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노량진 고시촌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2011.07.13 09:46:39 호수 0호

오로지 꿈 위해 모든 것 버린 청춘들로 ‘넘실넘실’

[일요시사=이성원 기자] 노량진 하면 떠오르는 것이 수산시장이다. 하지만 요즈음은 ‘노량진 고시촌’이란 이름이 더 잘 알려져 있을 만큼 전국 각지에서 청운의 꿈을 품고 시험을 준비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대한민국의 또 하나의 문화를 창출하고 있는 노량진 고시촌. 그 곳 사람들의 일상을 파헤쳐본다.

임용고시·공무원 준비 등 각종 시험 준비로 분주
방학 맞아 독서실·고시원 등 빈방 하나도 없어

요즘 노량진은 신림동과 함께 묶여져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곤 한다. 이 두 동네는 거리상으로는 많이 떨어져있지만 공통점이 있다. 바로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노량진은 최근 9호선까지 개통이 되며 한결 이동하기도 수월해졌다. 지난 6일 점심 때 쯤 노량진을 찾았다. 역에서 내려 육교에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온통 20대의 청춘들이다. 이들이 더운 여름에도 이곳을 활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만의 이유가 있는 듯 했다. 오고가는 사람들 속에 뭔가 그들만의 비슷한 점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의 복장은 참으로 수더분하다. 한마디로 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스타일로 옷을 입는다. 츄리닝을 입고 슬리퍼를 끄는 사람에서부터 모자를 눌러쓴 사람, 뿔테 안경을 쓴 사람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이들은 멋과는 담을 쌓은 또 다른 세계의 사람들같아 보였다.



합격 위한 필사의 노력
“빨리 떠나고파”

손에는 저마다 책과 프린트물을 든 사람들이 많았고,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면 어깨에 배낭을 메고 어디론가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길가에 빼곡한 학원들이다. 특히 임용고시와 경찰·9급·7급 공무원학원들이 많이 보였다.

임용고시학원에 들어가 보니 다음 수업을 기다리며 강의실 밖에서 서성이는 학생들로 북적인다. 이곳에서 만난 김모(25·여)씨는 “임용고시를 준비한 기간은 1년밖에 안되는데 최대한 빨리 합격해서 이곳을 떠나고 싶다”며 “노량진에 오래 있다 보면 이러한 생활에 젖어들어 안주할 것 같은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7급 공무원을 준비하는 유모(30·남)씨는 “군산에서 이곳에 올라온 지 벌써 4년째인데 시험에 붙기 위해 새벽 4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공부만 한다”며 “꼭 합격해서 시골에서 고생하시는 부모님 호강시켜드리고 싶다”고 애틋한 마음을 나타냈다.

노량진에 이토록 많은 학원에서 공부하는 고시생들이 있지만 시험에 합격하는 인원은 한정되어 있기에 이들의 바람 또한 간절해 보였다.

고시생들에게 간절한 합격이라는 소식을 주기 위해서는 그들이 생활할 수 있는 환경 또한 제공되어야 한다. 이렇듯 노량진하면 또 빼 놓을 수 없는 게 고시원과 독서실이다. 특히 여름방학을 맞아 지방에 있는 대학생들까지 다수 올라오며 고시원에는 방이 없을 정도로 성수기를 맞고 있었다.

최모(23·여)씨는 “대전에 있는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데 임용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방학을 맞아 올라왔다”며 “2달 정도 노량진에 있으면서 공부하려고 고시원을 알아봤는데 자리가 없어서 친척집에 머무르면서 통학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노량진에 고시원과 독서실은 많으나 방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인 셈이다.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시험을 준비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그만큼의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고시원 비용 외에도 각종 추가 비용들이 들어 공부하는 것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모(28·남)씨는 “매달 고시원에 30만원을 내고, 독서실 이용하는데 11만원, 이 밖에 학원비, 교재비, 식대 등을 합치면 대략 한 달 80만원 정도 나간다”며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 받은 것 같다”고 했다.

노량진에 있는 고시생들 중에는 공부를 계속 하기 위해 학원 조교나 총무, 음식점 알바 등으로 돈을 벌면서 생계를 이어나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고시원의 한 관계자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공부하는 고시생들을 보면 마음이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하다”며 “젊었을 때 자신들의 꿈을 위해서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나중에 무엇을 하던지 간에 좋은 산 경험이 될 것이다”고 밝혔다.

