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재판 보이콧 노림수

2017.12.05 08:12:49 호수 1143호

벼랑 끝 마지막 전술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실상 ‘재판 보이콧’을 선언했다. 재판 출석을 끝내 거부해 궐석재판이 진행되기도 했다. 궐석재판은 피고인이 스스로 항변권을 포기한 셈인 만큼 재판상 불이익이 불가피하다. 박 전 대통령이 이렇듯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보이콧을 감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벼랑 끝에 몰린 그녀의 속내가 궁금해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10월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재판서 혐의 자체를 완전히 부인하며 자신이 ‘정치보복’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없다고 말해 사법제도를 부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사실상 ‘재판 보이콧’을 선언한 셈이다.

판을 흔들다

법원의 구속연장 결정이 나지 않았다면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석방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법원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어 구속 연장의 필요성이 상당성이 인정된다”며 추가 구속연장을 결정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연장을 결정하면서 검찰이 추가 적용한 SK와 롯데와의 뇌물 공여죄 혐의를 받아들였다. 이는 단순한 혐의 추가의 의미를 넘어 재판부가 그만큼 박 전 대통령에게 제기된 범죄 혐의를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구속연기가 결정되자 “정치적 외풍과 여론의 압력에도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재판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후 변호인단이 총사퇴했고, 재판부에 의해 선임된 국선변호인과의 접견도 박 전 대통령은 거부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열린 재판에도 끝내 불출석했다.

재판부는 “앞으로 심리할 사항이 많고 제한된 구속기간을 고려하면 더 이상 공판기일 진행을 늦출 수 없다”며 궐석재판을 진행했다. 

형사소송법 277조에 따르면, 피의자가 정당한 사유없이 출석을 거부하고 교도관에 의한 인치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피고인 출석없이 공판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다만 궐석재판은 피고인이 스스로 항변권을 포기한 셈인 만큼 재판상 불이익은 불가피하다는 게 법조계의 공통적인 시각이다. 

박 전 대통령이 이처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보이콧’을 감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선 자신에 대한 재판이 문재인 정부의 ‘정치 탄압’에 의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내기 위한 목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는 박 전 대통령에게 내려질 판결에 대해 ‘불복’하기 위한 명분을 쌓는 효과도 있다. 

또한 자신에게 출당 조치를 내린 자유한국당을 향한 압박의도도 숨어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동정 여론을 자극해 지지층을 결집시켜 지방선거를 치러야 하는 자유한국당을 궁지에 모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재용 부회장과 최순실 등 같은 혐의로 진행 중인 재판을 지켜보고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시간 끌기’ 전략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잇단 공판 불참 이유는…항변권 포기?
보수세력 결집해 막판 뒤집기 노리나


그런가 하면 최근 박근혜정부 당시 청와대의 세월호 참사 당일 최초 보고 시점 조작이나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 수정 의혹 등 박 전 대통령을 더욱 곤궁에 빠지게 만드는 정황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도 적잖은 부담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 전 대통령의 부실 대응 문제는 현재 진행 중인 재판에는 빠져있는 상태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이 되면 세월호 책임 은폐 혐의가 추가로 드러날 수도 있고, 이 과정서 초미의 관심사였던 세월호 참사 당시 박 전 대통령의 의문스런 행적이 공개될 수도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관련된 의혹 등 박근혜 정권 시절 자행된 적폐들이 추가로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도 상당하다. 

그렇게 되면 박 전 대통령을 향한 비난 여론은 더욱 비등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처럼 박 전 대통령 재판을 둘러싼 환경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재판부가 구속연장까지 결정하자 박 전 대통령 측으로서는 특단의 대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박 전 대통령 측의 벼랑 끝 전술은 이런 상황서 나왔다.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문재인정부의 적폐 청산 움직임에 ‘정치 보복’ 프레임으로 맞대응하고 있는 보수 야당 및 보수단체와 공동전선을 구축한 모양새가 됐다. 

이렇게 되면 박 전 대통령 재판의 본질이 법리적 양상을 벗어나 정치적 문제로 옮겨붙는 것은 시간 문제다. 박 전 대통령 측의 노림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재판을 법리 다툼이 아닌 정치적 문제로 몰고 가겠다는 전략이다. 

어차피 재판과정서 불리한 정황들이 드러난 만큼 법리로 맞서기 보다는 재판의 불공정성을 최대한 부각시켜 보수세력의 결집을 시도하고, 그를 바탕으로 판을 크게 뒤흔들어 보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한  법조계 전문가는 “박 전 대통령과 변호인단의 움직임을 두고 당사자들은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면서도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을 두고 ‘정치적 음모’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거의 없다”고 조언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과 변호인단의 돌출행동이 사법부의 판단을 이른바 ‘정치적 결단’으로 혼란스럽게 하려는 의도라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재판에 대한 반발과 재판부에 대한 압력이 아니라 국민에 대한 속죄”라며 “한편으로 새 정부도 ‘적폐 청산’의 분명한 경계를 제시하는 노력에 힘을 기울여 반발에 편승하는 토양을 더 이상 제공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다른 전문가는 “특검 수사 당시 대면조사에 응하지 않고 헌재 탄핵 심판 때 출석을 거부하는 등 불성실한 태도를 보인 점에 비춰볼 때 박 전 대통령의 무죄 주장과 재판부 비판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보복 프레임

그는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재판과 구속기간 연장을 정치보복이라고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잘잘못을 따지는 모든 행위가 정치 보복이라면 아예 재판을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며 “박 전 대통령이 정치 공방이 심해지고 사회 분열이 부추겨질 것임을 알고서도 정치보복을 언급했다면 전직 대통령으로서 무책임하다는 지적을 피할 길이 없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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