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 가난한 청년정치인 수난기

2018.04.02 09:42:42 호수 1160호

“돈 없으면 출마도 못해요”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지방선거는 청년 정치인의 등용문이다.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곧바로 중앙정치로 직행하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 힘들다. 그래서 정치에 꿈이 있는 2030 청년들은 광역·기초의원의 문을 두드린다. 



올해도 어김없이 등용문이 열렸다. 그러나 6·13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청년들은 현실정치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있다. <일요시사>는 청년 정치인 3명의 힘든 하루를 동행했다(공정한 선거를 위해 이름, 정당, 나이, 지역 등은 밝히지 않음).
 

구의원으로 출마하는 김선거(남, 가명)씨는 아침 6시면 눈이 떠진다. 최근 김씨는 그 시간에 기도하는 습관이 생겼다. “어느 때부턴가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대학 입시 때보다 더 간절한 마음이다.” 그는 기도를 통해 마음을 가다듬는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도 실수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되뇐다. 김씨는 새로 산 정장을 차려입고 집을 나선다.

기도하는 마음

차로 이동하면서 김씨는 최대 고민이 돈이라고 털어놨다. 선거를 준비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계산해보니 이것저것 들어가는 게 엄청나다.” 

당시 김씨는 3개월 동안 사용할 사무실을 알아보던 중이었다. 그가 책정한 임대료는 월 100만∼150만원선.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공보물과 현수막에 들어가는 비용도 1000만원 이상으로 책정하고 있다. 목이 좋은 자리에 현수막을 걸려면 이만큼은 들어간다.”


김씨는 유세차를 사용할지 여부도 고민 중이다. “차를 구하고 운전기사를 사용하는 데도 1000만원 정도 들어간다고 봐야 한다.” 

그는 이 문제를 결정하기 위해 당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유세차를 사용해야 한다는 선배가 있는 반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선배도 많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어떤 선배는 단 1% 득표율 차로 떨어진 사람의 얘기를 해주며 몇 푼 아끼려다 낙선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어떤 선배는 구의원이면 유세차를 사용하지 않고 발로 뛰어도 충분히 당선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번이 첫 선거라 그런지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할지 감이 안 선다.”

사무장과 회계책임자에게 들어가는 인건비도 생각해야 한다. 

“사무장에 들어가는 비용도 천차만별이다. 능력 있는 사람을 고용하려면 어마어마한 월급을 줘야 한다. 이 바닥서 능력이 뭐겠나. 선거 경험이 많은 것 아니겠나. 너도나도 데려가려니 몸값이 뛴다. 페이백도 챙겨줘야 한다. 선거 때면 사무장들은 ‘장이 섰다’고 표현한다.”

여론조사를 돌리는 데 드는 비용도 결코 적지 않다. 몇 명을 돌리느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ARS의 경우는 100만∼200만원 정도로 상대적으로 저렴하다고 한다. 그러나 좀 더 정확한 방식으로 할 경우 1000만원까지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정치판에도 ‘유리천장’ 심각
선거전 = 결혼식…‘허례허식’

김씨는 총 비용으로 대략 5000만원선을 생각하고 있다. 선거비용 제한액이 대략 그 정도 선으로 책정된다. “직장을 다니면서 충분한 돈을 모았다고 생각했는데….” 선거비용을 보전받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선거법상 예비후보 신분 때 사용하는 비용은 보전받을 수 없다. 본선서도 득표율에 따라 차등 보전된다. 득표율 15% 이상은 전액이 보전되고, 10∼15%는 절반만, 10% 미만은 보전이 안 된다. 
 

“구의원의 경우 다수의 후보가 경합을 벌인다. 그래서 득표율 10% 넘기기도 힘들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문제지만, 나같이 인지도 낮은 정치신인에게는 득표율 10%도 높게만 보인다.”


시의원으로 출마한 박출마(남, 가명)씨는 요즘 사람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선배들을 만나면 꼭 하는 말이 ‘좋은 경험으로 삼아라’다. 난 당선되려고 예비후보로 등록했는데, 마치 ‘다음 기회를 노려라’라는 소리로 들려 맥이 빠진다.”

지역 어르신들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정치하기에 너무 젊다” “내공이 없어 보인다” “안되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마라” 등의 말을 듣기 일쑤다. 

“정치를 하는 데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계속 이런 말을 듣다보니 내가 정말 젊은 치기에 선거에 뛰어들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이 흔들리는 느낌이다.”

박씨는 지금의 느낌을 유리천장에 비유했다. “당선이라는 목표는 보이는데 어떤 장벽이 눈앞에서 가로막고 있는 걸 느낀다.”

그도 김씨처럼 선거비용의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최대한 비용을 줄이고 싶은 마음에 당 사람을 만나 조언을 구하면 당장 ‘그러려면 출마하지 마라’는 말이 돌아온다. 당 이미지와 다른 예비후보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박씨는 선거판이 결혼과 같다고 한다. 남들만큼 하려니 비용이 많이 들고, 비용을 줄이자니 여기저기서 안 좋은 평가가 돌아온다는 점에서 둘은 유사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구의원으로 출마한 이당선(여, 가명)씨는 요즘 주량에 대한 고민이 크다. 지역 행사에 참석하면 으레 술자리로 이어지는데, 이런 날이 매일 반복되다 보니 체력적인 한계를 느낀다고 토로했다. 

“술을 막 강요하진 않는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비추기 위해 여기저기 다니면서 마시는 술의 총량은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씨는 최근 자신을 ‘5분 대기조’라고 일컫는다.


이씨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기초의원 선거구 쪼개기’로 생각이 많아졌다. 자신이 과연 2등 안에 들 수 있을 정도로 경쟁력이 있느냐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있다.” 

맥 빠진 혈기

정당의 논리에 따라 예비후보들의 상황이 변화하는 데 대한 불만도 크다. “정당에 속해 있으니 왈가왈부할 순 없지만 왜 선거 때 이러는지 모르겠다. 후보들이 예민할 시기에 쪼개기를 하니 반발이 나오는 것 아니겠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던 이씨는 기자와 대화를 하던 도중 다음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먼저 자리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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