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아련함과 따뜻함’ 안광식

2017.09.12 14:35:37 호수 1131호

그리고 지우며 쓴 ‘자연 일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안광식 작가는 이름 없는 들꽃과 잊히는 풍경, 항아리에 시선을 고정한다. 그가 화폭에 담은 대상에는 아련함과 따뜻함이 깃들어 있다. 안 작가는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싶다”고 고백했다.



서울 인사동의 선화랑은 오는 23일까지 작가 안광식의 개인전 ‘Nature-diary’를 선보인다. 안 작가의 작품은 동양화 종이에 스며드는 물성으로 표현된다. 보이는 깊이보다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투명하게 비치는 깊이를 표현함으로써 내면적이면서 비워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안 작가가 표현한 이름 모를 꽃이나 스쳐가는 풍경은 관람객들에게 소외된 것들의 소중함을 전한다.

겹치고 겹쳐

안 작가는 기초 작업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얇은 한지를 쌓아 올리듯 천천히 한 겹씩, 한 겹씩 50여번의 겹으로 작품을 완성해 나간다. 한 겹씩 쌓는 작업은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위함이다. 오랜 작업 과정 동안 작가는 화면의 연상 혹은 잔상을 생각하며 그려 나간다.

스케치 작업이 끝나면 이 모든 것을 다시 특수 제작한 돌가루 용액(Stone powder)으로 지운다. 지운 화면 위로는 잔상이 남고, 작가는 그 상을 통해 다시 그린다. 기억과 추억이 되새기듯, 떨어뜨리기(Dripping) 기법을 통해 하나씩 구체화 했다가 또 다시 지우기를 반복한다. 초기 작업은 자연 이미지들을 하나씩 채워 구체적인 모습을 담았다면 최근 작품은 지워서 비워나간다.

알지 못하는 것의 소중함
반복되는 비워내기 과정


화폭을 채우고 비우는 사이 ‘아득함’과 ‘모호함’이 밀려든다. 아득함은 영원의 의미를 품는다. 모호함은 망연한 감정의 다른 표현이다. 서서히 사라지는 석양의 그림자와 새벽의 모호함으로 빈 여백과 스며드는 꽃들은 방향을 바꾼다. 경계가 흐려지고 사이가 없어지면서 사색에 잠겨든다.

풍경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실재와 기억 사이의 몽환적인 경계선이 사라지고 관람객의 감각을 통해 보는 시점을 두었다. 더 나아가 화병 시리즈에서는 사색적인 풍경을 실내로 끌어들여 더욱더 대범하고 관조적인 모습으로 기억을 유추하도록 했다.

결국은 동양적인 정신이 바탕이다. 자연의 기억은 일기로 전이돼 영원히 시들지 않는 향기로 화폭 속에 남는다. 미술평론가 신항섭씨는 그의 작품 속 현실을 넘어선 세계, 그것은 비현실이나 초현실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지나간 시간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작가의 의식 속에 기억과 추억의 단상으로 남아있는 과거의 이미지일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 “안 작가가 실현하려는 것은 시각적인 이미지만이 아니라 그 시각적인 이미지를 지배하는 정서인지도 모른다”며 “그림 속에 투영된 정서는 기억이나 추억 속의 어떤 장면을 연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이어 “그의 그림은 현실적인 시공간을 초월하는 비실재적인 이미지의 존재 방식을 통해 향수와 유사한 그리움의 감정을 일으킨다”고 덧붙였다.

추억의 과거 이미지
길게 늘어뜨린 기억

안 작가는 자연 속에 있으면서 다가서지 않고, 멀리서 지켜보면서 스쳐 지나가 빛으로 남는 것을 택했다. 흔들리고 스치면서 삶의 경계선과 정체성을 찾아 헤맨다. 그 과정에서 빛이 빚어내는 자연의 기억은 화면에 담긴다. 남은 색은 빛에 바래 무채색에 가깝다.

또 자연을 보고 그리기보다는 기억으로만 인지해 노래하듯 표현한다. 잘 그리지 못해도 기억한 것을 일기 쓰듯 늘어뜨린다.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모든 자연, 자연과 삶의 관계를 부인할 수 없는 망각의 세월은 아련한 그리움의 풍광으로 그려진다.

안 작가는 “내가 표현한 풍광은 잊히는 추억의 아련한 그림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며 “관람객들로 하여금 자연에서 느끼는 마음의 정화와 정적인 고요, 그리움을 바라며 반복해서 비워내고 버릴 수 있는 장치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나는 또 다른 무언가를 기억하고 또 그 기억을 기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득하고 모호하게

선화랑 관계자는 “이번 전시에는 아스라한 그리움과 투명한 깊이감이 돋보이는 신작 45여점이 출품된다”며 “은밀하고도 내면적인 깊이, 영원하면서도 아득한 자연의 향기를 경험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안광식은?

▲학력

대구예술대학교 서양화과 졸업(1999)
대구가톨릭 미술교육 대학원 졸업(2003)

▲개인전

선화랑, 서울(2017)
아인 갤러리, 부산(2016)
현대아트센터, 분당(2016)
스페이스나무, 양산(2016)
한두뼘1·2갤러리, 강화도(2015)
해운아트갤러리, 부산(2014)
대백 프라자 VIP, 대구(2014)
아트지엔지, 대구(2013)
모우클럽, 서울(2012)
다미&디엠, 대구(2011)
밀레니엄 힐튼, 서울(2010)
라메르 갤러리, 서울(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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