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떠도는 신사옥 괴담

2017.09.25 10:22:09 호수 1132호

좋다고 이삿짐 쌌다가…울고 웃는 기업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초고층 빌딩을 지은 회사나 도시는 경제위기나 슬럼프에 시달린다는 속설, 이른바 '마천루의 저주'는 과학적으로 일리가 있는 얘기다. 경제는 사이클이 있기 때문에 이런 초고층 건물 투자가 최고점을 찍을 때 경기가 불황으로 돌아설 타이밍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속설은 단지 초고층 빌딩에 국한되는 게 아니다. 더 큰 사옥으로 옮기고 새롭게 출발한 몇몇 회사들 역시 비슷한 속설에 신음하고 있다. 
 



신사옥에 입주한 기업들의 상반기 경영 실적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NH농협생명과 쿠팡은 저조한 실적을 기록한 반면 LG이노텍, 에어부산 등은 견고한 성적을 기록하며 묘한 대조를 보였다.

순탄치 않은
새집 생활

지난 3월 서대문구 소재 옛 임광빌딩(2개동)을 매입해 신사옥을 마련한 NH농협생명은 입주 한 달 만인 4월 덩치에 걸맞지 않는 성적표를 받았다.

NH농협생명의 자산규모는 4월 기준 62조4945억원으로 삼성생명(249조5803억원), 한화생명(107조7162억원), 교보생명(92조8337억원)에 이어 업계 4위 수준이다. 그러나 NH농협생명의 당기순이익은 321억원으로 업계 10위에 불과하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누적 당기순이익은 삼성생명이 6310억원으로 1위였으며 한화생명이1809억원으로 2위를 차지했다. 


이어 교보생명(1793억원), 동양생명(1159억원), ING생명(830억원), AIA생명(804억원), 메트라이프생명(752억원), 라이나생명(647억원), 푸르덴셜생명(594억원), NH농협생명(321억원) 순이다. NH농협생명은 총자산 규모의 15분의 1 수준에 불과한 라이나생명보다 절반 가까이 낮은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셈이다. 

NH농협생명은 ‘총자산수익률(ROA)’ 역시 당기순이익 규모 상위 10개사 중 가장 낮다. ROA는 수익성을 알아보는 대표적인 지표로 총자산서 당기순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을 의미한다. 

ROA가 높다는 것은 기업이 보유한 자산에 비해 이익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며 반대로 ROA의 수치가 낮다는 것은 자산 대비 수익성이 낮음을 의미한다. 
 

NH농협생명의 올해 1분기 기준 ROA는 0.21%로 10개사 중 꼴지다. 4년 전 동기(0.19%)보다 0.02%p. 증가한 수치지만 해당 기간 동안 가장 낮은 ROA를 기록한 NH생명보험은 ‘4년 연속 최하위’라는 불명예를 기록했다.

사옥 이전에 돈 쓰느라 ‘허우적’
보금자리 바꾸고 빨간불 켜진 살림

지난 4월 송파구 신천동 신사옥으로 이전한 쿠팡은 극심한 재무위기에 처해 있다. 올해도 대규모 적자를 기록할 경우 자본잠식이 우려될 정도로 자산건전성에 빨간불이 들어온 상태다. 지난해 말 기준 쿠팡의 결손금은 1조2000억원으로 주식발행초과금 등 자본금을 대부분 잠식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투자한 1조1000억원은 이미 소진한 상태다. 현재 쿠팡의 자본총계는 3200억원으로 전년 4240억원 대비 25% 감소했다. 이에 따라 올해도 예년 수준의 5000억원대 적자를 낼 경우 자본잠식 위험은 높아진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적자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쿠팡이 임대료가 비싼 잠실 사옥으로 이전한 것을 두고 업계는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쿠팡이 입주한 신천동 타워730는 기존 삼성동 사옥의 2.2배 규모다. 

쿠팡은 이 건물 지상 8층부터 26층까지 19개 층을 사용하고 있다. 쿠팡의 잠실 신사옥은 보증금 1000억원, 월세는 연간 약 150억원(관리비 포함)을 지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돈 끌어다 쓰고
빚더미 앉을 판


롯데그룹은 지난 4월 국내 최고,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높은 ‘롯데월드타워’를 정식 개장했다. 2010년 말 착공한 이 건물은 지하 6층, 지상 123층 규모로 높이가 555m에 달한다. 공교롭게도 롯데월드타워가 개장한 후 롯데그룹은 각종 구설서 자유롭지 못했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부지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중국에선 뭇매를 맞았고 총수 일가는 경영 비리 혐의로 법정에 섰다. 실제로 지난 3월21일 <블룸버그>는 롯데그룹 총수 일가가 법정에 서고 한국이 안팎의 위기에 처한 걸 마천루의 저주에 빗댔다. 
 

게다가 롯데월드타워에 입주 이전부터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 형제간 경영권 다툼으로 몸살을 앓았다. 여기에 올 상반기 실적도 추락했다. 롯데그룹 대표기업인 롯데쇼핑은 상반기 매출이 3% 줄고, 영업이익은 22% 감소했다.

실적부진을 겪고 있는 네오위즈는 옛 사옥 매각에 골몰하고 있다. 네오위즈가 매물로 내놓은 분당사옥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192-3번지에 위치한다. 

대지면적 2599.90㎡, 연면적 4337.13㎡로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다. 일반상업지역으로 2016년 기준 공시지가는 1㎡당 509만원이다. 공시지가 합계는 132억3095만원이다. 네오위즈는 분당사옥 매각 예정가를 175만원으로 책정해 시중에 내놨다. 

지난해 상반기 반짝 회복됐던 실적이 하반기 다시 악화되면서 다시금 매각의 불씨가 당겨졌다.

