“용기는 가상하다만 네 목은 내가 직접 베어주마!”

말과 동시에 유신이 은상을 향했고 이어 두 사람의 피 튀기는 혈투가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신라 최고의 용장인 유신의 칼에 은상이 밀리기 시작했고 뒤로 물러나던 은상의 말을 향해 유신이 창을 뽑아 힘차게 내질렀다. 

창에 찔린 말이 잠시 콧김을 내지르더니 이내 피를 토하며 고꾸라졌다. 

그와 동시에 말에서 떨어진 은상이 몸을 추스르고 정신을 가다듬는 사이 어느새 다가선 유신의 칼이 번쩍였다. 

순간 서서히 기우는 햇빛에 은상의 목에서 튀어 오르는 혈흔이 반짝이면서 이번에는 말이 아닌 은상이 고꾸라졌다.

유신이 날다시피 말에서 뛰어내려 땅에 널브러진 은상의 목을 쳐서 몸과 분리된 두상을 들고 다시 말위에 올랐다.

백제군 패배

“신라 병사들이여, 이게 백제 장군 은상이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이도록 하라!”

피가 뚝뚝 떨어지는 처참한 은상의 몰골을 바라보자 가뜩이나 힘겹게 악전고투를 이어가던 백제 군사들의 사기가 순간적으로 무너져 내렸다. 

반면 사기가 오른 신라 군사들은 더욱 강하게 공격을 감행하였다.   

결국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장군 정중을 비롯한 소수의 백제군이 포로로 생포되지만 은상을 포함 자견 등 다수가 죽음을 면치 못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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