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보다 많은’ 성인 실종 미스터리

2017.10.30 10:46:27 호수 1138호

감쪽같이 사라지는 어른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일반적으로 ‘실종 사건’이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아동을 떠올린다. 영구미제로 남은 ‘개구리 소년’ 사건이 도룡뇽을 잡으러 산에 올랐던 소년 5명의 실종에서 비롯된 것도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미쳤다. 문제는 어린아이가 없어지는 것 이상으로 성인도 자의 혹은 타의로 종적을 감추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라지는 어른들’을 <일요시사>가 추적해 봤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으로 경찰의 실종수사 체계의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다. 붕괴된 체계는 여중생 김모양의 죽음으로 되돌아왔다. 피해자의 가족은 딸을 ‘살릴 수 있었다’는 후회를 평생 안고 살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번 사건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경찰은 실종수사 체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개선안 냈지만…
수사체계 붕괴

서울지방경찰청의 감찰 결과, 이번 사건을 접수하고 수사한 중랑경찰서의 초동 대응과 지휘·보고 체계 전반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중랑서는 이영학에게 살해당한 여중생 김양의 실종신고 접수와 처리를 포함해 신고자인 김양의 어머니 조사, 현장 출동, 보고체계 가동 등 초동 조치가 전체적으로 미흡했다는 지적을 숱하게 받아왔다.

실제 감찰 결과, 신고를 받은 중랑서 망우지구대 경찰관은 신고자인 어머니를 상대로 김양의 행적 등을 조사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머니가 지구대서 이영학의 딸과 통화할 때도 내용을 귀담아듣지 않아 핵심 단서를 확인할 기회를 놓친 것으로 나타났다.

규정에는 실종신고 접수 후 범죄나 사고 관련성이 의심되면 현장에 출동해야 한다고 규정돼있지만 중랑서 여성청소년수사팀(여청팀) 경찰관은 하지 않았다. 


이들은 지난달 30일 오후 11시20분경 김양의 어머니가 112신고를 해 출동 지시가 내려졌지만 무전으로 “알겠다”고만 답하고 사무실에 계속 앉아있었다. 이날 총 4건의 실종신고가 접수됐지만 여청팀은 단 한 번도 출동하지 않았다. 

이 과정서 실종신고가 접수된 또 다른 한 사람은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지난 23일 이번 사건서 문제된 실종수사 체계를 개선하겠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날 발표한 ‘실종수사 체계 개선방안’에는 보고 및 지휘체계 미흡 부분에 대한 대책으로 모든 실종사건 발생 시 경찰서 여청과장에게 보고하고, 경찰서장에게는 범죄 의심이 있는 경우 즉시 보고하도록 했다.

아동실종 줄고 있는데
성인실종 되레 늘어나

초동조치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18세 미만 아동과 여성에 대한 실종신고가 접수되면 여청·수사·형사·지역경찰이 현장에 공동 출동해 소재 발견을 위한 수색과 범죄 혐의점 확인을 위한 수사를 동시에 진행하도록 했다.

문제는 경찰이 내놓은 개선방안이 아동과 여성의 실종사건에 국한돼있다는 점이다.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 찾기 시민모임(이하 전미찾모) 회장은 “어금니 아빠 사건으로 아동 실종수사에 대한 경찰의 무능이 대대적으로 드러났다”며 “법 체계가 갖춰진 아동실종도 이런 상황인데 사각지대에 놓인 성인 실종은 어떻겠느냐”라며 탄식했다.

경찰청 경찰통계연보에 따르면 2015년 신고가 접수된 실종아동은 1만9428명이다. 정신지체장애인(8311명)과 치매질환자(9046명)를 합치면 3만6785명이다. 

이에 비해 가출인으로 분류된 18세 이상 성인 실종신고 접수자는 6만3471명에 달했다. 아동실종 접수 건수가 2012년 2만7295명서 2015년 8000여건 가까이 줄어든 데 반해 성인 실종은 2012년 5만건서 2015년 1만3000여건 이상 늘어났다.

경찰 입장에선 범죄 가능성이 드러나지 않는 한 성인 실종자를 ‘가출자’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실제 2015년 접수된 성인 실종자의 95% 이상이 단순 가출로 판명, 자진 귀가했다. 


실종신고가 접수된 후 당사자가 24시간 안에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몇 년간 반복적으로 목격했기 때문에 ‘성인 실종=가출’이라는 사고가 생겼다는 것.

실제 지난해 9월 열흘 넘게 연락이 두절돼 가족을 애타게 했던 대전 여대생은 단순 가출로 확인됐다. 당시 대전 서부경찰서는 19세 박모양과 남자친구를 전남 여수의 한 공중전화 박스 인근서 찾아냈다. 