네오위즈게임즈는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1910억원, 영업이익 235억원, 순이익98억원을 각각 기록하며 2014년과 2015년에 걸친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온 듯 보였다. 그러나 하반기 매출이 상반기대비 대거 축소되고, 순손실 63억원 등을 기록하며 다시 실적 부진에 빠졌다.

네오위즈홀딩스는 상황이 더 좋지 않다.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2017억원, 영업이익 224억원, 순손실 84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상반기에는 호실적을 달성했지만 역시 하반기가 문제였다. 상반기대비 하반기 매출이 큰 폭으로 줄어들고, 순손실 261억원이 발생했다.

신사옥 입주를 앞두고 있는 기업들 역시 경영환경이 우호적이지 않다. 


올해 말 용산구 신사옥에 입주하는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2분기 LG생활건강에 매출 1위 자리를 내주며 체면을 구겼다. 상반기 기준으로는 아모레퍼시픽이 LG생건보다 매출이 1375억원 많지만,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4058억원서 격차가 크게 좁혀졌다. 

삼성엔지니어링은 2012년 신사옥 이전 후 이듬해 1조원 이상의 대규모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2011년 6300억원이던 영업이익은 경기침체와 저유가 등으로 지난해 700억원으로 떨어졌다. 올 상반기에도 매출과 영업이익 증가율은 모두 -11.3%, -17.8%로 좋지 못했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 삼성동에는 높이가 569m에 달하는 국내 최고 빌딩 현대자동차 GBC를 짓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옛 한전 부지 일대에 조성하는 건축 규모는 총 연면적 92만6162㎡. 

현대차 GBC만 해도 지상 105층에 연면적 56만443㎡에 달한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GBC는 빠르면 올 하반기, 늦어도 내년이면 착공해 2021년경 프로젝트가 전반적으로 마무리될 전망이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좋지 않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들은 신용등급 강등의 위기로 내몰렸다. 국제 신용평가사 S&P(스탠다드앤푸어스)는 지난 8일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의 신용등급을 ‘A-’로 각각 유지하면서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각각 하향한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3곳은 신용등급을 유지했지만 신용등급 전망이 ‘부정적’으로 떨어지면서 향후 1~2년 내 이뤄지는 S&P의 신용등급 평가서 신용등급이 떨어질 수도 있다. 

옮겼다 하면
적자 수두룩

반면 KEB하나은행, LG이노텍, 에어부산, 대신증권 등은 사옥 이전과 함께 더 잘 나가는 회사로 분류된다. 

지난 1일 KEB하나은행은 서울 을지로 옛 외환은행 본점 건물에 있던 본사를 을지로입구역에 접한 신사옥으로 옮겼다. 을지로 신사옥은 기존 대비 사용면적이 60%로 증가된 지상 26층, 지하 6층, 연면적 1만6330평으로 신축됐다. 

KEB하나은행의 통합 이후 성과를 살펴보면 실적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KEB하나은행은 올해 상반기 9988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5.0% 증가한 수준으로, 2015년 은행 통합 이후 반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이다. 
 

두 은행이 통합하기 직전 2015년 상반기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각각 5417억원과 2010억원의 순익을 기록한 것과 비교했을 때 34.5%가량 늘어난 규모다. 

직원 1인당 생산성도 향상됐다. 통합 초기인 2015년말 KEB하나은행의 1인당 생산성(충당금적입전이익)은 1억200만원이었으나 올해 상반기 1억1400만원으로 올라갔다. 은행의 건전성을 나타내는 고정이하여신비율 역시 2015년 말 1.21%서 올해 상반기 0.72%로 개선됐다. 연체율도 같은 기간 0.53%서 0.33%로 하락했다.

잘 되는 집은 옮겨도 잘된다
다른 유형의 ‘마천루 저주’

지난 3월 LG서울역빌딩으로 이전한 LG이노텍은 상반기 매출이 29% 늘고, 영업이익은 흑자전환했다. 상반기 주가 상승률은 86.7%로 LG그룹 계열사 중에서 가장 높았다. 듀얼카메라 모듈의 독점적 공급 지위가 공고하게 유지되면서 하반기 실적은 더욱 좋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5월 강서구 대저동 신사옥으로 입주한 에어부산은 올 상반기 25.6% 증가한 매출을 기록했다. 수익성도 높아지는 추세다. 2015년과 2016년 영업이익률은 8~9%대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2014년은 5%대였고, 2013년은 1%대였다. 상반기에도 5.3%로 모기업인 아시아나항공 2.2%보다 높은 수준을 보였다. 신사옥 이전을 한 달 앞둔 4월에는 저비용항공사(LCC) 중 이착륙 지연율이 가장 낮다는 조사 결과를 받기도 했다.

대신증권은 연결 재무제표 기준 올해 1분기 순이익이 244억원으로 전년 대비 42.3% 증가했다. 주요 계열사 순이익이 크게 줄었지만 핵심 계열사 대신증권이 지탱해준 덕분에 전체 순이익은 전년 대비 크게 늘었다. 개별 실적서도 대신증권의 순이익은 같은 기간 24.6% 늘어난 315억원이었다.

새집 탓 안하는
실적 우등생들 

올 들어 증시가 회복되면서 대신증권의 실적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부문별 실적서도 브로커리지 부문 영업수익이 전년 대비 12.9% 감소했지만 트레이딩 부문에서 만회하면서 전체적으로 실적이 크게 상승했다. 

트레이딩 부문은 주가연계증권(ELS) 발행과 조기상환이 증가하면서 실적이 호전됐다는 설명이다. 대신증권은 지난 1월 새로 입주한 신사옥(대신파이낸스센터)에 대신금융그룹 내 모든 계열사를 입주시킨 후 물리적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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