노량진 고시원과 독서실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꼭 해야 하는 공부와 또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 필요한 돈 가운데서 균형을 맞추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밥값
가장 싼 곳으로 정평

무엇보다 노량진 고시생들은 돈을 아끼려고 무던히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노량진에 있는 음식점들에게도 여파를 끼친 듯하다. 정오 12시30분쯤 노량진역 주변 거리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점심시간을 맞아 밥을 먹으러 나온 고시생들로 북적였기 때문이다.

노상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노량진만의 독특한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넓적한 종이컵에다가 밥을 떠서 파는 것이 바로 그것. 종류도 김치볶음밥, 비엔나소시지 볶음밥, 회덮밥, 오무라이스 등 매우 다양했고 가격도 2000원으로 저렴했다. 곱빼기는 500원만 추가해서 받는 곳도 있었다. 2000원의 한 끼 식사는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별천지의 가격이다.

이곳에서 만난 오모(28·여)씨는 “시험준비를 하루만 하는 것도 아니고 장기적으로 계획하고 하다 보니 당연히 음식 값도 절약할 수밖에 없게 된다”며 “노량진은 고시생들이 많다보니 가격이 저렴하고 양도 많은 이런 가게들이 많아져 먹는 것에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점심시간 뷔페식당 북새통, 노상점심 싼 값에 매력
학원가에서 열애하며 공부로 인한 외로움 달래기도

2000원을 내고 받은 종이컵에는 한 가득 밥이 담겨 있어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해 보였다.

이번엔 학원가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긴 줄이 끝없이 늘어져 있다. 자세히 보니 뷔페식당이라는 곳이었다. 이곳은 한 끼 식사를 뷔페식으로 다양하게 먹을 수 있어 주변 고시생들에게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안쪽을 들여다보니 식권가격이 쓰여 있었다. 1장에 4000원이고, 1달은 18만원, 10장은 3만3000원 등 기간별 식권가격이 차이가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곳을 찾은 전모(26·여)씨는 “고시원 생활을 하다 보니 잘 챙겨먹지도 못하는데 여기서 저렴한 가격에 다양하게 먹을 수 있어 주변 친구들과 자주 이용한다”며 “노량진에서 뷔페식당은 고시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 중의 하나다”고 말했다.

이처럼 노량진은 고시생들의 눈높이에 맞춘 음식점들이 큰 인기를 누리며 그들의 삶과 함께 하고 있다. 이 밖에도 각종 잡화상품점도 눈에 띄었다. 고시생들이 필요로 하는 문구류나 슬리퍼, 또한 각종 시험 족보물까지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다양한 것으로 넘쳐나는 곳이다.

공부하다 눈 맞은 남녀들
“공부하며 사랑도 쌓고”

노량진을 배회하다보니 손잡고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이들의 모습을 따라가 보니 학원에서 같이 수업을 듣고 나와서 밥을 먹는다. 꾸미지 않은 편안한 복장으로 손을 꼭 잡은 채 데이트 겸 고시준비를 하는 커플들이 속속 보였다. 막 학원 수업을 마치고 주변 분식집으로 들어간 한 커플을 따라가 보았다. 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 커플은 사귄지 8개월 된 커플이란다. 9급 시험을 준비하던 중에 학원 스터디모임을 하다가 눈이 맞아 사귀고 있다고 말했다.

남자친구인 류모(31·남)씨는 “시험을 준비한지 2년째인데 여자친구가 있어서 힘이 된다”며 “시험준비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도 풀 데가 별로 없었는데 여자친구를 만나고 나서는 함께 그 기분을 공유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보통 학원에서 그룹스터디를 하거나 함께 강의를 듣다가 커플이 발생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며 “주변 친구들을 보면 여자친구가 생긴 이후 공부에 더 집중을 못하는 사람도 있어 노량진에서의 연애는 각자만의 소관인 것 같다”고 밝혔다.

이 커플은 밤에 각자 고시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하루종일 같이 움직이며 밥 먹고 공부한다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인근 카페의 주인은 “커플들이 대부분 이 곳을 방문한다”며 “공부하느라 외로울 텐데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모습이 참 보기 좋은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이처럼 노량진은 각자의 꿈을 이루려는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고시생들에게 공부는 물론, 그 나이 때의 관심사인 사랑까지도 함께 잡으려고 욕심을 내는 오묘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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