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레드모델바’ 김동이 대표의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 35>

2011.07.25 11:04:21 호수 0호

‘죽기 아니면 살기’로 레드모델바 오픈

전국 20여개 지점을 가지고 있는 국내 최고의 여성전용바인 ‘레드모델바’를 모르는 여성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현재 레드모델바는 기존의 어두운 밤 문화의 하나였던 ‘호스트바’를 건전하게 바꿔 국내에 정착시킨 유일한 업소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꽃미남’들만 전국적으로 무려 2000명에 이르고, 여성들의 건전한 도우미로 정착하는 데 성공했으며 매일 밤 수많은 여성손님들에게 생활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한때 ‘전설의 호빠 선수’로 불리던 김동이 대표의 고군분투가 녹아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과 유흥업소의 창업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를 펴냈다. 김 대표의 책 내용을 <일요시사>가 단독 연재한다.

수백 명 면접 보고 연예인급 외모 30명 골라
직원들 월급 줄 형편도 안 돼 사채까지 손대



■ 막혀버린 돈줄
웨이터를 뽑는 일도 급했다. 키 180cm 이상, 대졸 이상의 학력, 군필자, 그리고 23세에서 29세까지 훌륭한 외모의 소유자.
‘여성전용 클럽’이라는 이색적인 광고이다 보니 하루에 전화가 1000통 이상 온 적도 있었다. 매일 매일 공사와 면접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여성전용바에서 중요한 것은 웨이터들의 뛰어난 대화능력과 세련된 매너였다. 그것이 아니면 성공은 요원할 뿐이었다. 특별히 중요하게 본 것은 호스트빠 출신이었다. 그들은 ‘공사’에 대한 습성이 남아 있어서 절대로 그것을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호빠 출신 선수들은 절대로 채용하지 않는 것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았다.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나름대로 점차 업소가 완성되어 가고 있고, 채용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또다시 큰 문제가 터졌다. 돈 1000만원을 당장 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사실 진정한 ‘내 사업’은 처음 해보는 것이라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부동산 복비 300만원이 나가야 했고 가게세도 선불로, 사채의 이자도 선불로 내야했다. 돈줄이 순간적으로 막혀버렸던 것이다. 목수들은 하루하루 일당을 받아가기 때문에 당장 돈이 없으면 공사는 하루아침에 중단될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무작정 돈을 구해야 했다. 내 장기를 팔아서라도 구해야 하는 돈이 1000만원이었던 것이다. 그때 머리를 스친 것이 ‘주류대출’이었다. 특정 회사의 술을 사용해주는 대가로 그 회사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제도였다. 여기저기 주류유통 영업 사원들이 그간 자주 찾아왔었다. 그들에게 제안을 했지만 쉽게 성사가 되지는 않았다. 그들의 속내도 이해는 갔다. 처음 하는 업소가 망할지도 모르는데 선뜻 술을 넣어주고 대출까지 해줬다가는 문제가 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영업사원들을 만나 타진해봤지만 모두 허사였다. ‘여성전용 클럽’에 대해서는 모두들 좋은 반응을 보였지만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아직 완전히 형성되지 않은 시장이다 보니 회사의 상급자들이 결제를 내주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다시 예전의 성사장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잘 알고 있는 주류 유통업자가 있으면 소개시켜 달라고 말이다.
“우리 동이 부탁인데 안 들어 줄 수 있나. 기다려 보라고.”
성사장님과의 통화가 끝나자 단 10분 만에 한 업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성사장님이 보증을 섰으니 당장 내일 1000만원을 입금하겠다는 이야기였다. 긴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1000만원을 갚은 것은 물론이고 3년 동안이나 그 주류회사와 거래를 했다. 어려움에 처했던 나를 도와준 사람을 배신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면접은 계속 진행됐다. 수백 명을 면접을 본 결과, 그 중에서 30명을 골라냈고 또다시 그 중에서 10명을 추렸다. 누가 봐도 연예인 뺨치는 수준이었다. 아니, 지금 당장 연예인을 한다고 해도 누구 하나 의심할 수 없는 훌륭한 외모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렇게 46일간의 긴긴 준비의 시간들. 드디어 모든 인테리어와 주방과 메뉴판과 전단지, 홈페이지, 그리고 웨이터들이 준비되었다. 2007년 1월31일. 드디어 레드모델바의 새로운 비상을 위한 모든 준비가 다 끝난 것이다.
방송출연, 그리고 심장을 뛰게 하는 성공의 눈물.
지금 생각해보면 레드모델바의 오픈은 ‘죽기 아니면 살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마도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 틀림없다.
오픈 첫날. 손님은 달랑 한 명이었다. 대박을 예상했던 나의 생각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살 길은 전단지를 돌리는 것 밖에 없었다. 추운 겨울 날씨는 영하 10도를 향하고 있었다. 맹렬한 칼바람이 귓불과 뺨을 때리듯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전단지 알바생들은 하루 만에 그만두기 일쑤였고 결국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직원들은 나의 보물 1호였으니 그들을 고생시킬 수는 없었다. 오후 2시면 어김없이 강남역 인근으로 전단지를 돌리러 나갔다.
새로운 시스템의 등장에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보이기는 했지만 별다른 반응이 오지는 않았다. 하루에 천장씩 돌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런 식으로는 조만간 망할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오픈 이후로는 하루도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나마 드문드문 오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내가 술을 먹고 손님들을 서브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매일 밤 술에 취해 잠들었고 마음속의 두려움은 점점 더 커가기만 했다. 직원들은 나를 믿고 매일 출근을 하기는 했지만 월급이나 제때에 나올지 망설이는 듯 한 표정들이었다. 가끔씩 문의전화가 오기는 했지만 업소를 호빠로 착각한 손님들의 문의들일 뿐이었다. 팁이 얼마인지, 초이스가 되는지를 물어왔다.

■ 5부의 사채이자
아무리 설명해도 고객들은 목석이었다. 호빠와 건전한 여성전용클럽의 차이를 도저히 이해시키기 힘들었다. 막상 업소에 왔다고 하더라도 초이스가 없다고 하면 바로 발길을 돌려버리기도 일쑤였다. 막막하고 답답했다. 한 달이 지나 월급날이 돌아왔지만 월급을 줄 수 있는 돈은 없었다. 함께 사업을 시작했던 동생 현우의 여자 친구인 민영이가 내 사정을 알았는지 선뜻 500만원을 내 놓았다. 직원들 월급을 주라는 것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두달째로 접어들면서 재방문을 하는 고객도 늘어났고 문의전화도 오기는 했지만 월세에 이자며 직원들 월급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자 직원들도 하나둘씩 떠나가기 시작했고 함께 사업을 시작했던 현우는 자신의 지분을 빼겠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직원들 월급 주기도 힘든 상황에서 현우의 지분 5000만원을 빼줄 돈이 있을리는 만무했다. 할 수 없이 나는 5부라는 엄청난 사채이자를 주면서 겨우 지분을 유지시킬 수 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다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의 심정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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