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믿을’ 기상청, 왜?

2017.09.18 13:29:48 호수 1132호

슈퍼컴퓨터 두고 겨우 반타작이라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 11일 쏟아진 물폭탄으로 부산이 마비됐다. 이날 오전 6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5시간 동안 영도구 358㎜, 강서구 가덕도 283㎜, 사하구 257㎜, 남구 248㎜, 해운대구 232㎜ 등 기록적인 강우량을 기록하면서 도심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시간당 30㎜ 이상, 많은 곳은 최고 150㎜의 비가 쏟아질 것이라 예상했던 기상청 예보보다 2배 가까이 많은 양이다.
 



2012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해를 품은 달>서 여주인공의 직업은 ‘액받이 무녀’다. 액받이 무녀는 왕에게 일어나는 흉한 일, 즉 액을 받아 왕의 액운을 없애는 일을 한다. 드라마의 높은 인기는 ‘욕받이 무녀’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이번 여름 기상청이 담당한 역할이기도 하다.

여름마다 비난

기상청 오보는 그 역사가 오래됐다. 기상청보다는 ‘구라청’ ‘오보청’으로 불린 기간도 상당하다. 오죽하면 기상청은 자기들 체육대회를 하는 날에도 비가 올 거라는 말이 유행할까. 매년 여름 장마철이 되면 기상청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신경이 곤두선다. 기상청 역시 여름마다 쏟아지는 비난에 고개를 숙인다.

기상청의 오보 행진은 올해도 어김이 없었다. 지난 7월 충청권에 폭우가 쏟아졌다. 7월16일 시간당 90㎜가 넘는 비로 5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되는 등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청주의 도심 저지대는 곳곳이 침수됐다. 

7월15∼17일 사이 이어진 300㎜의 비에 청주는 1995년 8월 이후 22년 만에 자연재해의 희생양이 됐다. 농경지, 시설하우스는 물에 잠겼고 주택과 공장은 정전되는 등 천문학적인 피해가 발생했다.
 


비가 그치자 피해 상황과 원인 분석이 시작됐다. 그 과정서 첫 번째로 지적된 게 기상청의 오보다. 7월15일 기상청은 16일 충북부 지역에 30∼80㎜ 정도의 비가 내릴 것이라고 예보했다. 호우 예비특보는 충북 제천과 단양, 음성, 충주에만 발령했다.

예보 정확도 92% 주장
실제 적중률 46% 불과

기상 관측 이래 최대인 시간당 강우량(91.8㎜)을 기록한 충북 청주를 포함, 충남 천안과 세종은 예비특보 지역에 아예 포함되지 않았다. 여기에 16일 오전 7시부터 세종에 시간당 70㎜가 넘는 비가 내렸지만 기상청은 1시간이 지나서야 호우주의보를 발령하는 등 늑장대응으로 일을 키웠다.

충청권서 물폭탄이 터진 지 열흘도 안 돼 기상청 오보가 또 발생했다. 이번엔 수도권이었다. 지난 7월23일 오전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 장대비가 떨어졌다. 이날 비로 인천 남동구 구월동의 한 연립주택 반지하에 살던 90대 치매 노인이 침수된 집 안에서 사망했다. 전날 예보대로라면 수도권에 굵은 빗줄기는 없어야 했다.

기상청이 22일 오후 5시에 발표한 예보에 따르면 서울의 강수확률은 오전과 오후 각각 60%, 20%로 예측됐다. 피해가 컸던 인천의 경우 강수 확률은 오전, 오후 각각 30%, 20%에 불과했다. 경기 북부와 강원 영서지역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됐던 비는 서울과 경기 남부지역까지 덮쳤다.

