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전속결’ 국회보좌진 증원 내막

2017.11.29 17:27:12 호수 1142호

인턴 줄이고 별정직 신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국회 보좌진 증원 문제가 논란을 낳고 있다. 국회의원 특권 늘리기라는 지적이 있는가 하면, 국회 비정규직 문제를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감도 들려온다. 국회의원들은 해당 법률개정안 통과에 속도를 냈다. 그러나 ‘청운의 꿈’을 안고 의원실 채용을 준비하던 사람들은 ‘날벼락 같은 소식’이라고 우려를 표한다.
 



그야말로 속전속결이다. 국회 운영위원회(이하 운영위)는 지난 17일, 전체회의를 열고 국회의원 사무실에 8급 상당의 별정직 공무원 비서 1명을 증원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일부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23일, 해당 개정안을 처리했다. 개정안은 본회의 의결마저 쉽게 넘어섰다.

밥그릇 챙기기

2명이던 의원실 인턴을 1명으로 줄이는 대신 8급 상당의 별정직 공무원을 신설한다는 게 개정안의 주요 골자다. 개정안의 제안 이유는 다음과 같다.

‘현재 근무 중인 대부분의 인턴이 기존 보좌직원과 유사한 업무를 하고 있으며 12개월 이상을 근무하고 있음에도 상당수가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한 채 11개월 쪼개기 계약으로 계약기간을 연장하여 근무하고 있다. 

이처럼 국회 인턴제도는 본래 취지와 달리 고용을 담보로 청년들의 열정을 강요하고 편법적으로 비정규직 노동계약을 연장하는 등 구시대적 노동문제를 답습하고 있다. 더욱이 국회사무처의 인턴제도 변경안에 따라 현재 총 근로 기간이 2년 이상인 다수의 인턴이 2018년 부로 자동으로 해고되고 재고용되지 못할 예정이므로 법률 개정이 시급한 실정이다.’ 


실제 내년 1월 국회 의원실 인턴 88명이 해직되고 내년 연말이면 전체 인턴의 45%인 256명의 해직 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개정안은 무난히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의원들 입장에서 반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계약기간이 정해진 인턴 1명이 줄어든 대신 오랫동안 함께 일할 수 있는 보좌진 1명이 늘어나는 데 마다할 국회의원은 없다. 

2000년 이후 보좌진을 증원하는 개정안은 무리 없이 통과돼 왔다. 2000년 이전까지 5명이었던 보좌진은 2000년에 6명(4급 1명 증원), 2010년에 7명(5급 1명 증원), 2017년 8명(8급 1명 증원)으로 증가했다.

물론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번 개정안이 ‘밥그릇 챙기기’의 일환 아니냐는 지적이다. 소방관, 경찰관 등 공무원 증원은 예산을 이유로 인색한 반응을 보였던 국회의원들이 자신들 수족(?)을 늘리는 데는 관대하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숫자가 300명이므로 8급 1명을 증원하면 별정직 공무원 300명이 늘어난다. 이들 300명에게 1년에 지급되는 급여만 67억원의 혈세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데도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이렇다 할 논쟁이 없이 통과시키기에 급급하다는 비판이다.

일부 의원들은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데 급급해 국민의 의견을 무시해도 된다는 식의 발언으로 논란을 가중시켰다. 

지난 20일 국회 운영위 속기록을 보면 국민의당 모 의원은 “어차피 여론이라는 것은 며칠 지나면 없어지고 바꿀 때는 제대로 바꿔버려야 한다. 이참에 4급이 둘이니 3급으로 하나 바꾸고, (인턴을) 8·9급 정규직으로 딱 전환하자”고 주장했다. 

또 다른 의원은 “국회가 너무나 언론의 눈치를 보고 당당하지 못한 것 같다. 우리 다 새벽 6시에 나와서 힘들게 일하지 않느냐. 3D 업종 중 하나인데 국민 눈치 보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인턴 1명↓ 비서 1명↑
혈세 67억원 소요된다

모든 국회의원이 개정안에 찬성한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바른정당 지도부는 최근 반대 입장을 밝혔다. 유승민 대표는 국회서 열린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서 “국민의 신뢰나 평가가 직결되는 문제라 생각해 이 문제에 대해 개인적으로 분명히 반대 의사를 가지고 있다”며 “당 입장을 정하기 위해 노력해서 말씀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박인숙 최고위원도 “국회가 최순실 사태, 탄핵 전에도 가장 신뢰받지 못하는 기관으로 돼있는데 만장일치로 이런 법안을 통과시키는 건, 설사 (보좌관 증원이) 필요하더라도 이 시점에는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개인적으로 반대한다”고 밝혔다.

국회 의원실 인턴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반대 의견이 주를 이룬다. 

모 준비생은 “기존 2명을 뽑던 것에서 1명으로 줄어드니 반 토막이 난 것 아니냐”며 “그만큼 진입 장벽이 높아지는 셈인데 계속 (국회 인턴으로) 지원을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8급 증원이 ‘국회 인턴 처우 개선’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미 국회 인턴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혼재하고 있다. 8급 증원에 기대감을 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의원실의 모 인턴은 “능력이 인정되면 8급으로 승진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다른 의원실 인턴은 “인턴을 하던 사람이 8급으로 올라간다는 보장이 없다”며 “8급을 지역 의원실서 일하는 행정직원에게 줄 것이란 소문도 돌고 있다”고 토로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대안으로 5급 비서관을 줄이는 대신 3급 보좌관을 증원하는 안이 거론되고 있다. 3급 보좌관 증원은 보좌진 사기 증진 및 입법부의 위상 강화, 행정부의 협조를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이 국회 내 꾸준히 제기되던 안이다. 

그렇게 되면 3급 보좌관 1명, 4급 보좌관 2명에 5급 비서관 1명, 6급·7급·9급 비서 각 1명씩으로 보좌진 수가 늘어나는 문제를 잡을 수 있다. 또 인턴은 기존의 2명을 그대로 채용해 국회 보좌진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길을 열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 인턴제도는 청년들에게 의정활동 체험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1999년부터 운영돼왔다. 이후 인턴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국회 보좌진으로 승진할 수 있는 ‘기회의 문’으로서 역할을 해왔다.

찬반 혼재


그러나 인턴제도는 씁쓸한 이면을 가지고 있다. 인턴이 받는 월급은 120만원(실수령액 기준) 수준. 그럼에도 6급·7급·9급 비서 못지않은 업무 강도를 견디고 있다. 결국 인턴의 처우 개선을 위해 단순히 보좌진 수를 늘리기보다는 이들의 근무 여건과 복지 향상, 공정한 평가에 의한 승진 기회를 제공하는 등의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광주시의회 이유 있는 반발

광주시의회 의원들이 국회의원 보좌진 증원에 대해 자신들의 잇속을 채우기 위한 꼼수라고 비난했다. 지난 21일 시의회는 성명에서 “67억원의 혈세가 들어가는 것으로 입법과정에서 1만여명의 국민이 반대 의사를 나타내기도 했다”며 “미국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보좌관 수가 많다”고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이들은 또 “지방의회는 입법활동을 보좌하는 전담인력이나 보좌조직이 없고 정치후원금 모금도 허용되지 않아 지방의회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하는 일이 요원하다”고 개선을 촉구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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