박양은 경찰이나 가족이 추적할까 두려워 집을 나간 다음날 대전 문창교 인근에 휴대전화를 초기화해 버렸다고 경찰 조사에서 진술했다.

2012년에는 서울 공덕역 인근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후 5일간 행적이 묘연했던 20대 여대생 김모씨가 할머니 집에 머물렀던 것으로 드러난 사례도 있다. 당시 누리꾼들은 SNS에 ‘공덕역 실종사건’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려 김씨의 행방을 찾았다. 
 

해당 사건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릴 정도로 높은 관심을 받았다. 김씨의 가족 역시 실종 당일 경찰에 신고하고 공덕역 주변에 전단을 배포하기도 했다.

이처럼 실종자가 범죄나 자살 등 사건에 연루되지 않고 단순 가출 등 해프닝으로 끝나는 사례가 대부분이라는 게 경찰의 입장이다. 그러나 문제는 나머지 5%에 있다. 실종자가 범죄 등에 얽혀 사망 상태로 발견되거나 ‘증발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미제사건으로 남는 경우다.

최근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20대 여성 실종사건이 그렇다. 지난달 24일 경북 안동 운흥동 안동탈춤축제장 옆 굴다리 부근서 20대 여성이 사라졌다. 이 여성은 실종 나흘 만에 물에 빠져 숨진 채 발견돼 충격을 줬다. 가족들은 실종 당일 신고를 하고 인터넷에 포상금까지 올렸지만 싸늘한 주검을 마주했다.

성인 실종 수사
법적 근거 약해

이 여성은 실종 전 남자친구와 함께 그의 집으로 간 것이 확인됐다. 남자친구는 “잠에서 깨보니 여자친구가 없어졌다”고 진술했다. CCTV 확인 결과, 낙동강변의 탈춤 축제하는 공연장서 멀지 않은 굴다리 주변을 혼자 지나간 것이 발견됐지만 그 이후로는 종적이 묘연했다.


지난해 12월에도 서울 홍대 클럽 인근서 20대 여성이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이 여성은 실종 이후 일주일 이상 흔적을 찾지 못했다가 실종 8일째 서울 망원한강공원 선착장 인근서 물에 빠진 채 발견됐다. 

실종 당일 CCTV에는 망원한강공원 지하보도로 걸어가는 그녀의 마지막 행적이 담겼다. 경찰은 타살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지만 이 여성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진 않았던 것으로 파악, 실족사에 무게가 실렸다.

지난해 3월 예비군 훈련을 마친 뒤 실종된 30대 남자가 시신으로 발견된 일도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신모씨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주민센터서 예비군 훈련을 받은 뒤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던 중 행방불명됐다. 

신씨의 누나는 “동생이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하기로 했는데 연락이 전혀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신씨는 실종 일주일 만에 분당의 한 건물 지하주차장 기계실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신씨는 군복을 입은 채 양손이 뒤로 결박된 상태여서 자살·타살 논란이 불거졌다. 시신이 발견된 기계실 공간은 성인 남성이 몸을 숙이고 땅을 짚어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비좁은 곳이다. 신씨가 강제로 끌려갔다면 외상이 남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신씨의 몸에는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의 외상은 없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종됐다 사망
아예 못 찾기도

이달 22일에는 강원도 철원서 운동하러 나갔던 60대 남성이 실종됐다가 9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발생했다. 

철원경찰서에 따르면 이 남성은 13일 오후 2시께 집을 나갔으나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CCTV 영상에는 그가 공원서 산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확인됐다. 올해 초 뇌출혈 수술을 받고 집에서 요양 중이던 그는 실종 당시 “운동하러 가겠다”며 인근의 공원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 가출이나 실종 후 사망 사건은 생사 여부라도 알 수 있는 반면, 미해결 사건의 경우 실종자 가족들은 속이 타들어갈 수밖에 없다. 실종 사건의 경우,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와 좋지 않은 일에 휘말렸을 가능성에 대한 불안 등 어떤 식으로든 결과가 나온 사례보다 가족들의 정신적 고통이 훨씬 크다고 알려져 있다.

실종사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실종자의 흔적이 점차 사라지기 때문에 초기 골든타임을 놓치면 장기 미해결 사건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2015년 접수된 6만여건의 실종신고 사례 중 1712건이 미해결 사건이다. 지난해에는 상반기에만 3만3676건의 성인실종 신고가 접수됐는데 이 중 1691건이 미해결 사건으로 남았다.

지난 5월 부산서 사라진 30대 신혼부부의 사례도 보면 실종된 지 1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수사에 진척이 없다. 