이날 경기 고양의 누적 강수량은 155㎜, 서울·의왕 135㎜, 시흥 129㎜, 군포 121㎜, 광명 109㎜, 양주 107㎜, 인천 92㎜ 등 수도권 대부분 지역서 100㎜ 안팎의 큰 비가 내렸다. 당시 기상청 관계자는 “장마전선의 정체 현상 때문에 올여름 내내 국지적으로 비가 오고 있어 예측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올해 기상청이 빗나간 비 예측으로 체면을 구겼다면 지난해에는 폭염으로 빚어진 오보 논란이 있었다. 폭염 해제 시기를 두고 기상청이 잇따라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면서 시민들의 불만이 폭주한 것. 기상청 예보에 대한 불신이 커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난해 기상청은 8월15일을 기점으로 폭염이 한풀 꺾일 것이라 예측했지만 종료일은 18일로 늦춰졌다. 18일이 돼서는 21일을 기점으로 폭염이 해제된다고 말이 바뀌었다. 이후로도 폭염 종료일은 두 차례나 밀렸다. 시민들은 “더위보다 기상청 오보가 더 짜증난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지난달 22일 감사원이 발표한 ‘기상예보 및 지진통보 시스템 운영실태’에 따르면 기상청의 강수 적중률은 46%에 불과했다. 두 번에 한 번도 채 맞추지 못한다는 뜻이다. 기상청서 발표한 강수 예보 정확도인 92%와 비교하면 반토막 난 수치다. 

기상청이 말하는 정확도 92%는 비가 내린다고 예보해 실제로 비가 온 경우뿐만 아니라 비가 오지 않는다고 예보한 뒤 비가 내리지 않은 날도 예보를 맞춘 것이라고 산출한 결과다.


5년간 1192억 쏟아 부었지만…
위성 쏴놓고 기술 없어 무용지물

강우량이 집중되는 여름을 제외한 봄·가을·겨울에 비가 오지 않는다고 예보하면 맞을 확률이 높다. 이 때문에 연간 전체로 보면 정확도가 90%를 웃도는 현상이 발생한다. 시민들이 느끼는 체감 적중률과 기상청이 내놓은 수치가 다른 이유다.

감사원에선 정확도가 아니라 적중률을 들여다봤다. 적중률은 비가 온다고 예보했을 때 실제 비가 내린 경우를 따진 것이다. 

감사원이 2012∼2016년 5년간 전국 244개 관측지점 연평균 기준을 계산한 결과 비가 온다고 예보했고 실제로 비가 내린 경우는 3228회였다. 반면 비가 온다고 예보했지만 내리지 않은 경우는 1965회, 비가 오지 않는다고 했다가 비가 내린 경우도 1808회나 됐다. 둘을 합치면 3773회로 맞춘 횟수를 뛰어넘는다.

이렇게 분석하면 적중률은 46% 수준으로 떨어진다. 기상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영국의 적중률 57.9%와 비교해 12%포인트 가량 낮은 수치다. 그만큼 우산 없이 나왔다가 혹은 우산을 들고 나왔다가 낭패를 본 시민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감사원은 “강수 유무 적중률이 46%에 그치고 지난해 8월에는 폭염이 꺾이는 시점을 4차례에 걸쳐 늦춰 발표해 오보 논란을 야기하는 등 국민의 신뢰도가 높아지지 않는 실정”이라고 감사 배경을 설명했다.

또 감사원 감사 결과 2010년 6월 한반도 기상 관측 자료를 수치예보 모델에 활용하기 위한 ‘천리안위성 1호’를 발사, 운영하고도 관측된 위성자료를 활용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제대로 개발하지 않아 무용지물로 썩힌 것으로 확인됐다. 
 

천리안위성 1호의 수명은 내년 3월 끝날 예정이다. 비싼 돈을 들어 위성을 쏘아 올렸지만 7년 동안 사용도 못해본 셈이다. 예보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569억원짜리 슈퍼컴퓨터 4호기를 들여오는 등 지난 5년간 1192억원을 투입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활용 기술 없어


더 큰 문제는 내년에도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점이다. 내년 5월 천링란위성 2호가 발사되지만 수집한 자료를 활용할 방안은 여전히 없는 상황이다. 기상청은 “향후 천리안위성 2호 관측 자료를 조속하게 수치예보 모델에 활용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해 기술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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