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우의 시사펀치> 낙태죄(落胎罪) 폐지 논란에 부쳐

2017.12.11 10:56:10 호수 1144호

최근 모 여성단체가 ‘낙태죄 폐지’를 위한 집회서 촉구한 내용을 살펴본다. “낙태죄 폐지 국민청원은 여성의 몸을 불법화하고 여성건강을 위협하는 국가와 법·제도의 부정의를 해체하고자 하는 사회적 관심과 열망이 담긴 요구”라며 “청와대는 여성의 건강권을 보장하라”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상당히 모호하다. 그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살피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글을 경쟁력으로 살아가는 필자도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다. 흡사 재판부가 모호한 사건에 대해 내린 판결문을 보는 느낌마저 일어난다.

그런데 왜 필자가 논의에 앞서 이 문제를 거론할까. 낙태의 죄는 쉽사리 정의 내리기 어렵다 주장하기 위해서다. 즉 낙태 행위가 실정법 적용을 받아야할지 말아야 할 지 난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형법에서는 ‘자연분만기에 앞서서 태아를 인위적으로 모체 외에 배출시키거나 모체 내에서 살해하는 죄로 임신한 부녀가 약물을 이용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스스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실정법 위반으로 정의 내리고 있다.

여하튼 이를 염두에 두고 우리와 우리 전 세대 이야기를 해보자. 그를 위해 먼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어머니인 백남의 여사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참고로 박 전 대통령은 1917년 생으로 1872년 생인 백남의 여사 나이 44세 때다.

백 여사는 다섯 살 위인 박 전 대통령의 누나를 낳고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으려 했는데 덜컥 박 전 대통령을 임신하게 된다. 그에 직면하자 백 여사는 박 전 대통령을 지우기 위해, 즉 낙태를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불사할 정도로 갖은 방법을 다한다. 


물론 이전에도 여러번 낙태 경험이 있던 터였다. 그러나 그녀의 처절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박 전 대통령의 운명인지, 한계에 부딪치게 되자 태몽(용꿈)을 구실로 박 전 대통령을 낳게 된다.

이제 내 어머니 이야기를 해보자. 공교롭게도 1919년 생인 내 어머니도 44세 되던 해에 덜컥 동생을 임신하게 된다. 나를 낳고는 더 이상 자식을 가지지 않기 위해 여러번 낙태했던 경험이 있던 어머니에게는 낭패였다.

그에 임하자 어머니 역시 동생을 지우기 위해 무진 노력을 하다 급기야 건강까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결국 그를 바라보던 큰 누나(당시 자식 셋을 두었음)가 어머니의 건강 회복을 위해 출산하라 강권한다. 결국 어머니 또한 동생에 대한 태몽(용꿈)을 빌미로 출산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 일이 백 여사와 내 어머니에게만 국한되었을까. 이에 대해 확고하게 답한다. 물론 ‘아니다’라고. 그 근거를 제시하겠다. 우리 세대 또는 이전 세대의 가족 구성원을 살필 때 자매간 나이 터울이 너댓 살 이상 되면 중간에 낙태했거나 혹은 태어나자마자 죽은 경우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이제 낙태죄에 접근해보자. 법 조항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의 어머니와 내 어머니를 비롯한 우리 세대 이전에 많은 어머니들은 실정법을 위반한 꼴이 된다. 참으로 황당하고 가혹한 결론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한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예기(禮記)에 실려 있는 글로 대신한다. ‘태(胎)로 낳는 짐승은 낙태(落胎)하지 않고, 알로 까는 새는 알을 깨지 않는다’는, 실정법이 아닌 예의 차원에서 접근하자고 말이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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