부산 남부경찰서에 따르면 부부가 아파트로 귀가하는 모습은 엘리베이터 CCTV에 찍혔지만 집 밖으로 나가는 장면은 포착되지 않았다. 경찰이 남편 아버지의 신고를 받아 부부의 집 안으로 들어갔지만 그들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의 휴대전화 조회 기록에 따르면 남편은 부산 기장군, 아내는 서울 강동구 천호동 부근서 휴대전화 전원이 꺼졌다. 또 실종 이후 신용카드나 인터넷 등도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부부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계단이나 사각지대 등을 통해 아파트를 빠져 나갔을 수 있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단서가 없어 수사는 난항에 빠진 상태다.

단순 가출 대부분이지만
실종 후 사망·증발도↑

지난해 11월에는 제약회사 임원이 검찰 조사를 받던 중 실종돼 행방이 오리무중 상태에 빠졌다. 연락이 두절되자 가족들은 실종신고를 했다. 실종신고 5일 후 실종자의 자택서 약 30분 거리인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북한강변서 자동차만 발견됐다. 차량에선 실종자의 소재를 추측할 만한 단서가 나오지 않았다.

보통 실종 직후 12시간 늦어도 48시간이 실종 사건의 골든타임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실종신고 후 12시간이 지나면 끝내 못 찾을 확률이 58%에 이른다. 24시간이 지나면 68%, 일주일 뒤에는 89%까지 올라간다. 
 

나주봉 전미찾모 회장은 “실종을 인지한 후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 성인 실종은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실종아동법(실종아동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해 보호받는 사람은 ▲실종 당시 18세 미만인 아동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 또는 정신장애인 ▲치매 환자 등이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성인 실종자의 경우 첫 단계인 휴대폰 위치추적부터 난관에 빠진다. 범죄 피해가 의심되거나 자살 징후가 발견될 때 정도만 예외다. 휴대폰 위치 추적이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높아 대상과 요건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나 회장은 “내가 지금 없어진다 해도 경찰이 나를 찾아 나설 법적 근거가 없다”며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 이후 여성 실종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지만 그래도 아동과 치매환자, 지적장애인보다 후순위”라고 꼬집었다. 

이어 “총리실이나 대통령 직속기구로 ‘실종자 찾기 종합센터’(가칭) 신설 후 ▲18세 미만 실종 전담팀 ▲치매환자·지적장애인 실종 전담팀 ▲성인실종 전담팀 ▲입양 관련 전담팀 등을 운영하면 실종사건이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등 15명의 의원들은 지난해 실종아동법 적용 대상자에 성인과 노인을 포함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성인실종 사건이 급증하고 있지만 이를 규율하는 법률이 없어 조속한 발견과 복귀에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관련법 개정 발의
경찰 “실익 없어”

보건복지부는 “실종자의 범주에 아동, 장애인, 치매환자 외에 일반 성인을 포함하는 것은 단순히 대상의 일부 확대 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실종자법을 제정하는 것으로, 소관 부처 등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현행 실종아동법은 소관부처가 보건복지부다.

경찰청은 “성인실종자 중에서도 범죄 의심 또는 요구조자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수색 및 수사를 실시하고 있다”며 “법률 개정의 실익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성인의 경우 자발적·비자발적 판단이 어렵고 프라이버시나 거주 이전의 자유 침해 논란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입장이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소영이를 찾습니다”

“제 속도 이렇게 타들어 가는데 부모는 오죽하겠습니까?”

지난달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낙산대교 인근서 실종된 김소영(29)씨의 외삼촌 A씨는 이렇게 말했다. A씨는 외조카인 소영씨의 행방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사건은 지난달 1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천 부평에 살던 소영씨는 강원도 양양으로 갔다. 동반자살을 하기 위해서였다. 사건 당일 오전 8시 낙산대교 위에서는 남성과 여성용 슬리퍼 2켤레가 발견됐다. 함께 발견된 수첩은 소영씨의 것으로 확인됐다. 오전 8시51분께 남성의 시신은 낙산대교 아래서 발견됐지만 소영씨는 행방이 묘연했다.

A씨에 따르면 “사건이 발생하고 3시간이 안 돼서 주변에 그물을 쳤기 때문에 만약 죽었다면 거기에 걸렸을 것”이라며 “민간 수중 잠수사, 119대원, 군인까지 동원했는데 발견하지 못했다. 나도 그렇고 가족들 역시 99.9% 소영이가 살아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소영이는 어릴 때 함께 산 기억도 있고 해서 가장 예뻐하는 조카”라며 “지금 마음 같아서는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소영이를 찾고 싶은 심정”이라고 전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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